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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초이 Sep 08. 2022

후배들의 청첩장

청첩장에 얽힌 추억

직장 후배가 "0월 0일 결혼합니다"라며 청첩장을 건넨다. 청첩장을 받아 속 내용을 읽는다. 며칠 후 또 다른 후배가 청첩장을 건넨다. 다시 속 내용을 읽는다.


사람은 바뀌었는데 속지 양식은 별 차이가 없다. 웨딩홀로 찾아오는 전철 노선, 버스번호, 자가용 노선을 설명한다. 초대하는 글이 보이고 신랑, 신부의 부모이름부터 형제 순서로 장남, 장녀가 눈에 띈다. 후배 둘 모두 장남이고 장녀와의 결혼이다. 어딘지 눈에 익숙하다.


서울에 있는 웨딩홀에서 결혼식을 하려면 찾아오는 길이 중요하다. 대중교통과 자가용 노선을 설명하는 것이 필수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교통안내를 읽어보는 사람이 과연 몇이 될까 생각해 본다. 네이버에 웨딩홀을 검색해 길 찾기를 누르면 쉽게 알 수 있는 요즘이다. 청첩장을 받아 교통안내도를 읽어본 기억이 없지만 내가 결혼하던 시절에는 꼼꼼히 점검했었다.


1996년 10월 어느 날 내 고향 웨딩홀에서 결혼했다. 결혼기념일은 쉽게 까먹지 못한다. 역사에 기록된 날이 오기 전에 언론에서 그날 이후 몇 년이 흘렀음을 보도한다. 그 보도가 시작되면 내 결혼기념일이 아주 가까운 날이기 때문에 자동으로 떠오른다.


결혼예식장이 있던 내 고향은 시외버스가 겨우 왕래하던 시골지역이고 보니, 아내의 처가 쪽 서울 사람들이 내려오기 위해선 관광버스를 대절해야 했다. 지금은 혁신도시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어 고향방문 때마다 격세지감을 실감한다.


서울서 오시는 분들을 위해 청첩장 교통안내도에 고속도로와 인터체인지, 국도 그리고 목적지인 웨딩홀을 상세히 그려 넣어야 한다. 물론 청첩장 제작소에서 보기 좋게 인쇄하지만 제작하는 분들에게 전국지도를 보고 설명해야 했다. 아득하다.


최근 들어 실물 청첩장을 받는 것 자체가 드물긴 하다.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경우에나 실물 영접을 받는다. 타 부서에 있는 지인들은 내부망 경조사 안내 공지를 통하고 만다. 친구의 자녀들이 결혼을 할 때에도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온다. 일부러 찾아다니며 실물 청첩장을 주지 않는다.


코로나 팬데믹은 일상의 여러 요식행위들을 새롭게 바꿔놓았다. 좀 더 현실적으로 변화했다고 볼 수 있다. 모바일 청첩장을 받으면 웨딩사진이나 동영상도 볼 수 있어 하객 입장에서는 친근하게 다가오기도 하다.


난 옛날 사람이다 보니 실물 청첩장을 받으면 반갑기도 하고 내 결혼 청첩장이 기억나 웃음 짓는다. 사실은 애써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내가 결혼할 당시에는 청첩장을 신랑이 신부 몫까지 준비했다. 신부 측에서 필요한 매수를 알려주면 우리 쪽 필요량을 더해 인쇄소에 맡긴다. 청첩장에 들어갈 속지를 정하고 무늬를 선택한다.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문제는 겉봉투에 있었다.


겉봉투 상단엔 신랑집 주소를 적고 아래는 받는 분의 주소와 성함이 들어가야 한다. 왜냐면 우편물로 보내야 하는 친척분들이나 친지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전에 우편물로 보내야  명단을  둔다.


난 청첩장을 제작하는 업소에 들러 주문 요구를 하면서 주소를 인쇄해야 한다는 사항을 까먹고 말았다. 결혼이 처음이라 그랬을 것이다. 양쪽 집안에서 필요한 청첩장을 받고 나니 겉봉투가 민무늬다. 있어야 할 주소와 신랑 신부의 이름이 쓰여있지 않은 백지상태다. 아뿔싸 어떡하나


신부인 지금의 아내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필요량을 건넸다. 나중 들은 얘기로는 장인어른께서 하나하나 주소를 적고 신랑 신부의 이름도 일일이 손으로 쓰셨다는 것이다. 어찌나 죄송한지 세심하고 찬찬하지 못한 사위라고 걱정을 많이 하셨을 것이다. 지금은 하늘에서 우리 부부가 잘 사는지 지켜보고 계신다. 아직까진 잘 살고 있습니다.


우리 집도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동네분들을 직접 찾아다니시며 청첩장을 전달하는 발품을 팔았으니, 야무지 못한 아들 장가보내면서 애를 많이 쓰셨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다시 한번 한다면 잘할 수 있겠는데...)


신랑 신부가 되는 후배들이 많아야 하는데 요즘의 세태가 결혼, 출산을 기피하고 있어 걱정이다. 우리 딸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아직은 선언하고 있다. '아직은'이 언젠가 '생각해보고'로, '남자 친구 있어'로 변화하리라 믿지만 말이다. '아니라고, 안 한다고!!' 딸이 꽥!! 소리 지르고, 눈 흘기며 쳐다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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