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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ilda Nov 08. 2023

나의 남편

요새 나는 요리를 자주한다. 오늘도 고구마 맛탕, 숙주나물 무침, 닭가슴살 구이 등을 했다. 

집에 있는 온갖 팬이니 냄비니 다 설거지거리로 쌓여있다.

남편은 집에와서 밥을 먹고 설거지 산더미를 헤치운다.


오늘은 영업 실적이 영 좋지 않은 날이라고 한다.

밥을 먹는 표정이 어둡다. 내 남편은 어린 아이 같아서 그날의 감정을 그런식으로 항상 표현한다. 오늘은 성과 없이 힘든 날이라고 한다. 


나는 말한다. "공치는 날이 있지. 365일 다 만사형통하면 정신과의사는 뭐먹고 살겠어."


남편은 밥을 씹어 넘긴다. 상추를 찢어 밑에 깔고 현미밥을 깔고 그 위에 닭가슴살 구이를 올린 내 방식대로 만든 포케다. 


하루종일 아무와도 이야기 하지 않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나는 저녁 때 남편이 오면 말이 하고 싶고 밖에 나가고 싶다. 어제는 티격태격하느라 힘을 빼서 못 나갔다. 오늘은 나가자고 떼를 써서 나가서 50분 가량 걷고 왔다. 내가 좋아하는 겨울 밤 날씨다. 


웃통만 벗고 내가 사준 에어팟을 귀에 꼽고 한참을 설거지를 하는 내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이제는 다 끝났는지 내 방에서 옷걸이를 챙겨서 나간다. 이제 빨래를 너는 시간인가보다.

남편의 평일 루틴이다. 원래 내가 회사를 다닐땐 요리도 직접 본인이 했다.


생각해보면 저런 사람이 또 없다 싶다. 고집이 세고 어린 아이 같은 면이 있긴 하지만 나도 완벽이랑은 거리가 머니깐. 어제그저껜가 남편은 연분홍 빛 장미 3송이를 사왔다. 내가 꽃에 돈 몇만원씩 쓰지 말라고 해서 딱 3송이만 사왔다고 한다. 받자마자 사진을 찍어 프로필로 해두었다. 지금은 꽃병에 꽂아두었다.


곧있으면 결혼기념일이다. 이번이 3번째 결혼기념일이구나.

시간 참 빠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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