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고는 말하지 않은 아이와의 첫 만남
오늘, 진단테스트를 받으러 온 중학교 2학년 아이를 만났다.
학교 시험에서 20점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미리 들었기에 복잡한 문제는 내지 않았다.
기본 개념이 있는지만 확인할 수 있도록
쉬운 문제 몇 개만 선별했다.
아이에게 문제지를 건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것만 한번 해보자.”
그러자 아이가 말했다.
“과외 그만둔 지 좀 됐어요.”
그 말은,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미리 알려두는 말처럼 들렸다.
잘 못 풀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여지를 미리 알려주는.
문제를 한참 들여다보던 아이는
조용히 말했다.
“이거… 배웠는데요.”
하지만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문제를 풀지는 못했다.
다른 문제를 보여줘도 반응은 같았다.
“이것도 배웠어요.”
계속해서 “배웠다”는 말만 반복했다.
나는 짧게 설명을 곁들이며
같이 한번 풀어보자고 했지만
종이 위에 연필은 맴돌기만 했다.
잠시 후, 아이가 말했다.
“배가 좀 아파서요…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한참있다 돌아 온 아이는 멋적은 듯 말했다.
“긴장했더니 배가 아파요.”
그 말은 그나마 이 상황에서 가장 솔직한 표현이였다.
나는 다시 조심스럽게 말했다.
“혼내려고 하는 게 아니야.
틀려도 괜찮아.
다만, 네가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해야
그다음으로 갈 수 있어.”
그 순간 아이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근데요… 배웠다고 한 게 뭐가 잘못이에요?”
그 말에는
짜증도 없었고, 항변도 아니었다.
그저 ‘왜 내가 틀린 사람처럼 느껴져야 하죠?’
하는 억울함과 혼란이 담겨 있었다.
그 아이는
끝까지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예 풀지 않았고,
계속해서 배웠다고만 했다.
모른다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두려운 일이 되어버린 상태.
나는 그 아이에게
기초부터 가르칠 생각이다.
앉아서
스스로 문제를 푸는 법부터.
모르는 걸
모른다고 인정하는 법.
모르는 걸
시도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법.
그리고,
칭찬과 인정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즐기는 법.
이게 쉬울 수도,
어려울 수도 있다.
어떤 날은 잘하고,
어떤 날은 멈춰 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인연이 닿는 동안만큼은
함께 해볼 생각이다.
가르친다기보다
지켜보면서,
함께 버티고,
조금이라도 즐겨보려 한다.
그리고 언젠가,
그 아이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배웠어요.
그리고 지금은, 다시 배우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