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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ilda Aug 26. 2023

무제

마지막으로 글을 쓴 날이 언젠가보니 8.24.이었다.

목요일. 바로 이틀전인데 무엇이 그렇게 만족스러워서 보통은 한결같이 제목을 무제로 정하는 편인데, 그 날만큼은 글의 제목을 '즐거운 하루'로 정했다.


오늘은 주말이다. 즐거운 주말. 그런데 남편이 지난주부터(사실은 훨씬 전부터) 저기압이다.

회사를 다니기 싫단다. 나도 이전 직장을 그만두기 전까지 노래를 부르다시피 했던 문장이라, 그 마음이 어떤진 익히 알고 있다. 나는 그러나 한결같이 남편에게 이야기한다. "어딘가에 합격하고 때려쳐라. 아무것도 없이 때려치면, 가정에 대한 책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니 나와도 이혼할 줄 알아라."라고 이야기한다.


솔직히 나는 자신이 없다. 백수생활하는 가장이라니. 

내 아버지는 자식들과의 소통에는 잼병이었으나 가장으로서의 역할, 꼬박꼬박 돈벌기만큼은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해냈다. 그랬기 때문에 내 인생에 앞으로도 영원히 가장의 역할을 져버린 남편은 없을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누누히 이야기한다. 더 벌어오면 좋지만 그게 아니라 할지라도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은 필수라고. 사업가가 될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냥 직업의 귀천없이 월급만 따박따박 벌어오라고.


엄마는 항상 내게 이야기했었다. 그래도 니 아버지는 저렇게 한결같이 돈 벌어오잖니.

그 한마디로 모든 문제와 불만 사항을 일축해버리곤 했다.

그런 가정에서 커온 나로서는 별다른 방도가 없다.

내가 출근할때 잠자는 남편을 바라볼 자신이 없다. 나는 원체 일은 반드시 해야한다는 주의의 인간이다.

백수남편은 내 현재와 미래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은 아침엔 짧게 산책을 하고 강남으로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가 근처에 라멘 맛집에 갔다.

국물까지 싹싹 비운 소곱창라멘. 원체 라멘을 좋아하니까. 공깃밥까지 말아먹은건 이번이 처음이다.

라멘을 먹고 집에 오자마자 집 근처 부동산에 갔다.

곧 이사할 때가 다가오기도 하고 매달 은행에 전세 대출 이자를 월급의 1/3씩 바치고 있어서, 더 나은 방도가 있을지 물으러 갔는데 현실은 현실이다. 더 나은 방도는 없다.


우리는 바로 앞에 무인 편의점에서 몬스터 음료를 사마시고는 홈플러스에 가서 장을 봤다.

항상 사는것만 골라온다. 맥주, 그릭요거트, 고기.

집에 와서 각자만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남편은 마음이 고달프다고 했다. 힘든가보다.

나는 집에와서 할인해서 사온 한우를 하나 구워먹고 켈리 병맥주를 마시고 있다.


이제 뭘하지. 브런치의 글을 읽다가 오늘 하루를 기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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