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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원 May 13. 2019

핑계

글 못 쓰는 이유

아침에 눈을 뜨면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시고 주섬주섬 운동 가방을 챙겨 헬스장으로 간다. 그날 해야 할 웜업, 웨이트 트레이닝 그리고 쿨 다운 등을 한 시간 반 정도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씻고 출근할 준비를 하고 나서 점심을 만들어 먹는다. 넉넉하게 만들어 저녁 도시락까지 준비한다. 남들이 점심을 먹으러 나갈 때쯤, 그제야 나는 출근한다.


밤에 퇴근하고 나면 일단은 소파에 강아지 인형을 껴안은 채로 잠시 누워있는다. 진짜 강아지는 키울 수 없으니까 강아지 인형을 키우고 있다. 이름은 누리다 (누리끼리하니까). 그렇게 잠시 멍 때리다 고개를 살짝 들면 싱크대에 점심 준비할 때 썼던 식기들이 쌓여있다. 아, 맞네. 아까 시간이 촉박해서 그냥 나갔었구나. 설거지는 생각보다 빨리 끝난다. 싱크대에 갈까 말까 고민하는 시간보다 더.


불면증과 얕은 수면으로 고생하지만 요새는 아침마다 운동을 하고 마그네슘도 복용하고 있어서인지 12시 근처만 되면 졸음이 쏟아진다. 덕분에 글을 쓸 시간도, 책을 볼 시간도 없어졌다. 글은 기분이 다운되어 있을 때 잘 나오는데, 운동을 하면 피곤한 게 아니라 오히려 활력이 생기는 편이라 글을 쓸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써볼까 해도 이 글처럼 유치한 문장들만 나온다. 그래도 이 편이 정신 건강에는 좋은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영원히 못 쓰더라도 그게 낫다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은 어디 대회라도 나가냐고, 무슨 운동을 그렇게 매일 하냐고 하지만, 결국엔 이것 또한 나를 구원하는 길이더라고. 몸이 힘드니까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 되더라고. 그리고 나를 더 아끼게 되더라고. 더 이상 슬프지 않으니 그것으로 된 것이라고. 어차피 당신들도 나에게서 항상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기대하지 않았냐고. 나 역시도 당신들에게 그런 모습만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그런 매일을 반복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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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그래도 탄수화물을 못 먹는 건 슬프다. 지난주에 친구가 제발 이건 꼭 먹어야 한다고 부탁하길래 어쩔 수 없이 앙버터 크로와상을 하나 사게 되었는데 한 입만 먹으려다가 길 한가운데에 서서 다 먹어치웠다. 동공이 커지는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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