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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기억

by Minnesota

행복한 기억이라니.


너무도 클리쉐한 제목이 아닐수 없다.


그럼에도, 지나칠 정도로 힘든 순간에만 브런치에 찾아와 글을 남겼던 나이기에, 이런 제목에 이런 글을 남겨둔다.


향후에 나란 사람이 이럴 때도 있었구나 느낄 수 있게끔 기록해두는 셈이다.


지난 주말엔 바닥을 쳤다 싶을 정도로 남편과 하루종일 싸웠다.


이번 주말은 그런대로 잘 흘러가더니 오늘 정점을 맞이하고 내 옆에서 남편이 코 골며 자는 모습을 보며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토요일은 그저 별 탈 없이 흘렀음에 감사하는 하루다.


오랜만에 친정집 근처에 가서 엄마와 한의원을 찾았고 나를 초등학생 때 부터 봐왔던 한의사 아저씨에게 내 결혼 소식을 전했다.


몸을 보하면서 동시에 살 좀 빠지게 해달란 이상한 주문을 하면서 한약을 타왔다.


그러고선 합정 미용실로 오빠가 날 데려다 줬다.


뿌리염색을 했고 옆머리를 쳐냈다. 한결 나았다.


오빠는 그 사이 청첩장을 돌리러 강남에 갔고 나는 머리를 다하고선 교보문고에 들러 한참 고민 끝에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을 샀다.


집에 와서는 혼자 고독을 씹으며 군고구마를 먹었다.


독일에 사는 나와 동갑인 여성의 유튜브를 보며 그녀가 만났던 사람과의 이별에 대해 담담히 털어놓던 모습을 바라보며 군고구마를 먹었다.


오빠는 취해서 돌아왔지만 그래도 일찍 와주었고 나랑 사랑도 나누고 내 옆에 있었다. 온전히.


속이 부대꼈는지 라면을 먹는다길래 끓여줬다.


그렇게 같이 있다 잠들었고 오늘 아침 8:30경에 눈을 떴다.


몸이 가뿐했다. 늦잠자겠다는 남편을 깨워 열시부터 청소 좀 하고 준비하고 남양주로 향했다.


이번엔 꼭 미술관을 가겠다 마음 먹고 모란 미술관에 다시 찾아갔다.


조각 전시여서 아쉬웠지만 버킷 리스트 하나는 지웠다. 결혼 전에 전시회 같이 가기.


미술관 안에 있는 까페에서 무심코 시킨 카푸치노가 기가 막히게 맛있어서 당황스러웠다.


날씨는 차가운 공기지만 불편할 정도로 춥지 않은 딱 알맞은 11월의 그 날씨였다.


우리는 송어회를 먹으러 갔고 무한리필로 주문했지만 오빠는 전날의 숙취로 매운탕을 더 많이 먹었다.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그러고선 근처 공원에 가서 사진도 찍고 걷고 뛰었다.


마지막엔 팔당제빵소에 들러 팡도르와 뺑오쇼콜라을 사서 집에 돌아왔다.


오자마자 빵을 썰어 샤워하고 먹었다.


오빠와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워 사랑을 나누고 나는 이 글을 쓴다.


행복해하다가 잠들어서 코 고는 남편이 옆에 있고 나는 마찬가지로 행복해하며 이 글을 쓴다.


생각해보면 나는 남에게 말하기조차 어려운 힘듬을 겪을때마다 브런치에 글을 남겼던 것 같다.


이제 내 브런치 채널에는 이 글처럼 종종 행복이 기록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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