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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전문가

고작 내가 되어버린 건

by 주원

17살에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된 이후로 지금까지, 15년 가까이 가족들과 떨어져서 살고 있다. 대학생 때는 2인 1실 기숙사에 살았는데, 4학년 때 도벽이 있는 룸메이트를 만나고 나서는 누군가와 같이 사는 게 불편해져서 그 후로는 방을 구해 혼자 살기 시작했다. 내가 학생 때만 하더라도 혼자 산다고 하면 이상한 시선들이나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서 동지가 많아진 기분이다. 기숙사에서 첫 자취방으로 이사할 땐 종이 박스와 종이 가방 몇 개만으로도 나의 전부를 담아 콜밴으로 실어 나를 수 있었는데, 이제는 1.4톤 탑차를 불러도 모자라다. 나는 이제 예전에 살던, 아홉 걸음 만에 현관문부터 방의 끝까지 갈 수 있었던 그 작은 원룸에서 살 수가 없다. 이 많은 세간살이를 둘 공간을 앞으로도 유지하기 위해선 열심히 살고 아끼고 모으는 수밖에 없다. 쉴틈 없이.


대학교 기숙사는 매년 짐을 빼고 퇴사를 한 뒤 새로 입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청소를 해야 해서 방을 빼야 한 다곤 하지만 하나도 깨끗해진 것 같지 않다. 기분 탓인가?) 겨울이 되면 짐을 싸서 본가로 부쳤다가 짧으면 보름, 길면 한 두 달 뒤에 그 짐을 고대로 기숙사로 보냈다. 그런 이사까지 포함하면 이제까지 12번 정도 이사를 했다. 나보다 배 이상 인생을 산 부모님보다 더 이사를 많이 했고 내 또래 중에서도 나만큼 이사를 자주 한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지겨워 죽겠다. ‘아무래도 내 사주에 역마살이 있는 것이 분명해’라고 구시렁대면서 꾸역꾸역 이삿짐을 싼다. 짐이 예전보다 많아지긴 했어도 이젠 이사를 준비하는 건 이 전세 인간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학생일 때는 직접 이사를 했다. 이사하기 몇 주 전부터 근처 마트나 편의점에서 박스를 구해서 당장 잘 쓰지 않는 것부터 담아 두고, 이사한 뒤 잘 쓰지 않을 것 같은 물건들은 중고 시장에 내놓아서 이사 비용에 보탰다. 처음엔 금방 이삿짐을 쌀 수 있을 것 같지만 몇 시간 지나면 이사를 포기하고 싶거나 이 모든 잡동사니를 산 자신이 징그러워질 것이다. 괜찮다. 글이든 과제든 마감이 다가오면 어떻게든 다 하게 되듯이, 이삿짐도 어떻게든 다 싸게 된다. 나중엔 급해서 분류고 뭐고 종이봉투나 아무 가방에 쓸어 담는 자신의 순발력과 결단력을 보는 것도 이사의 묘미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이제 짐은 다 쌌고 용달 트럭을 불러 새 집으로 짐을 옮길 차례다. 나는 용달 트럭을 예약하고 나서야 트럭의 적재 중량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다. 1톤 트럭 아니면 덤프트럭만 있는 줄 알았는데, 0.5톤 트럭도 있고, 2.5톤 트럭도 있다. 내 경험상 대부분의 용달 트럭은 길거리에서 자주 보이는 현대 자동차의 포터나 기아 자동차의 봉고였다. 모두 1톤 트럭이다. 트럭의 적재 중량과 크기를 미리 가늠해두는 것이 좋은데, 예상보다 짐이 많아서 차를 두 번 써야 할 때 추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이번에 이사할 땐 1톤 탑차와 1.4톤 탑차 중에 고민하다가 1.4톤 탑차를 선택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면 나는 이사 비용을 거의 ‘따블'로 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짐과 적재 중량을 잘 파악해두자.


난 이제 짐도 많고 내가 쓸 수 있는 체력은 한정되어 있기에 근래에는 무조건 포장 이사를 불렀다. 입주하는 날이 정해졌다면 한 두 달 전에는 이삿짐 센터를 예약해놓는 것이 좋다. 이번에 이사할 때는 이사 일정을 조율하는데 문제가 있었고 정신없이 바빠서 이삿날 2주 전에야 업체를 찾기 시작했는데, 이삿날이 금요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업체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금요일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라는 애매한 시간에 이사하는 조건으로 예약을 했다. 오전 이사가 정확히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에 오후 이사는 시작 시간이 애매하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오후 늦게 이사가 잡히는 바람에 전세금과 대출금을 전달하는 과정에도 약간 트러블이 있었다. 그러니 여러분, 미리미리 예약하시라고요.


포장 이사의 좋은 점은 역시 업체에서 짐을 포장해주기 때문에 이사 전날까지 평소처럼 지내도 된다는 것이다(물론 중요한 물건은 직접 싸야겠지만). 무거운 가전이나 가구를 직접 들지 않아도 되고, 내가 원하는 곳에 놔주시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모든 걸 이삿짐 센터에 맡기면 안 된다는 걸 몸소 경험했다. 이사 업체가 짐을 싸는 동안 전세금에 관한 통화를 여러 번 해야 했고 점심도 못 먹어서 계속 밖에 나가 있었다. 짐을 다 쌌을 시간인데 업체에서 연락이 없어서 집에 가봤더니, 이미 짐을 다 싸서 새 집으로 출발한 상태였다.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그러셨을 거라는 건 이해하고 나도 바로 출발하면 그만이었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또 짐을 풀어서 정리하다 보니 책 한 권과(심지어 시리즈물이었는데!) 쓰레기통 하나가 없었다. 그렇지만 누굴 탓할까. 내가 빈 집을 제대로 둘러보고 왔으면 이럴 일이 없었을 것이다.


이사에 있어서 용달 트럭의 중량이나 이삿짐 센터 선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시 ‘버리기'라고 본다. 한 두해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은 미련 없이 버리는 편이다. 이사가 잦아지고 자주 버리다 보니 버리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건 애초에 들이지 않는 거라는 걸 알았다. 덤으로 얹어주는 상품이나 필요하지 않은 굿즈들은 언젠가 짐이 된다는 걸 아니까 사지 않고 받지 않으려고 한다. 처음에 자취를 시작할 땐 집안을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싶었지만 점점 실용적인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렇지만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다음 이사 비용이 세 자리가 될 수도 있기에… 어휴. 난 그냥 실용적인 인간으로 살련다.


이사가 그렇게 지겹다면서 며칠 전에는 좋아하는 소설가와 시인이 어느 지역에 산다는 얘기를 듣고 몇 년 뒤엔 그곳으로 이사를 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흑. 이제는 주기적으로 이사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몸이 되어버린 걸까? 다음에 만나게 될 그곳은 정착까진 바라지도 않고 좀 오래오래 살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이제 이사 전문가는 그만 되고 싶다. 내 집 마련 전문가를 장래희망에 적어두어야지. 지금은 남 일 같은 일이지만 언젠간 이뤄질 거란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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