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안리 해수욕장이 보이는 고모의 집에는 책이 많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고모의 두 아들들, 그러니까 나보다 네 살 많은 사촌 오빠와 나와 동갑인 사촌의 방에 책이 많았다. 물론 나와 내 동생의 방에도 책이 많았지만 그보다 더 많았다. 특히 사촌 오빠의 책장을 좋아했는데 어려운 책도 많았고 내가 좋아하는 중국 신화나 전설을 다룬 전집 수십 권이 꽂혀있었다. 어렸을 때는 거리낌 없이 사촌 오빠의 방에 들어가서 책을 읽었는데, 몇 년 지나 그것이 매너 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았고 더 이상 오빠의 책을 읽지 않았다. 대신 오빠가 있을 때 허락을 받고 방에 들어가서 책등을 쓱- 훑어보고, 읽어보고 싶은 책은 기억해두었다가 도서관에서 빌려 읽거나 사서 읽었다. 그렇게 읽었던 책 중에 하나가 로빈 쿡 작가의 <D.N.A.>라는 미스터리 소설이었다. 으스스한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중학생이 읽기엔 좀 어려웠지만.
사촌 오빠의 책장 말고도 고모가 살던 아파트 근처에는 특이한 서점이 있었다. 당시에는 대형 서점 아니면 동네의 평범한, 책과 참고서를 함께 파는 서점들 뿐이었는데, 그 서점은 다른 서점과는 달리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도서를 취급한다’는 콘셉트가 있었다. 요즘이야 다양한 독립 서점들이 있지만, 내가 중학생이었던 2000년대 초반에는 그런 서점을 보지 못했다. 그 서점을 발견한 이후엔 고모 댁에 놀러 갈 때마다 서점도 함께 들렀다. 서점을 다녀오고 나서는 나도 할머니가 되면 책방을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 책을 찾으면 느릿느릿 그러나 정확하게 책을 찾아주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몇 년 전에는 독립출판물을 하나 냈다. 솔직히 책을 만드는 일 보다 책을 파는 일이 더 어려웠다. 책의 콘셉트 상 수도권에서 팔길 원해서, 서울에 있는 많은 독립 서점에 입고를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다. 40통 정도 보낸 것 같은데 운 좋게도 20군데 이상의 서점에서 책을 받겠다는 답장을 받았다. 멀거나 시간이 없으면 택배로 보냈지만, 직접 보고 드리는 게 예의라 생각해서 백팩과 에코백에 30~40권의 책을 집어넣고 ‘책방 투어'를 다녔다. 늦여름이어서 땀이 주룩주룩 흘렀다. 친절한 사장님들은 더위와 무게에 지친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아이스커피를 내어주시기도 했다.
어느 책방에서는 ‘너무 힘들어서 그런데 조금 쉬어가도 될까요'라는 명목으로 눌러앉아 대표님과 수다를 떨기도 했다. 오늘은 작가로서 방문한 거지만 책방 사장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대부분 하지 말라고 말렸다. 자신도 책을 좋아하지만 책과 책방을 운영하는 건 별개의 일이라고, 뜻깊고 재밌는 일이지만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을 때도 많고, 벌이가 좋은 것도 아닌데 혼자 운영하니 책방을 닫고 쉴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솔직하게 말해준 사장님도 있었다. 경험하지 않은 일에 쉽게 공감을 해줄 수도, 가볍게 위로해줄 수도 없어서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했다. 내 책을 팔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이분들께 오히려 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정말로 책방에 책을 전달하고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몇 군데의 책방에서 문을 닫는다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책방으로 보낸 책이 다시 돌아오기도 했는데, 다 팔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쪽지가 붙어있었다. 책방에 쌓인 책들을 정리하며 미안해했을 사장님을 떠올랐다. 마음이 아팠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올초에 이사한 집 근처에는 귀여운 독립 서점이 하나 있다. 책방이면서도 작업실 같은 공간이라 꽤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아 책을 읽거나 자기만의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다. 이사하고 동네 친구도 하나 없었을 때, 주말마다 그곳에 가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귀여운 사장님은 몇 번 가지도 않은 나에게 먼저 인사해주시고 내 옆에 쓱 나타나 테이블 위에 간식을 올려놓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이 아닌 다른 분들이 책방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6일을 책방에 묶여있어야 하는 사장님을 대신해 책방의 단골손님들이 책방지기가 되어준 것이다.
이 책방에서 책 한 권을 썼다고 말할 만큼 책방에 애정이 있었던 나도(단골이라 자신 있게 말할 만큼 자주 가지는 못한 것 같지만) 책방지기를 자원했다. 주로 주말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책방을 지켰는데, 정말 너무 하리만치 사람이 오지 않았다. 몇 년 전에 들은 책방 사장님들의 말이 떠올랐다. 이럴 바엔 이 시간에 문을 닫는 게 낫지 않을까? 괜히 유지비만 더 나오는 게 아닐까? 괜히 책방을 연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나중에 출근한 사장님께 조심스럽게 얘기했더니 손사래를 치면서 신경 쓰지 말고 내 작업에만 집중하면 된다고 했다. 와, 책방 사장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구나. 책방 사장님은 책만 잘 팔면 되는 줄 알았는데 넓은 마음과 여유가 먼저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첫날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지만, 이후에는 책방지기를 하는 동안 여러 사람이 찾아왔다. 손님이 동시에 10명이나 있을 때도 있었고(동네 서점에서 이 정도의 인원은 굉장한 것이다), 책방이 신기해 보여서 들어오신 동네 주민이 나에게 딱 필요한 조언을 해주신 적도 있다. 책방을 열고, 간이의자와 테이블을 바깥에 내놓고, 책장에 쌓인 먼지를 털고, 커피를 내리고, 책을 팔면서 짧은 시간 동안 책방 사장으로 살 수 있었다. 이 경험은 언젠가 열게 될 나의 책방을 운영하는데 큰 공헌을 할 것이다. 아, 물론 그전에 넓은 마음과 재력을 갖춘 할머니가 되어야겠지...
중학생이었던 나는 책방을 열게 되면 책방 이름을 ‘부엉 부엉새가 우는 밤'이라고 짓겠다고 했었다. 서점을 떠올리기엔 적합하지 않은 상호명이지만 중학생의 머리로 나름 고심해서 지은 이름이었다. 동요 <겨울밤>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부엉 부엉새가 우는 밤
부엉 춥다고서 우는데
우리들은 할머니 곁에 모두 옹기종기 앉아서
옛날이야기를 듣지요
책방 이름은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책 읽어주는 책방 할머니의 꿈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