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웃음을 사기 좋은 이야기 하나만 하고 싶다.
나는 프리다 칼로를 매우 좋아한다.
학부 시절에 중앙도서관에 혼자 앉아서 앉은 자리에서 프리다 칼로 자서전 한권을 끝냈을 정도다.
프리다 칼로에 대한 설명은 위키피디아가 나보다 더 잘 할테니 넘어가겠다.
그녀의 삶은 육체적, 심리적 고통으로 점철된 삶이다.
그런데 자꾸 나는 그녀의 삶을 나의 삶과 겹쳐서 본다.
그러니 비웃음을 살만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내 삶은 그녀의 삶과 견주기에는,
굉장히 보잘것없는 소시민의 삶이다.
예전 국어책에 나온 그 시가 떠오른다.
정작 화내야 하는 커다랗고 중요한 이슈에는 입 꾹 닫고 고개를 숙인 채 모르는 척 하면서
설렁탕에 고기가 몇 점 없다고 주인장에게 소리지르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나는 프리다 칼로를 좋아한다.
그녀의 정치색에 동조하긴 어렵지만 그녀가 자신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한 점이 존경스럽다.
그녀는 자신의 아픔을 자기연민의 기반으로 활용하지 않았다. 용감하다.
반면에 나는 자기연민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객관화를 열심히하고 나 자신에게 매우 냉혹한 사람이기도 하다.
양면적인 인간이랄까.
위 그림은 프리다 칼로가 자신의 남편의 외도로 인해 상처를 받고 그린 그림인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녀의 아픔을 헤아릴 수는 없다. 그리고 그녀처럼 머리를 숏컷을 해본 일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내 마음이 갈갈이 찢기는 경험을 수차례 해본 것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예전에는 울고 불고, 누구를 탓하고, 미신을 믿고, 그 밖에 모든 행위를 하면서 울분을 토해냈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것도 안한다.
나 자신을 포함해 누구도 탓하지 않고, 점을 보지도 않고, 술을 먹지도 않고, 누군가를 붙들고 궁금해하지도 않을 이야기를 토해내지도 않는다.
그냥 가만히 있는다.
아마도 모든 에너지가 고갈되어서 그런 것 같다.
한풀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의 에너지가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니까.
지금 나는 안온한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으며 내가 억지로 무언가를 틀어놓지 않는 이상 내 숨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안들리는 집에 있다. 그냥 그 상태에 놓인 채 무념무상에 빠져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