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23일
지난 금요일엔 봉사활동을 정기적으로 해볼까 하여 유기견 봉사 모임에 가입했습니다.
24시간 안에 자기소개를 써야 한다는데 이름과 나이, 취미 등을 적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자기소개서를 조금 읽어보다가, 이제 나이를 밝히는 것을 주저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마음 조금 덜 느끼고 싶어서 숫자가 아니라 한글로 나이를 적어보았지만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취미는 나이보다 더 어려운 질문입니다. 저는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싫어하는 건 확실하지만요. 오늘 좋아한다고 내일도 좋아할 거라는 법은 없잖아요? (한때 웨이트를 좋아했지만 지금은 전혀 하지 않는 것처럼요?) 음악 감상과 독서라는 쉬운 방법이 있지만, 음악을 듣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나요? 책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그저 작아질 뿐이고요.
가입은 해야겠기에 대충 산책과 전시회 가기라고 적었습니다. 산책과 전시회 가기는 실력을 겨룰 수 없으니까 아무도 딴지 걸 수 없을 겁니다. 만약 달리기라고 적었으면 기록이 얼마니, 마라톤엔 나가본 적이 있냐는 질문들이 들어왔을 것입니다. 좋아하는 걸 말하는데 실력과 지식을 묻고 떠드는 사람은 딱 질색입니다. 그러니 사전에 차단해야 합니다. 안 궁금해요! 그만 말해!
사실 산책과 전시회 가기가 저의 정확한 취미는 아닙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그냥 혼자 어슬렁거리는 걸 좋아합니다. 네, 맞아요. 어제의 청계천과 을지로와 광화문을 다닌 것처럼요. 그렇게 슬렁슬렁 걸어 다니면 뭐가 좋냐면... 딱히 좋을 건 없고 재밌습니다. 아주 거대한 전시회를 보는 기분이죠. 사람들과 함께할 때 보이지 않는 것들도 보이고 그렇습니다. 그늘에 앉은 노인들 근처에 앉아있거나 덕수궁 구석 벤치에서 생각을 하다가 졸 때도 있습니다. 어차피 사람들은 저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고, 저 역시 사람들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아, 조금 한량처럼 보이는군요. 뭐 괜찮습니다. 어차피 여러분들도 절 모르니까 아무렇게나 상상해도 됩니다.
그러나 새로 가입한 봉사 단체에 ‘혼자 어슬렁거리며 세상 구경하기’라고 적을 수는 없으니까 대충 있어 보이는 취미를 적었습니다. 이제 그 문제는 해결했고... 나이와 취미보다 더 걱정인 것은 유기견 봉사를 해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개를 귀여워하는 것과 케어하는 건 다른 일이니까요. 유기견들이 저 때문에 마음이든 신체든 해를 입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요. 같이 가입한 직장 동료는 가입하자마자 봉사를 다녀왔습니다. 내일 아침엔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죠. 어차피 걱정한다고 봉사 실력이 늘어나는 건 아니니까 걱정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합시다.
이제 5월이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니, 조금 슬퍼지려고 합니다.
5월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요?
즐거운 주말이 되었기를 바라며.
다음에 또 편지할게요.
그럼,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