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지 한 달 남짓 지났다. 정확히 말하면 한 달 반 정도 흐른 것 같다. 처음 부모님 집으로 들어와서 일주일은 마무리 짓지 못한 회사 일과 질질 끌고 있던 관계로 하루에도 2, 3번씩 화를 내며 보냈다. 그 다음 일주일은 쫓겨나듯 스페인으로 떠나 있었다.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정열’의 스페인은, 모든 정열과 에너지와 희망을 잃은 상태인 나에게 그리 정열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있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해가 뜨면 해가 뜨는 대로. 그들이 먹는 음식과 그들이 마시는 커피와 그들이 보는 그림과 그들이 걷는 거리를 걸었다. 그렇게 또 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예정과 달리 한 주 일찍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현실 감각을 되돌리는 데 집중했다. 일자리를 찾고 부모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시늉을 하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는 사이 자연스레 그 곳에서 맺었던 인연은, 처음에는 뼈를 깎는 고통과 함께 결심을 내린 이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끊었냈다. 도려냈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텅 빈 호텔에서 엉엉 울었다. 여행은커녕 내 자신 몸뚱아리 하나도 건사하기 힘들어서 울었다. 그렇게 울며 한국으로 돌아가는 티켓을 끊었을 땐 이미 날씨는 개어있었다. 나는 그 날씨가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그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돌아온 한국에서 나는 또 살아나갔다. 처음 며칠간은 밤낮이 바뀌면서 거의 침대에서만 생활했다. 약속이 있는 날을 제외하곤 침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때때로 이력서를 작성하고 조금이라도 나아보이는 직장을 구하기 위해 노트북 자판을 두들겼다. 그렇게 한 동안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데 집중했고 최근 2주간은 그 노력의 결실을 무던하게 또는 무기력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상하리만치 결과는 내가 예상한대로였다. 조금이라도 일하고 싶다 생각한 곳은 결과가 좋았고 정말 원하지 않지만 쓴 곳은 여지 없이 탈락이었다. 그 사이 나는 5군데에서 1차 합격 통보를 받았고 그 중 1 곳은 1차 면접에서 탈락, 다른 1곳은 필기 시험을 치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1곳은 최종 면접에서 탈락, 다른 1곳은 이틀 후에 필기와 면접을 보러 가기로 되어 있으며 마지막 1곳은 6월 6일 현충일에 필기 시험이 잡혀 있다. 퇴사 후에 결실이라고 하면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력서를 넣고 결과를 확인하고 합격하면 안도하고 면접을 위해 준비하고 탈락하면 씁쓸함을 맛보는 이 모든 과정을 제외하고 나는 딱히 하는 일이 없다. 집에서 소설을 읽거나 지인에게 심심함과 무료함을 토로한다. 가끔 정말 일상의 무료함에 지칠 때면 원치도 않는 만남을 자진해서 계획한다. 때때로 나는 엄마와 공원에 가고 항상 가는 까페에서 헤이즐넛 커피를 마시고 결점 하나 없이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본다. 무해한 만큼 감흥도 없는 산책이다. 때때로 나는 혼자 서울을 돌며 꼭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하며 밖에 나갈 구실을 찾기도 한다. 혼자 외출하면 매번 돌아오는 길에 복잡한 심정이다. 어쩔 때는 책에 몰입하기도 하고 어쩔 때는 읽는 척을 할 때도 있다. 막막함에 사람을 찾고 이야기를 나누어도, 안타깝지만 원하는 만큼 ‘이해’받는다는 느낌이 없다.
그렇게 나름의 노력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누군가 말한 것처럼 시간이 흐른다고, 고작 한 달이 흘렀다고 내가 겪은 일들이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기억에서 사라지진 않는다. 나의 지인 중 하나는 자신의 직업에 50%로는 만족하기에 행복하다고 한다. 또 다른 지인은 사람들이 좀 더 잘 아는 언론사에 들어가기 위해, 더 높은 월급을 받기 위해, 자신이 신봉하는 논조대로 기사를 쓰기 위해 입사했던 언론사를 나와서 재입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 같은 사람에겐 ‘기자’가 딱이라고 서슴지않고 추천한다. 나 같은 사람이 누굴까? 본인인 나조차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는데 저 사람은 나랑 2시간 30분 대화를 나누고 나에 대해 저렇게 확신이 차서 이야기를 하는구나. 신기해 했다.
나는 솔직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하는 수 없이 듣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내 이야기는 방향을 재조정하고 내용이 달라진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쓴다. 사실 나는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다. 졸업한지 2년이 넘어가는데 어느 곳에도 소속을 두지 않고 심지어 알고 지낸지 5년이 흐른 내게도 무슨 준비를 하며 살아가는지 말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이 나는 부럽지 않다. 연봉 2000 조금 넘게 받으며 무기계약직으로 일하며 자신의 일에 50% 정도 만족한다고 말하는 후배가 부럽지 않다.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다. 아 참, 행시에 붙어서 편안하게 학교 생활하는 고등학교 친구도 나는 부럽지 않다. 그네들은 그네들의 삶을 사는 것이다. 나는 나의 삶을 사는 것이다.
다만 내가 알고자 하는 것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수도권에 위치한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을 것이다. 말그대로 새로운 시작. 내가 잘 알고 있는 경기도와 서울 지역에서 지하철과 버스로 출퇴근하면서 아직 그들이 누군진 모르지만 새로운 직장 동료, 새로운 직장 상사와 마주하고 일을 하며 때때로 누군가의 농담에 웃고 때때로 그들과 산책을 가고 때때로 혼자서 출장을 가고 그런 것들. 좀 더 바란다면, 내가 한 일을 인정해줄 누군가가 있으면 한다. 꽤 잘했다고. 그렇게 하면 된다고. 그렇게 한 달, 두 달, 시간이 흘러 2017년, 2018년, 나는 28이 되어 있을 것이다. 경력이란 게 쌓이고 매일 오고가는 출퇴근길이 무료하고 지겨워도 안정감을 준다고 느낄 것이다.
점심 시간에 밥을 하고 커피 심부름을 할 때 종종 마주치던 이웃 회사 A라는 남자를 알게 된다. 매주 같은 시간대에 붐비는 까페 안에서 우리는 이따금 눈을 마주친다. 그러기를 한 달 째, A는 나에게 말을 걸고 우리는 퇴근 후에 저녁을 같이 하기로 하고 그렇게 서로를 천천히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는 32살이고 나는 26의 끝자락이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서로를 알아 간다. 나는 그가 과묵한 게 좋다. 그의 과묵함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 게 좋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다.
이 정도가 내가 현재 바라는 것이다.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던 지는 꽤 오래됐다. 지난 해 회사도 관계도 모든 게 내가 생각한 것과 정반대로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RESET을 절실히 원했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 대학원을 시작했으나 그것도 내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해답은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불안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었지만 보호받는 기분은 아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모두에게 나쁜 사람이었다. 모두에게.
그리고 지금의 내가 있다. 나는 때때로 노래를 듣고 글을 쓰고 일자리를 알아보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잠을 자고 드라마를 본다. 생각을 바로하고자 노력한다. 누군가한테 예쁨받는게 그립다. 그렇지만 예뻐해주던 그 사람이 그립진 않다. 그리고 종종 미안하기도 하다. 이번에도 그 사람은 최선을 다했는데 나는 그 반대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누가 그러더라. 아직 준비가 안 된 거라고. 이제 기댈 사람을 찾을 게 아니라 누군가가 나한테 기댈 수 있게 내가 바로 서야 한다고. 너무나도 맞는 말이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그렇게 될 지는 의문이다.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내 기준에 그들은 그저 그렇다. 무미건조한 벽지 같은 판에 박힌 사람들. 종종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다. 새로운 사람과의 시작을 떠올린다. 이번엔 누구와 어떤 연애를 할까. 그러면서 자연스레 내가 거쳐온 사람들을 떠올린다. 하나같이 공통점이라곤 없는 사람들. 특별히 아끼는 사람이 있던가. 그저 지나간 사람들일까. 작년 초에는 입사만 하면 그게 어디든 간에 사람들 눈에 좋아보이는 어딘가에 입사만 하면 모든 상황이 완벽하게 돌아갈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이제 나는 그런 헛된 희망은 품지 않는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서 또 연애를 하게 될지 언제 하게 될지 전혀 모른다. 내가 어떤 회사에 들어가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26이 되면 25때보다는 훨씬 안정적이고 행복할 줄 알았다. 1살 더 먹었기에. 나는 행복해지기 위한 과정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요새는 하나님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열성적인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존재에 대해 생각한다. 막연하지만 생각한다. 내 가슴을 뛰게 만들 사람이 있을까. 내 가슴을 뛰게 만들 일이 있을까. 그 많은 것을 겪었어도 여전히 나는 삶에 대한 기준을 낮추지 못한 것일까.
행복이 무엇일까.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새로운 직장에 입사해서 매일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서 근면함을 보이며 사근사근 웃으며 사람들과 마주하면 행복할까. 어떤 것에도 확신할 수 없다. 확신하기 위해선 바보여야 한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에 반만 알던 때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면 우직하게 밀어붙일 수 있다. 그렇게 살아왔는데 지금의 나는 불행히도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겁을 먹은 것이다. 사람에 대해서, 신념에 대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겁을 먹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