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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ilda Dec 10. 2023

무제

오늘도 8시경에 눈을 떴다. 보통 주말에도 항상 남편이 나보다 먼저 일어나는 편인데 이번 주가 특히 지치는 주였는지 주말 내내 내가 남편을 깨웠다.


남편은 아침으로 그릴치즈샌드위치를 해줬다. 사과도 2개나 깎아서 올려두었다.

나는 원두가 다 떨어진터라 캡슐 커피를 내렸다. 얼음이 없어서 캡슐 커피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탔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는 안 마신지 굉장히 오래됐다.


아침을 먹고 나는 혼자 산책을 나섰다. 남편은 어제부터 오늘만큼은 혼자 생활하겠다고 간곡히 부탁한터라 나도 혼자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날이 안 추워서 사람이 많았고 나는 혼자 걷다보니 생각이 많아져 마치 걸으면서 가계부 쓰듯 내 월급에서 얼마를 제하고 얼마만큼 적금을 할지 등을 계산했다.


남편에게 공유하고 우리의 얼마 안되는 재산의 합계를 내본다.


그러는 동안 집에 도착했고 샤워를 하고 영화관에 갔다. 영화 나폴레옹을 봤는데 러닝타임이 2시간 반 이상이 되서 중간에 화장실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 영화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을 뿐 큰 임팩트는 없었다.

특히나 요새 좋은 영화를 많이 본 터라 이번 영화는 아쉬움이 좀 큰 영화다.


집에 오는 길에 갑자기 김밥이 먹고싶어 집앞 김밥나라에 가서 한줄만 포장했다. 아주머니 안색이 너무 안좋아서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얼굴에는 아무런 삶의 희망도 남지 않은 듯한 무표정만 있었다. 새까맣게 어두운 인상의 아주머니는 아무말 없이 김밥 한 줄을 내주고 카드를 결제했다.


남편과 같이 집에 돌아와서 김밥을 먹었는데 맛은 있었다. 김밥 한 줄에 3천원이구나 하고 먹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고기가 또 먹고싶어서 남편에게 어제 장봐온 고기를 구워달라고 해서 결국 우리 부부는 3시 30분이란 어정쩡한 시간에 밥을 먹었다. 내가 너무 잘 먹어서 놀란 남편. 


원래 나는 양꼬치가 먹고 싶었으나 11월 한달간 내가 회사를 안 다녔기에 빠듯해진 우리 경제 상황으로 인해 미뤄졌고, 그래서 집에 있는 돼지고기를 먹은 것이다.


고작 1달, 11월 한 달의 월급을 못받은 것일뿐인데 왜이렇게 삶이 가난해진 것일까 자꾸 자문한다.

분명 남편은 계속 회사를 다니고 나도 11월 딱 1달을 쉬었을 뿐인데 사과도, 고기도, 호떡도 모두 비싸졌다. 그게 이유일까.


지난번에 장봐온 사과는 이름부터 envy이다. 그만큼 가격이 높았고 맛도 좋았고 사과 한 알이 큼지막했다.


그 사과는 금새 사라졌고 다시 사과를 주문할땐 쿠팡에서 그것보다 싸고 알이 아주 작지만 갯수는 여러개인 사과를 구매했다.


예전에 엄마가 아빠랑 같이 상경해서 나를 가졌을때인가 사먹은 사과가 너무 작고 초라하고 벌레 먹은 사과여서 그걸 본 외할머니가 딱하게 생각했단 말이 간혹, 아니 매우 자주 떠오른다.


우리 부부는 신혼 초기엔 돈을 물쓰듯 썼다. 연애를 짧게 하고 결혼하기도 했고 그 무렵 특히나 오마카세, 호텔 부페가 유행하기도 했던터라 유달리 신혼 초기 첫해에는 돈을 펑펑 써댔다. 


그 당시는 코로나19로 인해 남편 회사 인센티브도 꽤 나왔던 기억이다.


지금은 정반대다. 남편 회사는 더 이상 인센티브를 넉넉히 주지 않고 있고 갈수록 남편은 본인이 하는 일을 힘겨워하고 못견뎌한다.


아내인 내가 올 한해 총 3번 입퇴사를 반복하는 동안 남편 또한 때려치고 싶다고 말한게 부지기수다.

그러나 남편은 때려치지 못했고, 그렇게 흘러 흘러 12월 10일이 된 것이다.


연말이라기엔 날씨가 너무나도 푸근하다.


영화 나폴레옹의 전투 장면에 나오는 눈밭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싶었다.


올 한해를 이런식으로 마무리하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올 연초에도 그런식으로 해를 시작할 줄 몰랐다.

너무나도 서프라이즈가 많은 해인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살아있는 이상 계속해서 살아야하고 사과도 먹어야하고 가끔은 고기도 먹어야한다.

일상의 무료함과 지리멸렬함을 잊기위해서 영화도 봐줘야 한다.


이렇게나 할 게 많은 것이다.


책을 읽어야지 생각만하고 아직 이번주엔 읽지를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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