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다른 취미가 없긴 하지만 정말 꾸준히 해오는 취미 중 하나는 산책이다.
그 중에 약간 별나다면 별나다고 할 수 있는게 비 오는 날 산책하기다.
비가 오면 보통의 한국인은 우산을 쓰고 나간다.
나는 우산을 원래도 싫어하지만 특히 산책할 때는 더더욱 싫다.
오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집엔 아무도 없었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배고프다는 말에 맥날 디럭스 브렉퍼스트를 사왔고 남편과 같이 맛있게 식사했다.
밥 먹고 난 직후에 혈당 스파이크가 올라간단 소리에 난 그냥 걸어야 겠단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남편이 비가 온다며 굳이 이런 날 뭐하러 나가니 했다.
나는 오히려 좋다 생각했다. 비 오는 날 산책한지 참 오래됐기 때문이다.
미네소타에 잠깐 있을때 혼자서 비 오는 날 미시시피 강가에서 강물 흘러가는걸 봤던 기억이 있다.
아직도 그 강물 흐르는 속도까지 생생하게 기억 난다. 그 위에 떠다니는 오리하나도 떠오른다.
지금 생각하면 그 강변에 나 홀로 서서 비 맞는 꼴이 참 신기한 광경이겠거니 싶다.
미국인들은 우산을 잘 안쓴다. 우비나 모자를 쓰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랬다.
그때 한창 내 심경은 착잡했던 것 같다. 당시 남자친구와 곧 이별을 해야 했고 무엇보다도 미국을 떠나기 싫었고 한국에 돌아가서 지난 과거를 모두 지워내듯이 미래를 위한 행위들을 해야만 했던터라 그저 우울했던 것 같다.
한국 돌아가기 전 마지막 의식을 나는 그 날 홀로 치뤄냈다고 본다.
계획했던 게 아니었고 그냥 비 오는 날이었고 기숙사엔 아무도 없었고 남자친구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으려 핸드폰을 끄고 밖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갑자기 지금 이 글을 쓰는데 그 때가 생각이나서 너무 가슴이 아프다.
그 때는 그런 낭만, 우울을 충분히 누리는 자세가 있었다. 지금은 모르겠다. 다 잃은 기분이다.
미국에 대한 조각난 기억을 되뇌이며 걸었다.
그러나 미국에 대해서만 생각하기에 나는 지긋지긋한 현실에 너무 찌들어 있었다.
한국인들은 우산을 쓰고 산책을 하지 않는다. 간혹 그런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그렇게 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나처럼 비를 맞아가며 산책을 하는 경우는 정말 거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산책길은 거의 나 혼자뿐이었다.
총 2명 정도 마주친걸 제외하곤 내가 홀로 그곳을 장악한 기분이었다.
근래들어 지하철이 너무 붐비고 갈수록 사람이 많은것에 대한 혐오도가 높아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예전에는 그 정도는 아니었을텐데 요새는 집에서 회사까지 가는 그 25분마저 힘들어지고 있다.
시야에 사람이 다수가 보이면 그 때부터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진다는 의미이다.
오늘 홀로 산책길을 걸으며 아마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돌아와서 씻고 브런치에 글로 남겨야지란 생각을 했지만 모든 기억이 그대로 남아있진 않다.
아, 요새 들어 내 현실에 대해 딱히 만족감을 못느끼는 중이어서 그것에 대해 쓸 참이었다.
1. 이 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가? YES
- 이 회사의 많은 장점이 있지만 여기가 내 정착지라고 생각하면 너무 우울해진다.
더 나은 조건에 회사에 지원해서 합격한다면 안녕하고 바로 뛰쳐나가고 싶다.
2. 더 나은 조건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 더 높은 연봉, 더 높은 직급을 의미한다.
조금 더 욕심내자면 내가 하는 업무가 좀 더 독립적이길 원한다.
3. 지금 하는 업무가 좋은가? YES
- 좋다. 업무에 대한 불만은 거의 0에 수렴한다고 보면 된다.
4. 미래에 대해 막막한가? YES
- 회사를 다니고 있고 결혼을 했고 당장 마주하고 있는 엄청난 불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묘하게 막막하다.
5. 막막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 도태될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그곳에서 비롯된게 아닐까 싶다.
더 이상 다른 곳으로 움직일 수 없을까봐 두렵고 더 이상 내가 시장에서 팔리지 않을 기성세대가 될까 두렵다.
6. 그래서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가?
- 잘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게 회사를 때려치는 건 아닌 것 같다만 회사가 전부인 인생을 살고싶진 않다.
단순명쾌한 삶을 살고싶다. 지금으로선 그게 내가 원하는 삶에 가장 부합하는 것 같다.
7. 뭘 하고 싶은가?
- 하고싶은 건 없다. 이따 점심에 남편이 해준 밥 먹고 쉬다가 영화보러 가는게 할일의 전부이다.
이 맘때쯤 St. Patrick's Day였고 시카고 여행을 갔나보다.
10년 전에. 어떻게 알았냐면 추억 저장소인 페이스북에서 알려줬다.
사진을 보니 참 어렸구나 싶다.
그립기도 하다. 미국에 있을 때가 그나마 제일 행복에 가까운 삶을 살았던 5개월이랄까.
지금의 삶은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이라고 예쁘게 포장하기엔 너무나도 기대가 없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