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가 실패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안도감이 아이를 멈추게 할 때

by 심원장

지난 일요일, 예비고1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었다.
중학교 성적이 고등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지
조금 더 솔직하게 나누는 자리였다.

자료를 준비하다가
중학교 성취도 분포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A 비율이 40% 중후반,
100점도 10% 이상.

중학교는 원래 A가 많은 구조지만,
우리 동네는 그 ‘많음’이 전국 평균보다도 더 높았다.
이런 환경에서는
아이의 점수만으로 실력을 판단한다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

그때 며칠 전 상담했던 한 학생이 떠올랐다.
3학년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처음 우리 학원에 온 아이였다.

상담 자리에서 어머님이 말했다.

“원장님, 얘는 학원 안 다녀도
90점대 초반은 늘 나왔어요.
그 정도면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이제는 고등 때문에
뭔가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중학교에서의 90점대는
그동안 이 아이와 어머님 모두에게
‘괜찮다’는 신호였다.
안심해도 된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간담회에서
성취도 분포를 함께 살펴보며
어머님의 표정이 조용히 변했다.
아이의 점수가 ‘잘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많은 아이들이 받은 점수였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식하신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성적은 성공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성공이 필요한 준비를 늦추게 만드는 힘을
가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중학교에서의 높은 점수는
분명 소중한 성취지만,
너무 많은 아이들이 같은 점수를 받을 때는
아이의 약점과 속도를 가리는
작은 착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착시는
고등에서 갑작스러운 변화로 되돌아온다.
준비해야 할 것을 미루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점수보다
그 점수가 만들어진 풍경을 먼저 본다.
그 풍경을 정확히 읽어내야
아이의 다음 3년을 지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중등에서의 A는
성공의 증거가 아니라
준비를 늦추게 만드는 가장 조용한 실패의 시작일 수 있다.
아무도 경고음을 듣지 못한다는 점에서
더 위험한 신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묻는다.
“이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 질문을 놓지 않는 사람이
아이의 다음 걸음을 지켜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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