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나' 밖에 모르는 철부지 딸의 일기
토요일, 주말이지만 나는 대학원 오후 수업을 들으러 나왔다.
오후 2시부터 시작하는 수업이지만,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 일부러 12:30에 점심 약속을 잡았다.
더 자고 싶은 토요일이건만, 어김없이 7시면 눈을 뜬다.
전날의 기억을 되뇌이며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우고 커피를 마시고 씻는다.
10시가 되어서야 아침을 먹고 집을 치우는둥 마는둥 하며 나갈 채비를 한다.
어젯밤 부랴부랴 통계학 숙제를 하느라 자정에야 집에 돌아왔기에 집은 치워도 치워도 정신없었다.
그렇게 학교에 갔고 예정대로 점심 약속을 한 사람과 만나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다.
오후 2시부터 5시반까지는 온전히 통계학 강의에 투자된다.
간간히 메신저를 확인하고 답신을 하고 잡념에 빠져들었다가 다시 강의에 집중하길 반복하더니 배가 고팠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수업을 같이 듣는 오빠와 짜장면 집으로 향했고
우리는 40분만에 각자의 식사와 탕수육까지 해치웠다.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차에 타서 핸드폰을 확인하니
아빠가 남긴 부재중 전화 두 통과 3건의 메시지가 보였다.
그러고보니 구정 이후 2주째 부모님께 연락 한 번 못드렸다.
어제 저녁 무렵 낑낑대며 숙제를 할 때 문득 주말엔 전화를 한 번 드려야지 생각했지만, 토요일이 다 끝날 때까지 나는 새까맣게 부모님을 잊고 있었다.
곧장 전화를 걸어 듣게 된 아빠의 목소리는, 근래 들은 목소리 중에 가장 다급하고 가장 불안해보였다.
올해로 26년째 키운 딸에게, 이제 지금쯤은 기대도 되었다고 생각하셨을 텐데, 난 여전히 기댈 수 있는 나무가 아니라 걱정만 끼치는 철부지 어린아이였던 것이다.
"아빠, 나는 아침마다 눈을 뜨면 아빠가 제일 먼저 떠올라.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어제 밤 술 마시고 상사와 한 판 했던 매일 아침 일어나서 묵묵히 회사에 나가던 아빠가 떠올라. 그래서 나도, 정말 가기 싫어도 일어나서 씻고 옷을 입고 버스를 타러 나가.
다만 지난주 주말에는 월요일까지 일을 끝내 놓으라는 팀장님의 말에 토요일, 일요일 모두 사무실로 출근을 했고, 틈날때마다 화요일에 있던 발표 준비를 하느라 몸이 으스러지는 기분이었어.
화요일에 무사히 발표 끝내고는 안도감에 잠시 쉬었지만 매일 같이 가는 회사는 평온한 듯 평온하지 않아서, 나는 여전히 불편해. 그리고 외계어 같은 통계학 수업의 교수님은 과제를 너무나도 많이 내주었어. 다행이도 친절하게 가르쳐준 오빠가 있어서, 다 풀어서 오늘 제출했어.
오늘 점심에 만난 분은 나랑 한 살 차이 나는데 참 어른스럽더라. 학교에서 처음으로 학식을 먹었는데 부실했나봐. 3시간 반 강의가 끝날 무렵엔 저녁으로 뭘 먹을지 밖에 생각이 안 나더라. 그리고나서 아빠와 통화하고 이렇게 글을 쓰는거야.
여전히 '나' 밖에 모르는 딸이라 미안해. 그런데 나는 여전히 공부가 어렵고 다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엄마가 생각나. 그리고 아침마다 출근할 때 아빠가 생각나. 나는 엄마 아빠를 잊은게 아니야. 다만, 26살이란 나이에 걸맞게 살아야 하니까, 변명일 지 모르겠지만, 내 단도리를 잘 하진 못해도 남한테 피해는 주지 않으려고 이렇게 하루 하루 살다보니 연락을 못한거야.
다음 주엔 갈 수 있을테니 그 때 보자. 다음 주엔 문자도 자주 할 게. 항상 생각하고 있다는 거 알아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