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럴드 머네인이란 작가를 처음 알게 됐다. 어제 그의 소개를 읽고 알라딘에서 책 한권을 구매했고 읽고 있다.
단편집 <소중한 저주>라는 책인데 사실상 제목으로 인해 이 책을 구매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는 이번주 월요일 2곳의 합격 소식 이후로 줄줄이 탈락하고 있다. 9월23일까지 재직했던 곳을 다니면서도 꽤 자주 지원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던터라 그리 상심이 크진 않다. 그러면서도 내일 2곳의 면접에 대한 부담은 더욱 커졌다고 고백해야겠다. 그러나 나는 줄줄 외운 답변을 늘어놓지는 않을 생각이다.
그냥 가서 원하는 대답, 또는 적합해보이는 대답을 제시할 것이고 낙첨된다면 좋은 것이고 안된다면 그런가보다하고 말 일이다. 결국 어디까지고 운에 달려 있단 생각이다. 그들은 이미 내가 가진 전부를 서류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내일은 나의 용모와 내 태도, 생각, 가치관을 평가할테니.
집에서 온종일 어두운 스탠드 불 아래 있다. 서재는 형광등이지만 안방은 스탠드만 켜둔다.
눈이 나빠질까 걱정이 되긴 하면서도 굳이 형광등 불빛 아래 있고 싶지는 않다.
오늘은 내 목소리가 담긴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지 않으려고 한다. 근래 자주 올리기도 했고 별다른 특별한 기록도 없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위염 약 한 알을 추가로 먹었더니 속이 부글거리는게 조금은 잠잠해졌다.
먹지말라는 커피를 기어코 오후에도 먹었다. 벤티 사이즈 디카페인 아아의 반을 텀블러에 담아두고 나머지 반에는 우유를 섞어서 하루 온종일 나눠 마셨다. 고집도 참 세지. 그렇게 먹지말라는데 왜 그렇게 커피를 마셔대는걸까.
내가 사는 이 집은 창문을 열면 바깥에서 하는 이야기, 잡동사니를 움직이는 소리까지 몽땅 다 들린다.
반대로 내가 이 집에서 내는 소리, 말도 밖에 다 들린다는 의미다. 낮에는 특히나 더욱 조용하다.
TV를 켜는 일이 절대로 없는 나는 유튜브를 켜두긴 하지만 그 마저도 책 읽을 땐 끄니까 적막에 휩싸여 산다.
강아지조차도 짖는 일이 없는 아이여서 그야말로 고요의 시간이다.
아침 시간과 오후 시간 간의 간극이 너무 커서 아침 시간이 마치 먼 과거 일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바로 오늘이 그렇다. 평소였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콘텐츠를 일부러 보는 중이다.
지금은 제목도 기억이 안나는 게이 남성 3명이 등장하는 코미디 미드를 보는 중이다.
코미디는 휘발성이 강하다. 그래서 불안감 해소용으로 적합하다.
제럴드 머네인이란 작가의 이름을 내가 외울 수 있을까.
중학교때부터 읽던 작가의 이름 외에는 근래들어 내가 외웠던 작가 이름이 없는 것 같다.
일례로 알라딘 앱을 통해 알게 된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이름도 외우지 못한다.
참으로 태평한 나날이다.
밖에서 본 나는 태평하기 그지없다. 실상도 그러하다.
어제는 불안감이 나를 휘감았던 하루였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다.
잔잔한 호수랑 유사하다. 비록 위에서 계속 꾸르륵 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나긴 하지만.
근래엔 구독하고 있는 브런치 작가의 글 업데이트가 잘 안 되는 것 같아 아쉽다.
나처럼 2015년도부터 꾸준히 일기처럼 올리는 사람이 있을까?
나에게 브런치는 삶의 일부분이라, 이게 사라지는건 상상이 잘 안 된다.
제럴드 머네인은 호주 사람인데 본인이 사는 집 외에 다른 곳에 가본 일이 없단다.
신기하다. 그런데 어떻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문학 작가가 되었을까?
하긴. 많이 돌아다닌다고 꼭 그게 문학적 가치로 되돌아오는 것은 아닐테다.
그의 사진을 보면 호주의 광활한 토지에서 무언가를 캐서 먹거나 팔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그는 멜버른 대학을 나와 영문학을 오래 가르쳤다고 한다.
나는 영문학과를 나왔고 영문학을 공부하던 그 시기가 현재까지 내 인생의 유일하게 행복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어쩌면 되돌아간다면 나는 영문학을 더 공부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학부 교수님이 제시한 아일랜드의 더블린 대학이든, 어디든, 방법을 찾아 영문학을 더 공부했더라면 지금의 나와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영문학이 아닌 문화콘텐츠학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밟고 있다.
내가 35살이란 나이에 문화콘텐츠학 박사과정을 밟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다.
강아지는 삐쩍 마른 진돗개의 형상에서 벗어나고 있다. 점차 뼈가 굵고 듬직한 래브라도의 얼굴이 드러난다.
다 자란게 아닌건지 여전히 쑥쑥 커가고 있다.
하루 온종일 강아지랑만 마주보고 생활한지 3주째다.
물론 퇴근하고 마주하는 남편이 있긴 하지만 그건 아주 잠깐일뿐이다.
내일은 또 어떻게 흘러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