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by 주원

중학생 때까지 살았던 집의 뒤편에는 오락실이 하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낡은 시멘트 건물이지만, 들어가 보면 게임기가 20대 이상 놓여있었다. 코인 노래방도 두 칸 있었고, 펌프도 두 대나 있었다. 시골 동네 치고는 꽤 괜찮은 오락실이었다. 오락실을 운영하는 부부는 우리 자매보다 두세 살 나이가 많은 두 딸이 있었고, 오락실 아주머니도 우리 부모님처럼 타지에서 온 분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친척처럼 가깝게 지냈다. 우리 집에는 투니버스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오락실 언니네(?) 집에 가서 투니버스도 보고 5백 원짜리 동전을 100원짜리 동전으로 바꿔주는 일도 했다. 종종 서로의 집에 모여서 고기도 구워 먹고 떠들고 했는데, 나는 언니네가 우리 집에 오는 것보다 내가 언니네 집에 가는 걸 좋아했다. 왜냐하면 무료로 밤늦게까지 게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기의 돈통을 열어두고 동전만 통과시키면 무한정 목숨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여기가 천국이 아니면 뭐겠어!


많은 게임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게임은 ‘더 킹 오브 파이터즈'라는 게임이었다(이름이 기니까 킹오파라 부르자). 일본에서 만들어진 게임인데 철권과 비슷한 격투 게임이다. 캐릭터 세 명을 고를 수 있고 상대와 싸워서 이기면 되는 단순한 게임이다. 철권 캐릭터는 썩 매력적이지 않고 게임 분위기도 우중충해서 끌리지 않았지만, 킹오파는 그래픽이 화려하고 전체 스토리와 캐릭터마다 설정된 뒷 이야기가 있었으며, 게다가 여성 격투가들이 많았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만큼 잘하지는 못해서 오락실 가족과 모임이 있는 날이 아니면 남자애들 뒤에 서서 그들의 플레이를 지켜보았다.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말라고 안 배웠어?


많은 캐릭터 중에서 내가 좋아했던 캐릭터는 단발머리에 헐렁한 청바지와 가죽 재킷을 입은 블루 마리라는 캐릭터와 번개를 사용해서 머리를 바짝 위로 올린 베니마루라는 캐릭터였다. 블루 마리는 컴뱃 삼보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격투 스타일을 구사하는데, 상대를 잡아서 찍거나 꺾거나 던지는 그런 기술들을 쓴다. 베니마루는 번개를 쓰는 초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것보다는 긴 다리를 사용하는 발 기술이 더 볼만하다. 두 캐릭터 모두 킹오파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버전에 포함되어 있는 오리지널 장수 캐릭터다. 어쨌든 그들을 좋아했는데 게임은 자주 할 수 없으니까 심심하거나 공부를 하다가 문제가 잘 안 풀리면 연습장에 그들을 그리곤 했다.


내 주변에 나처럼 오락실 게임을 좋아하는 여자애는 없었다. 오락실에 오는 언니들이 몇 명 있기는 했는데 거의 다 무섭기로 유명한 언니들이었다. 나처럼 이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까, 게임을 하는 걸 넘어서서 캐릭터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까, 하는 마음에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았는데… 말도 안 될 것 같지만 정말로 있었다! 나와 같은 것을 좋아하는 여성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대체로 그림을 잘 그리고 포토샵도 잘 다뤄서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배너나 축전 같은 것을 만들어 블로그에서 그들의 취향과 애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블로그를 조용히 구경하기만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댓글도 달고 친해졌고, 나중에는 나도 아예 팬 블로그를 만들어버렸다. 나는 그림을 배운 적도 없고, 잘 그리지도 못했지만 친절한 그녀들은 내가 뭘 올릴 때마다 응원해주고 좋아해 주었다. 그때 만난 사람들 덕분에 이전까진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코믹 월드라는 행사가 있는 것도 알게 됐고(물론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연필이나 색연필이 아닌 마카라는 것을 접해보았으며 포토샵도 그때 배웠다. 그림도 열심히 그렸다. 기억이 나지 않는 건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거울을 보면서 포즈 연구(?)도 했던 것 같다. 격투 캐릭터를 그릴 때 발차기를 비롯한 몸동작을 표현하는 건 중요하니까. 흠흠. 부끄러우니까 그만 떠올리기로 하자.


킹오파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인터넷 친구가 되었지만, 나중에는 게임보다도 그녀들과 소통하는 것이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안부를 묻고(당시에 주기적으로 이웃 블로그를 돌면서 방명록에 글을 남기는 유행이 있었던 것 같은데) 고민이 있으면 털어놓기도 하면서, 그들은 내 진짜 친구 같기도 했고 또 친언니 같기도 했다. 어린 시절 겪은 무서운 언니들(?)과 여자 친구들 때문에 또래 여성에 대한 신뢰는 거의 바닥이었지만, 내 인터넷 친구들 덕분에 여성에 대한 신뢰는 남길 수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팬질을 접었고, 2학년쯤에는 아예 블로그를 폐쇄했다. 이웃 중 각별했던 몇 명은 나의 행보에 충격을 받거나 아쉬워했다. 지금이라면 소통하는 통로를 하나쯤 만들어두었을 것 같기도 한데, 그때는 대학 입시를 준비해야 했고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간간히 그녀들을 생각했다. 닉네임은 기억나지 않지만 중국에서 유학 중이던 언니와, 애니고를 다니던 그 언니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아직도 게임을 좋아하고 있을까.


‘언니들, 잘 지내시나요? 15살, 16살 정도일 때 언니들을 알게 된 것 같은데, 우리가 헤어지고 15년 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전 그 뒤로도 게임을 좋아했어요. 대학생 땐 타임 크라이시스라는 총 게임에 빠져서 공강 시간에 종종 기숙사 근처에 있는 오락실에 가곤 했어요. 그건 꽤 잘했어요. 몇 번 하다 보니까 총알이 어디서 날아오는지 외워지더라고요. 오락실이 지겨워질 때쯤 컴퓨터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게임 좋아하는 대학 친구들과 피시방에서 던전 앤 파이터와 디아블로 3 만렙을 찍고, 오버워치도 했어요. 와우는 안 했냐고요? 네, 주변 선배들이 시작하지 말라고 말리더라고요. 그건 못 해봤네요.


언니들과 헤어진 뒤에는 덕질을 하는 것은 그만두었어요. 아니 그만두었다기보다는 예전만큼 뜨거운 마음으로 무언가를 좋아하는 게 잘 되지 않았어요. 뜨겁지 않고 미지근한 마음으로, 조용히 좋아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의외로 독하더라고요. 게임을 좋아하다가도 생활에 방해가 되거나 중독된 느낌이 들면 바로 게임을 끊었습니다. 그렇게 적당히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어요. 그래도 그것이 아쉽지는 않습니다. 한때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했던 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나이가 되었어요.


직장에서 만난 동료 중엔 여전히 무언가를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의 열광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부럽기까지 해요. 저도 예전처럼 무언가를 다시 뜨겁게 좋아할 수 있을까요? 먼발치에서 조용히 미소 짓기보다는 앞에서 손을 흔들고 함성을 지르는 그런 때가 또 올까요? 그러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그러기를 바라고 있어요. 언니들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우리의 기억을 단순히 십 대 시절의 부끄러운 기억으로 치부하지는 않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타인에게는 흑역사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저는 알고 있어요. 한때의 그런 기억들이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나의 친구이자 언니, 그리고 선배가 되어주어서, 또 한 시절을 함께 해주어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억할게요. 고마워요, 언니들.’

keyword
이전 05화군인이 되고 싶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