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ry Christmas, dear.

by Minnesota

2016.12.25. 일. am11:51


침대 이불 속에서 두 잔째 카푸치노를 마신다.


스크램블드 에그와 토마토까지 먹으니 정신이 좀 차려 진다.


지난주 일요일, 요즘 핫한 영화인 라라랜드를 보고 어울리진 않지만 고기에 소주 각 1병씩하고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나름 완벽한 주말이었으나, 부모님 덕택에 일요일의 고요한 마무리는 물거품이 됐고


그 후로 이번주 내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일은 일대로 항상 많았고 술 자리는 어찌어찌하다보면 계속 생겨났다.


그 사이 남자친구와도 삐걱댈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되었고


그렇게 월, 화, 수, 목, 금.


일주일의 끝으로 향해갈수록 나는 나 자신을 잃어가는 기분이었다.


이곳 저곳에서 나를 찌르는 기분이랄까.


실제로 과음한 탓에 온 몸에 시퍼런 멍이 들어 있다. (만취하면 꼭 넘어진다)


그렇게 힘겹게 금요일까지 버티고 나니,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어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오전엔 피할 수 없는 부모님과의 대화, 정확히 말하면 엄마와의 대화를 했다.


내가 당장 살아가려면 할 수 밖에 없는 대화였고 커피(거의 에스프레소 급인)를 영거푸 3잔 마시면서 끝까지 했다.


커피를 아무리 마셔도, 무슨 연유인지 컨디션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오후 3시가 되서 만나기로 한 남자친구를 만났지만 여전히 몸은 힘들었다.


차를 타고 강화도로 향했다. 가는 길에 한적한 곳에 자리한 까페에 들렀다.


그 곳에서 귀걸이를 선물로 받았고 우리는 거의 아무 말 없이 커피만 마셨다.


잠깐 해수욕장에 들러서 폭죽을 터뜨리고 밥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사이사이 생략한 부분은, 연인끼리 있을만한 그런 부분들.


중간 중간,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가 생각났다.


비교를 하려는 건 아니지만, 비교를 안 할래야 안 할수가 없는.


그 사람이 더 낫다 이 사람이 더 낫다의 개념이 아니라.


그 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이렇구나. 그런 정도.


작년에 만났던 사람은 꽃다발을 준비한채 나를 한참 기다렸다. 혜화역에서.


그리고 연극을 같이 봤고 내가 라자냐가 먹고 싶다해서, 라자냐가 나름 유명한 곳을 예약해놨었다.


밥을 먹고 그 사람은 담배를 피고 나는 지켜봤다. 기차표 시간에 맞춰서 서둘러 헤어졌다.


가는 길에 나에게 문자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브를 같이 해도 그 사람이랑은 헤어져야 했기 때문에 일부러 그랬다.


그리고 올해는 새로운 사람과 크리스마스 이브를 같이 보냈다.


그때와 달리 이번엔 나도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옷은 처음 사주는 것 같다.


근데 크게 감흥은 없다. 나는 꽃이 받고 싶었고 팔찌가 받고 싶었다.


다시 내 오른손 손목에 팔찌를 두르고 싶었는데,


이번에도 같은 회사 사람이고 연상이고 술 담배 다 하는 사람이지만


작년 사람과 이번 사람은 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두 사람 다 나의 어떤 면에 끌리는지는 잘 안다. 나를 만났던 모든 사람이 나의 어떤 면에 끌렸는지 잘 알기 때문에.


그렇다면 나는?


솔직하게 말하면, 작년 그 사람이 나에게 정말 해줄 수 있는 전부를 다 해줘서 그런지


지금은 모든게 감흥이 없다. 그저 그렇달까.


근데 그걸 표현해서 바꾸고싶지 않다. 바뀌지도 않을 거고, 그냥 내가 지금 이 사람이 하는게 마음에 안 든다면


내가 다른 사람을 찾아서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에.


내가 이 사람을 만나는 이유는 '지금으로선 이 사람이 나에게 최선'이기 때문이다.


1. 나는 신입인 이 회사에서 오랜 세월 근무했기 때문에 일정 부분 회사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


2. 회사를 떠나서 사회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기에 배울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3. 나름 노력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4. 지금으로선, 누군가 내 옆에 있는게 바람직하다 생각한다.



설사 이 사람이 나에게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사실 지금은 다른 선택권도 없고 다른 선택권을 찾아 나설 여유나 시간이나 기회가 없다.


당분간은 나 스스로를 돌볼 필요가 있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조금 많이 힘들다.


이제서야 이렇게 혼자가 되어서 글을 쓰고 커피를 마시고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는 게 참 가엾다.


나 자신이 나를 사지로 몰아 넣고 있단 생각을 이번주 내내 했다.


사실 부모님이 요구하는 건 단순하다.


술 많이 마시지 말고, 집에 일찍 들어오고, 누구랑 어디서 뭐하는지 정도 말해주면 그만이다.


그걸 하기 싫다고 이렇게 18살에도 안 하던 반항을 해봤자 나만 데미지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술은 안 마시면 되는거고.


남자친구는 그냥 이해하면 된다.


그리고 내 시간을 내가 운용하면 된다.


내년 6월 시험인데, 시간은 흐르고 준비는 하나도 안 되어 있다.


하긴 할 건지, 이래서야.


지금으로선 나 스스로 뭘 원하는지 다시 고민을 하는게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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