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이맘 때 나는 재직중이던 회사의 27주년 기념 행사를 책임, 총괄했다.
3일에 거쳐 진행되는 행사는 리셉션-국제컨퍼런스-회사 내부 및 초청인사들과의 마무리 행사로 진행됐다.
신입이었던 나는 근속 연수가 10년, 20년 넘는 대선배들 속에서 홀로 27주년 기념 동영상 단독 모델이 되었다.
27주년이란 시간에 내가 참여한 시간은 약 9개월인데 내가 그 동영상의 주인공이란게 사실 논리적으론 맞지 않지만,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시켜서 한게 다다.
훈민정음 책 모형 위에 앉아서 우리 회사 사보를 읽는 모습으로 찍혀 있던 내 사진이 아직 남아있다.
그렇게 그 회사 홍보 동영상이 되었고 그 회사 27주년 행사 총책임자 중 하나가 되었지만
올해 11월에 나는 다른 회사 소속원이 되어 18주년 창립기념식에서 열심히 박수를 치고 있었다.
별 감흥이 없었다고 거짓말을 하기에는, 아직 내가 거짓말에 능숙하지 않은 것 같다.
사실 1년이란 시간은 짧다고 생각하면 참 짧다.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었던 1년이지만, 타인의 눈에는 그저 또 한번 해를 넘긴 게 다 일 것이다.
이렇게 나는 또 살아가고 있다.
26살의 끝자락이지만 24살의 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 모습에 종종 놀라기도 한다.
이래서 사람은 안 바뀐다고 하는 거구나.
조금은 무던해지긴 했다. 하루종일 사무실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에 무던해지긴 하고 있다.
24살 인턴 때는 등에서 땀이 한 바가지로 흘렀다. (물론 부국장 바로 앞에서 일한다는게 24살짜리에겐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나이가 들면서 나는 점차 무던해지고 당장 내일 세상이 엎어져도 그냥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이 세상 돌아가는 순리는 바뀌긴 커녕 더욱 견고해지고 단단해지고 불변의 순리가 되어 있다.
나는 내 모습에도 크게 놀라지 않고 사람들의 반응에도 크게 놀라지 않게 되었다.
그 많은 문학책을 섭렵했던 내가 이렇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월급쟁이가 되어 소시민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카뮈의 이방인을 좋아했던 나는 어느 단체, 어느 기관에 있던 항상 어느 정도의(somewhat) 이방인으로 남아 있길 원했다.
그런데 이제는 완전히 속해서 흡수되어 나라는 존재의 색이 흐릿해지길 바란다.
그 편이 살기 편하다는 사실을 다년간의 경험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그 사이 어떤 사람은 내가 이런 사람이길 바라고 어떤 사람은 나에게서 이러한 역할을 하길 바란다.
나는 때때로 묵묵하게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때때로 그들의 요구에 반항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 하루가 흐르고 나는 26살의 마지막 한 달을 남겨 놓고 있다.
올해는 나에게, 참으로 의미가 깊은 한 해다.
11, 12월 무사히 마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