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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ilda Nov 11. 2023

귀환

서울에는 오후 15시에 겨우 도착했다. 분명 오늘 7시 15분에 눈을 떠서 조식을 먹고 8시 경에 체크아웃을 했는데 어쩌다보니 도로 사정상 매우 늦게 도착한 것이다.


조식은 정말 단촐했다. 한식을 아침으로 먹지 못하는 나에겐 먹을거라곤 빵이나 샐러드 뿐이었다.

간단하게 먹고선 강릉항에 가서 아침 바다를 구경하고선 테라로사에 가서 오늘의 드립 커피를 마셨다.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바로 앞엔 호수같은 물이 흘렀고 까페가 아늑한 분위기에 주위는 책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확실히 서울 여느 카페와는 달랐다.


2층에는 인문학 서적만 파는 한길사 서점이 있었다. 남편도 나도 역사나 철학, 예술에 꽤 관심이 많은터라 즐겁게 훑어봤다. 나는 책보다는 커피 찌꺼기로 만들었다는 테라로사 양초의 향에 빠졌고 결국 garden party라는 의미의 향초를 구매했다. 강릉 여행의 기념품이다.


가는길에 차는 많이 안막혔으나 중간에 삼중 추돌 사고로 추정되는 대형 사고로 인해 도착 1시간 전부터 아예 도로 위에서 멈춰있었다. 결국 3시 경에 도착하였고 나는 샤워하고 짐을 정리한 후 남편이 내 옆에서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기 시작한 무렵부터 저녁을 만들었다. 친정에서 가져온 청국장으로 청국장 찌개를 끓였다.

사실 이번이 처음으로 청국장 찌개를 끓여본 것이었다. 맛은 다행이도 괜찮았다.


이번주에는 남편이 김을 3만원어치 산 것만 제외하면 장을 본 일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 두부 1모, 묵 1개, 양파와 파, 고추 등이 냉장고에 남은 전부이다. 여행으로 인한 지출이 꽤 컸으니 앞으론 다시 긴축 재정이다. 그래도 이번 여행에선 술 값은 아꼈다고 본다. 무알콜 맥주 3캔을 사서 1캔은 남겨서 집에 가져왔으니 말이다. 예전엔 여행만 가면 앞날이 없단 듯이 마셨던 우리인데 세월이 흘러 이렇게 술을 멀리하게 되었다.


강릉 여행은 여러모로 삶 전반을 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물론 도로에서 버리는 시간이 많지만 그래도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떠올리게 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운전하는 남편과 핸드폰 없이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서 부부사이가 돈독해지는 좋은 효과도 있다.


지금 나는 테라로사 향초를 켜두고 이 글을 쓴다. 남편은 내가 만든 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고선 다시 힘을 내서 설거지를 하는 중이다. 예전같으면 여행 다녀왔으니 시켜먹거나 라면 먹자고 했을 나이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러지 말아야지 싶어 손수 만든 저녁을 남편에게 먹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별 것 아닌건데 이상하게 마음이 놓인달까.


햄스터는 우리가 없는 집에서 나름대로 톱밥으로 자신의 주변을 꽁꽁 싸매고 잘 지내고 있었다. 실내 기온이 17도까지 내려가 있었지만 잘 버텨주었다. 집에 오자마자 보일러를 틀었다. 우리를 위함도 있으나 햄스터를 위해서도 그렇게 했다. 저 친구는 정말 건강한 친구이다.


다시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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