3분 소설 - 감식빵

by 신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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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식빵





“잠깐 들려도 될까”


남자는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기도 전에 감식빵이 담긴 봉투를 손에 들고 있었다. 오지 말라고 하면 어쩌려구. 하지만 용의주도한 그는 그녀의 작업이 이 시간쯤이면 끝난다는 걸 알고 있었고 저녁을 걸렀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11월의 밤공기는 제법 스산하면서도 상쾌한 기분이다. 얇은 코트 주머니 속에는 그녀가 선물해준 주사위가 있다. 굵직한 손으로 네모난 촉각을 느끼며 얼른 그녀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컨디션 조절이 시급한 요즘, 그렇게 몸 관리를 하던 그도 사랑 앞에서는 아이처럼 본능에 무너졌다. 오히려 더 피곤해지고 싶은 게 사랑이란 걸까? 밝게 웃는 표정에 당신 때문에 생긴 다크서클이 있으면 오히려 더 걱정할지도 모르잖아.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밝은 전봇대 밑에서 홀로 쿡쿡 웃었다. 그리고 정확히 3분 뒤, 다른 남자의 손을 잡으며 집에서 나오는 그녀를 보았다.






남자는 숨으려고 했지만 이미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물론 그녀는 놀란 눈으로 잡고 있던 손을 떼었고 옆에 서있는 낯선 남자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서둘러 몸을 돌려 뒷골목으로 향했다. 그리곤 뭐지? 하고 생각했다. 분명 나 말고 다른 남자랑 연락하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는데. 심장박동수가 마구 솟구쳤지만 이상하게도 화는 나지 않았다.


몇 분이 지났을까, 발을 동동 구르다 다시 그녀의 집 앞으로 향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어디야? 내가 그쪽으로 갈게.'


왠지 모를 다급함이 느껴졌다. 남자는 집 앞이라고 메시지를 보냈고 그녀가 나오는 동안 수많은 상상과 싸움을 해야 했다. 그 남자랑 잤을까? 누구지? 친오빠인가?

하지만 남자는 지금 그녀의 공식적인 남자 친구가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바람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이건 상도덕에 어긋나는 차마 참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동안 나랑 했던 대화가 있는데!

긴 코트를 입은 그녀가 걸어온다. 예뻤지만 너무나 미웠다. 손에 들린 감식빵 봉투는 이미 찌그러진 지 오래였다.


"여기서 얘기하자. 누구야?"

"..."


그녀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사실 이걸로 답은 나온 게 아닌가 싶었다.


"착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내가 단단히 잘못 봤네."

"미안해. 사실, 전 남자 친구야."

"뭐?"

"며칠 전부터 연락이 와서.. 미안해 정말 이럴 생각은 없었어."


아아, 전 남자 친구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랑 소주를 마시며 욕했던 그 남자가 아니던가. 남자는 파! 하고 헛웃음을 내고 한 손으로 앞머리를 헝크렸다.


"그래서 다시 만나기로 한 거네.'
"미안해."

"그렇게 욕을 하더니. 결국 이런 식이네."


남자는 감식빵을 전봇대에 집어던지고 등을 돌려 걷는다. 속이 파르르 떨리는 게 입을 벌리고 어이없는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잘해줬는데 전 남자 친구한테 져버렸다니. 전부 부질없었구나, 하고 담배를 물고 역으로 걸어갔다.


그녀에게 연락은 오지 않았다.

물론 남자도 할 생각은 없었지만 한동안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린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싸우고 힘들게 헤어진 남자 친구가 돌아오라 하면 바로 안기고 싶은 게 여자의 마음인가 싶었다. 후. 그러면서 자신의 전 여자 친구를 떠올린다. 하지만 자신은 여자 친구가 돌아와도 그녀를 택했을 거라고 홀로 생각했다. 누가 뭐라하던 이제 끝이다. 이렇게 누군가와의 인연은 상처로 끝이 났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11월은 정말 바쁘다. 그래서 다행히 외로워할 시간도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시간도 참 빠르지. 첫 일주일 간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실컷 욕을 해댔지만 솔직히 자신에게는 엄청나게 부끄러운 일이었으니 길게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다.

퇴근길.

자주 가는 만두집에서 고기만두 2인분을 주문하고 의자에 앉아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 무의식 중에 좋아요를 눌리는데 그녀를 소개하여준 지인이 감식빵을 찍은 사진을 올려 남자는 잠시 멈칫, 했다. 그 식빵은 여자가 스쳐가는 말로 내뱉은 먹고 싶은 음식 중 하나였는데 그때 싱글벙글하며 줄을 기다리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괜히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따끈따끈한 만두를 들고 집으로 향한다. 맥주 한 캔 거하게 마시고 그대로 뻗어버려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가기 몇 초전,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그녀였다.


"여보세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받았다. 그건물러터진 그의 성격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감식빵을 보고 난 뒤에 느껴졌던 그때의 감정이 너무나 생생해서가 아닐까.


"여보세요."

"응."

"응. 잘 지내?"


앳된 목소리였다. 남자는 도어록에서 손을 떼고 밖으로 나가 전봇대에 등을 기대었다.


"응. 잘 지내지."

"그때 내가 제대로 사과도 못한 것 같아서.."

"지나간 일인데, 뭐. 근데 왜 무슨 일인데?"

"아, 그게 할 말이 있어서.. 혹시 시간 돼?"

"지금?"

"응. 너무 늦었나?"


소매를 걷어올려 시계를 보니 9시 20분이었다. 다시금 심장이 파르르 하고 떨렸다. 이것은 기대도 상실도 아니었지만 기분 좋은 예감은 분명하게 들었다.


"아냐, 괜찮아. 어디서 볼래?"

"내가 그쪽으로 갈게. 어디 들어가 있을래? 지금 밖이라서 금방 갈게."

"알겠어. 이쪽으로 오면 연락 줘."

"고마워."


전화를 끊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게 무슨 일일까 했지만 금방이고 이성이 찾아지는 건 더 이상 호구가 아니라는 증거이자 그녀 앞에서 단호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증거였다. 그놈과의 이별을 예상하고 그녀의 인스타에 들어가니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비공개였다. 그리고 그녀를 만났다. 반가웠지만 그런 표정 따위 짓지 않았다. 남자는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염치없지만 말해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먼저 미안해. 그때 내가 너무 책임 감 없이 행동했었어."

"응."

"사실 이주일도 안돼서 다시 헤어졌어. 그리고 정말 후회했어. 근데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서 도저히 연락을 못하겠더라고. 너도 봤을진 모르겠지만 오늘 지민이 언니가 올린 감식빵 사진을 보는데 네가 너무 생각나서 안 되겠더라. 그때 전봇대에 버리고 간 거 먹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한동안 집에 놔뒀었어. 정말 염치없지만 너한테 진심으로 사과하고 다시 연락할 수 있을까 하고 보자 했어."


안절부절못하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참으로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무미건조하지만 안아주고 싶고 고맙다 말하고 싶지만 싫다고 말하고 싶은 감정. 남자는 커피를 쭈욱- 들이켜고 한동안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리고 이 여자와 연애를 한다면.이라는 주제로 짧은 시간 동안 홀로 엄청난 상상을 했다. 이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난 너무 충격받았고. 실망도 많아서 너 잊고 나름 잘 지냈던 거 같아. 연락 올진 생각지도 못해서 지금 좀 혼란스러운데. 음."

"지금 당장 말하지 않아도 돼. 급하게 대답 들을 필요 없으니까. 대신 좋게 생각해줘."

"알았어."


그리곤 고요한 침묵이 몇 분 동안 이어졌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너 같은 여자 못 만난다고 자리를 박차고 가는 게 맞는 것 같았지만 남자는 사실, 가볍게 머리를 콩- 때리고 그러게 그때 잘하지라고 하며 오뎅탕에 소주 한 잔 하러 가자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 어쩔 수 없나 보다. 깊진 않았지만 좋아했던 여자가 진심으로 다시 돌아와 주니 마음이 열려버렸다. 후. 콧잔등이 가려워 긁다 자신의 옆자리에 있는 고기만두가 보였다. 그리곤 말한다.


"고기만두 먹을래?"


그녀는 갑작스러운 남자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그것이 왠지 마음을 열어준 것 같아 곧장 옅은 미소 지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밤은 천천히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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