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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하 Jan 11. 2019

12. [기하학] 새로운 기하학의 탄생

근본적인 질문을 통하여 새로운 기하학을 만들다

엉뚱하게 느껴지지만, 이 문제는 매우 유명한 문제입니다. 일단 문제의 조건을 따라가 보면, 곰은 다음과 같이 움직였습니다. 

출발점에서 시작하여 화살표대로 움직여서 곰이 도착한 곳은 처음 출발한 위치로 되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윗 그림에서 출발점과 도착점이 같다는 것이죠.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할까요? 터무니없어 보이는 이 문제에 등장하는 곰은 흰색입니다. 왜냐하면, 북극곰이기 때문이죠. 다시 말해, 남쪽으로 1Km 가다가, 방향을 바꿔 동쪽으로 1Km 가다가, 다시 북쪽으로 1Km 갔을 때 처음 출발한 지점으로 되돌아오는 점은 북극이라는 겁니다. 지구본을 보면서 생각하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의 곰이 움직인 길을 연결하면 삼각형이 됩니다. 곰은 직선으로만 움직였기 때문에 분명 곰이 움직인 길들을 연결하면 삼각형이 되는데요,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곰이 움직여서 만든 삼각형은 3각이 모두 90도인 삼각형인 겁니다. 남쪽으로 가다가 동쪽으로 가면 90도의 각을 만들고, 동쪽으로 가다가 북쪽으로 가는 것 역시 90도 회전한 것이죠. 결론적으로 곰이 움직여서 만든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가 넘는 겁니다. 이것은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이다’라는 수학의 가장 기본적인 사항과 맞지 않는 겁니다. 곰이 움직인 길이 만든 삼각형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공 위에 삼각형을 그려보면 됩니다. 공 위에는 모든 각이 90도인 삼각형을 어렵지 않게 그릴 수 있죠.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

기원전 300년경에 유클리드는 당시까지 알려진 수학을 집대성하여 '기하학 원론'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을 통하여 그는 수학의 기초를 세웠고, 이 책은 그 후 2,000년 동안 가장 중요한 수학 교과서가 되었습니다. 유클리드는 수학적인 개념의 출발점을 정리했습니다. 물리학에는 원자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물체를 쪼개고 또 쪼개다 보면 더 이상은 쪼갤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구성단계가 바로 원자입니다. 수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피타고라스 정리와 같은 것은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이지만 증명할 수 없는 기본적인 개념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것은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는 겁니다. 유클리드가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고 제시한 5개의 공준이 있습니다.


공준

(공준 1) 한 점에서 다른 한 점에 하나의 직선을 그릴 수 있다. 

(공준 2) 유한한 선분은 그 양쪽으로 얼마든지 연장할 수 있다. 

(공준 3) 임의의 점을 중심으로 하고, 임의의 반지름을 갖는 원을 그릴 수 있다. 

(공준 4) 모든 직각은 서로 같다. 

(공준 5) 두 직선이 하나의 직선과 만날 때 같은 쪽에 있는 두 내각의 합이 180도보다 작으면, 두 직선을 무한이 연장했을 때 반드시 그쪽에서 만난다.


5개의 공준은 다음과 같은 그림으로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기하학

많은 수학자들이 유클리드의 공준 5에 관해 의문을 품었습니다. 공준 5의 내용은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이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인데, 이것은 증명할 수는 없지만 사실이기 때문에 그냥 받아들이자는 것이 공준 5의 내용인 겁니다. 유클리드의 이 이야기에 많은 수학자들이 “왜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이라는 것을 그냥 받아들이라고 했을까? 충분히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로 2,000년 동안 많은 수학자들이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이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 증명에 성공한 사람이 없었죠. 어떤 사람은 이 문제 때문에 정신병까지 얻었습니다. 좀처럼 풀리지 않던 이 문제에 1830년경 러시아의 수학자 로바체프스키(Lobachevskii)와 헝가리계 독일 수학자 볼리아이(Bolyai)는 새로운 접근을 했습니다. 그들은 같은 문제에 새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만약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가 아니라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그들은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가 아닌 기하학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발견한 것은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가 아니라면 새로운 기하학이 만들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유클리드의 공준 5가 필요 없는 새로운 기하학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공준 5가 필요한 기하학을 유클리드 기하학, 공준 5가 필요 없는 기하학을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라고 부릅니다. 유클리드가 기하학 원론에서 제시했던 공준 5는 2,000년 동안 의심과 의문의 대상이었습니다. 수많은 수학자들이 이 공인된 진리인 공준 5의 증명에 도전했죠. 하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 두 명의 젊은 수학자들은 문제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결국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이다’을 증명하려고만 하고 있었을 때, 그들은 질문을 ‘만약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가 아니라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로 바꾸며 새로운 기하학을 탄생시켰던 겁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처음 제시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단순히 흥미와 재미의 세계로만 여겼습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이론을 바탕으로 새로운 우주관을 제시하였고,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실용성은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 우리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압니다. 평평한 지구에서 유클리드 기하학이 사용되었다면, 둥근 지구 또는 다른 공간에서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처음 제시한 곰의 색깔을 맞추는 문제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소개하는 사례로 유명하게 사용되는 문제입니다. 



경험의 함정

곰의 색깔을 맞추는 문제를 다시 한번 볼까요? 앞의 문제에서 남쪽으로 1Km 가다가, 방향을 바꿔 동쪽으로 1Km 가다가, 다시 북쪽으로 1Km 가면, 처음 출발한 자리로 되돌아오는 지점은 북극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돌아오는 지점이 북극이 유일할까요? 이런 질문을 하나 더 해보겠습니다. 

처음 문제의 또 다른 답을 찾는 문제입니다. 비슷한 방법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조금 다른 접근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볼까요? 


일단 동쪽으로 간다는 것은 위도를 따라서 가는 것입니다. 지구본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적도 부근의 위도는 매우 길지만, 극지방의 위도는 상대적으로 짧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지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구 상에서 동쪽으로 1Km 가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그런 위치가 남극 근처에 있겠죠. 문제에서 찾는 지점은 바로 동쪽으로 1Km 가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위치에서 북쪽으로 1Km간 곳입니다. 그곳은 출발하여 남쪽으로 1Km 갔다가, 방향을 바꿔 동쪽으로 1Km 갔다가, 다시 북쪽으로 1Km 가면, 처음 출발한 자리로 되돌아오게 되니까요. 

물론, 동쪽으로 1Km 갔을 때, 위도 선을 두 바퀴 돌고 제자리로 돌아온 위치나, 세 바퀴 돌고 제자리로 돌아온 위치에서 북쪽으로 1km 위에 있는 지점도 이 문제의 답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문제의 답은 처음 문제와 달리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새로운 접근인 것이죠. 그러나, 곰의 색깔을 맞추는 처음 문제에서 북극과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경험한 사람은 두 번째 질문에서 남극 근처에 위치한 지점을 오히려 잘 찾지 못하곤 합니다. 이것이 바로 경험의 함정인 것 같습니다. 



박종하

mathia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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