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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by Minnesota

출근길에 비에 완전히 젖었다. 지하철을 탈까 잠시 망설였지만 나에게 지하철은 거의 마계나 다름없는 곳이다. 결국 비에 다 젖어 버스를 타고 회사에 왔고 어제 해결되지 않은 건으로 1030에 상사랑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물에 젖었는지 아이폰은 충전기를 꽂으니 아예 알람이 울리며 빼라고 경고를 했고 결국 지금에서야 9%에서 충전이 가능해졌다.


그 와중에 선크림 바른 손으로 우산을 접는데 잘 접히지 않아 손가락을 비었다.

피가 새어나오는것을 한참 후에 발견했다.


비 오는 사무실은 여느때처럼 조용하다.

모든게 스트레스다.


어제 엄마에게 전화하니 나와 4살 차이 나는 남동생이 다시 집에 들어오기로 했단다.

남동생은 고등학생때부터 아주 예민했고 대학은 재수를 했으나 실패해서 지방대를 다니다 그마저도 자퇴했다. 군대라도 잘 마치고 나온걸 거의 행운으로 봐야할 정도랄까. 그후로 계속 회사를 들어가도 나오고, 알바도 오래 못한다. 정신과약도 당연히 먹고 있다고 들었다. 나는 동생과 전혀 얘기를 안하고 산지 꽤나 오래됐다.


엄마아빠는 동생이랑 같이 살기 싫은데 동생 상태가 너무 안좋으니 억지로 오라고 한 것 같다.

같이 살면 엄마아빠랑은 이제 통화도 편하게 못할 것이다.

그 와중에 남편은 본인 면접보러다닌단 핑계로 매일 저녁마다 징징대고 짜증을 낸다.


그리고 부모님이 다음 학기 등록금으로 쓰라고 500만원을 주셨다.

나는 돈을 받으려고 전화한게 아니었는데 돈을 받았고 남편은 또 그게 기분이 나쁘단다.

당장 등록금으로 돈이 안나가게 된건 감사한일인데 왜 본인이 난리인지 나는 이해가 안간다.


에어팟 프로가 망가져서 서비스센터를 2번이나 갔다오고 결국 결단을 내렸다.

저가형 이어폰으로 갈아타기로. 당연히 노캔 기능은 잘 안느껴진다.

어쩌겠는가 지금 이 마당에 30만원짜리 똑같은 에어팟 프로를 사기엔 내 재정상태가 녹록지가 않다.

남편은 언제든 곧 백수신세가 될텐데, 에어팟 프로 망가졌으니 다시 사야지 룰루 하기엔 아직 내 정신 상태가 말짱하다.


지도교수님은 연구년인데 박사생은 안 가르치고 석사생 수업은 들어가시는 모양이다.

8월 초에 한번 더 줌 미팅 하기로 했었는데 잊으신건지 연락도 없다.

나도 연락을 딱히 할 생각은 없다.


결국 나는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다음 학기 등록금을 내고 또 토요일에 하루종일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어야한다.


이번 여름은 총체적 난국이다.

남편은 새로 들어간 직장을 나와야하는 상태가 된지 4주째고,

나는 나대로 매일 회사에서 '뇌썩음'현상을 겪고 있다.

밖에서 누군가 나를 봤을때 문제 없어보일지 몰라도 나는 속이 썩어난다.

내 부모님은 아들 자식 하나가 계속 문제를 일으키고 자립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보이는 고졸 백수가 되어 고통에 허덕인다.


모든게 총체적 난국이다.

이 와중에 나는 나라도 계속 회사는 다녀야하고, 나는 꾸역꾸역 버텨서 여기까지 온 터라 이제와서 커리어를 놓기엔 돈을 떠나서 너무나도 아깝기에 매일 출근을 한다.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운동도 매일 아침마다 한다.

특별한 효과를 기대하는건 아니다.


작년에 총 3번의 이직을 했고 그 이전에도 이직은 여러번 한 나다.

요새 유튜브에 자꾸 어떤 모종의 계기로 인해 짤린 사람들이 자꾸 등장한다.

그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안정적으로 회사를 다니는게 결코 쉬운게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는 그렇게 고대하던 회사에 들어간 후, 다시 퇴사하여 대학원에 간다.

그 누군가는 서울대 대학원에 떨어졌다고 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연실색한다.


각자의 기준이 있고 각자의 삶이 있겠지.


나는 내가 매학기마다 돈을 지불해서 박사를 따고 얻는게 뭘지 잘 모르겠다. 여전히.

지도교수님과의 관계도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알 수가 없다.

한치 앞도 모르겠는데 자꾸 새로운 업무가 던져진다.


우리 부모님은 아빠 정년 퇴직 이후로 아무 수익도 없이 근근히 살아나간다.

그 와중에 딸이 고집해서 들어간 박사과정 등록금까지 바리바리 챙겨보낸다.


이게 총체적 난국이 아니면 뭘까?

겉으로 보기엔 괜찮다? 뭘 보고 판단할까?


어제는 남편이 내리 면접을 3개를 보고 바로 우리 회사에 와서 6시 땡하고 차를 탔다.

그때만큼은 남편에게 고마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집에가니 온갖 짜증은 다 냈고, 나는 오자마자 강아지 밥 주고 산책을 하고 밥먹은 후엔 또 내일 먹을 도시락을 쌌더니 8시가 다 됐다.


집에서는 아주 이상한 냄새가 난다.

남의 집에서 한 요리 냄새, 이 집 자체의 냄새, 개 냄새 기타 등등.

나는 후각에 민감한데 이 집 냄새를 없앨 방도는 아예 없어보인다.

디퓨저를 아무리 놓아도 소용이 거의 없다.


하루종일 비가 오려나보다.

여러가지로 정신이 없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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