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덕분에 배우게 된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수영과 스포츠 댄스다. 물에 빠져서 죽으면 안 된다고 수영 강습을 받았고 ‘늦은 나이에 춤바람이 들면 안 된다'는 말에 스포츠 댄스를 배웠다. 아무래도 일찍부터 두 딸에게 끼가 있다는 걸 발견하신 것 같다. 사실 스포츠 댄스는 내 여동생이 먼저 배웠다. 동생이 스포츠 댄스 수업을 듣는 동안, 나는 플루트를 배웠다. 플루트도 물론 재밌었지만 스포츠 댄스가 더 재미있어 보였다. 연습실 문에 달린 자그마한 유리창으로 어린 친구들이 스텝을 밟고 이리저리 손을 뻗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만 그 당시의 나는 스포츠 댄스를 하기에는 너무 ‘모범생'같아 보였다. 낯도 엄청 가려서 말도 잘 안 하고, 조용히 구석에 앉아 책만 읽는 그런 재미없는 아이였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 걸 어떡해! 나는 나에게도 춤에 대한 열정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설거지를 하는 엄마에게 가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스포츠 댄스가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는 물소리 때문에 잘 안 들린다고 다시 말해보라고 했다. ‘휴… 나 스포츠 댄스 하고 싶다고…’ 엄마는 안 돼라는 말 대신에 플루트 수업이랑 시간이 겹치는데 플루트를 그만둬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결국 나는 동생과 함께 스포츠 댄스 수업을 듣게 되었다. 3.5센티 정도의 굽에 금색 끈이 달린 댄스화도 신었다. 모범생 같은 얼굴을 했지만 첫 수업에서 바로 ‘애제자'라는 칭호를 얻었다. 차차차에선 발을 크로스로 두고 팔을 위로 쭉 뻗는 ‘뉴욕'이란 동작이 있는데, 내가 팔을 아주 예쁘게 잘 뻗었다나 뭐래나. 물론 선수만큼 화려한 솜씨는 아니었지만, 선생님의 칭찬을 먹고 자라면서 차차차와 자이브, 그리고 룸바를 배웠다. 금색이었던 댄스화는 몇 년 사이에 코팅이 다 벗겨져서 베이지색이 되었다.
우리를 가르친 선생님은 한 대학의 강사였기 때문에 대학을 통해 가끔 공연 의뢰가 들어오기도 했다. 같이 수업을 들었던 친구들과 스포츠 댄스가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각종 축제의 무대 위에 올라가 허접한 스포츠 댄스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때 춤을 하도 많이 춰서 그런지 성인이 되고 나서는 춤에 관심이 없어져서 남들 다 가보는 클럽 한 번 가본 적이 없다. 정말 아빠 말대로 춤바람이 들지 않게 되었나 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스포츠 댄스는 그만두었고, 그 뒤로는 간간히 선생님의 연습실에 가서 벨리댄스나 브레이크 댄스(웨이브만 배웠다), 태보, 바디 컨디셔닝 같은 것들을 배웠다. 살짝 발만 담그는 수준이었지만 정말로 재밌었다. 덕분에 성격도 밝아졌고.
이미 스포츠 댄스를 배웠는데 할머니가 되면 할 버킷리스트에 스포츠 댄스를 적어둔 이유는, 내가 어렸을 적에 배운 것이 남자 댄서의 춤이기 때문이다. 같이 스포츠 댄스를 배우던 친구들은 대부분 여자였고 그중에서도 나는 키가 컸기 때문에 남자 역할을 맡았다. 남자와 여자의 스텝이 크게 다른 것은 아니지만, 홀드 자세부터 다르고 남자 댄서의 역할은 여자 댄서가 춤을 출 수 있도록 리드와 지지를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같다고 할 수도 없다. 스포츠 댄스를 배우긴 했지만 여자 댄서로서는 춤을 춰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가 되면 여자 댄서로서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우려고 한다.
누군가는 나의 미래 계획을 듣고 지금 하지 않는 이유가 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지금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나이가 들면 사는 것을 더 쉬이 포기할까 봐, 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나중으로 미뤄둔 것뿐이다. 지금은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것들이 차고 넘치기도 하고. 그리고 나는 지금의 나보다 할머니가 된 내가 춤을 추는 모습이 더 멋질 거라고 확신한다. 치명적인 표정 연기와 함께 손 끝에 힘을 주고 팔을 머리 위로 쭉 펼치고, 골반을 흔들며 스텝을 밟을 것이다. 독보적인 할머니가 될 것이다. 분명히.
한 30-40년 뒤쯤에 실버 스포츠 댄스팀 공연을 보게 되었는데 유난히 눈에 띄고 끼가 넘치는 할머니가 보인다면 잘 기억해두시라. 아마 할머니가 된 나일 테니. 깔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