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브런치스토리 홈에서 이런저런 글을 읽다가 '새벽 글쓰기' 모임을 하는 분들의 이야기가 눈에 띄어 읽어본 적이 있다. 그 모임을 주최하시는 분은 브런치 내에서 인지도가 꽤 쌓여 있는 분이었는데, 모두 새벽 4시에 일어나 각자의 자리에서 독서를 하고, 글을 쓰는 생활을 매일같이 이어나가는 모임이었다. 비대면 스터디 형식과 공동체의 힘을 받아 새벽 글쓰기 습관을 기르는 데 그 목적이 있는 모임으로 보였다.
그 모임의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의아하다는 생각이 든 지점이 있었다.
'새벽 글쓰기 모임이라면,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면 되는 것 아닌가. 왜 책을 읽는 것부터 시작하지?'
돌이켜보면 참 한심한 의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런 의문이 들긴 했다.
학창 시절 때까지는 그래도 틈틈이 독서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책을 멀리하게 시작했던 시점이 언제부터였는가 생각해 보면, 수년간의 고시생활을 접고 늦은 나이에 군대에 가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당시 고시 합격 실패라는 아픔을 안고 군대에 간 상황이다 보니, 글자로 된 무언가를 읽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었다.
그렇게 군 생활을 마치면서 운 좋게 바로 취업을 할 수 있었고, 여러 술 약속들과 회식, 그리고 재미있는 놀거리 등에 치여 '독서'라는 것은 나의 생활을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읽는 글이라고는 회사 내 지침서나 보고서 등 따위가 전부였다.
그런 생활을 수년간 이어가면서 회사 내 인사발령을 통해 여러 리더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러다 2021년 만나게 된 한 분이 내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분은 매일 아침 2시간 정도 일찍 출근해서 업무 시작 시간 전까지 독서로 하루를 시작하는 분이었는데, 가끔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면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일과 관련된 것이든, 관련 없는 것이든)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을 건네주시곤 했다.
여러분도 리더와의 관계에서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두 단계 정도는 더 깊이 있는 지점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 깊이 있는 생각의 출처가 나에게 추천해 준 어떤 책에서 비롯되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기도 했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고민이 있을 때마다 관련된 서적들을 찾아 읽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고, 나중에는 고민이 있든 없든 '시간의 틈'이 생기면 눈앞에 보이는 책을 집어 읽게 되었다. 덕분에 내 사무실과 집 안의 소파, 책상 등의 앉는 자리 주변에는 항상 책이 널브러져 있다.
책의 힘은 그 안의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에 있지 않다. 책은 얇은 종이 안에 빼곡히 적혀있는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그동안 내가 읽은 다른 책들, 공부했던 지식들, 몸으로 경험한 것들, 마음으로 느꼈던 것들이 한데 섞여 버무려지며 새로운 무언가를 떠오르게 하는 놀라운 힘이 있다. 즉, 책의 진정한 힘은 '사고의 확장'에 있다.
얼마 전 즐겨보는 유현준 교수님의 유튜브 '셜록현준' 채널에서 아직 종이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 영상을 보았다. 최근 온라인 생태계가 발전하며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뿐 아니라 전자책과 디지털 아티클 등이 활성화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날로그적인 종이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자세히 풀어주셨다.
근래 들어 '독서와의 재회'를 하고, 뼈저리게 느끼고 있던 것들을 하나하나 명확하게 짚어주시는 것 같아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영상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verOA2gM6U
책을 읽으면,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글을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다 보면,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내 머릿속에 가라앉아 있던 다양한 지식과 경험들에 물보라를 일으키며 기존에 미치지 못했던 영역에까지 생각의 끈이 이어진다. 마치 건너기 어려웠던 강 건너 미지의 땅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이어주는 큰 교각이 세워지는 느낌이랄까.
기존에 나의 사고가 머무르고 있던 범위가 100 제곱미터였다면, 독서는 이를 500, 1,000, 10,000 제곱미터 이상으로 확장시켜 준다. 그리고 새롭게 확장되는 영역은 내 사고 흐름의 놀이터가 되어, 자연스레 다양한 아이디어와 글감을 떠올리도록 만들어 준다.
몇 년 전, '창의성'과 관련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완전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내는 것이 아니다. 99.99%의 새로운 창작물은 기존에 있던 무언가와 전혀 다른 무언가의 융합의 결과물이다.
https://brunch.co.kr/@matigevic/16
하나의 유명한 디자인 사례로 애플이 세계를 놀라게 했던 '볼 마우스'를 들 수 있다. 지금은 레이저 마우스가 대세가 되면서 이러한 형태의 마우스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지만, 과거 키보드 하나에 의존해 컴퓨터를 다루던 시대에서, 마우스라는 도구로 컴퓨터 사용의 자유도를 혁신적으로 높인 발명품이 바로 이 볼 마우스다.
볼 마우스에 대한 아이디어는 겨드랑이 탈취제인 '데오드란트'에서 얻었다는 일화가 유명한데, 데오드란트가 피부와 접촉하는 부위가 볼 형태로 되어 움직인다는 점에 착안하여, 책상과 접촉하는 면이 볼 형태로 이루어진 '마우스'라는 제품을 발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글을 쓰는 행위, 즉 '작문' 역시 새로운 것을 세상에 내어 놓는 창작활동 중 하나라는 점에서, 새로운 발명품을 세상에 선보이는 디자인의 프로세스와 다를 바가 없다. 애플이 데오드란트와 컴퓨터라는 것의 융합에서 마우스라는 아이디어를 얻었듯이, 글쓰기 역시 여러 책을 통해 얻은 아이디어의 융합과, 책 속의 내용과 나의 경험의 결합 등을 통해 새로운 무언가를 생산하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독서는 새로운 생각에 도달할 수 있게 도와줄 뿐 아니라, 책을 읽지 않았다면 활용할 수 없었던 다양한 표현들을 쓸 수 있게 해 준다. 즉 같은 결론의 글을 쓰더라도, 그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채울 수 있는 힘을 준다.
평소 내가 잘 쓰지 않았던 멋진 표현이 담긴 문장, 내 생각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인용 문구, 내가 직접 경험해 볼 기회가 없었던 타인의 귀한 경험들... 이 모든 것이 내가 쓰는 글이라는 뼈에 살과 근육을 붙여주는 역할을 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업무적으로 뛰어난 분들도 있고, 업무 외적으로 특별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 분들도 있다. 그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글을 쓰면 (그 분야에 관심을 가진 많은 분들이 찾는) 좋은 콘텐츠가 될 수 있고, 그런 콘텐츠들이 쌓여 나중에 책으로 발간하는 등의 결과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글쓰기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계신 분들을 종종 본다.
그런 분들께는 손이 가는 책들을 하나씩 읽어보시길 권해드리고 싶다. 책을 읽다 보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고가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되고, 나의 역량, 지식, 경험들과 책 안의 지혜가 한 데 휘감겨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