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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로하스 Polohath Nov 15. 2020

나를 위한 기억법

기억력이 좋다는 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대부분의 우리는 기억력을 명석한 두뇌와 연관 지으며 성공과 우수한 학업 성취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억력이 좋다는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말부터가 기억력이 "좋다"라고 표현하니 정말 좋은 것이라는 느낌도 든다. 체력이 강하다, 고집이 세다, 마음이 넓다, 생각이 깊다, 등에 쓰이는 다양한 형용사들 대신 기억력에는 그냥 좋다, 라는 표현이 쓰이는 것을 보면 좋은 것임에 틀림없다. 얼마나 좋은 것인지 세상에는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각종 서적과 연구, 트레이닝, 음식, 심지어 영양제까지 넘쳐난다.

심리학에 므두셀라 증후군 (Methuselah Syndrome)이라는 것이 있다. 지나간 추억은 모두 아름다웠다고 포장하고 싶은 심리, 좋았던 기억만 간직하고 싶어 하는 심리를 말한다. 선택적 기억을 통한 자기 도피이기도 하다. 슬프고 상처 받았던 기억은 잊어버리는 게 속편 할 테니 말이다. 시간이 약이다, 라는 말은 어쩌면 므두셀라 증후군과 연관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좋았던 기억만 남기고 싶은데 아프고 비참하고 기분 나빴던 기억들이 아무리 애써도 지워지지 않고 떠오른다면 이제 기억력은 더 이상 좋은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이 된다.

2000년대 초, HSAM이라는 증상이 발견되었다. Hyperthymesia, 과잉기억 증후군은 전 세계 인구 중 약 60명 정도만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대단히 희귀한 증상이다. 이 증상을 가진 사람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겪은 일들을 거의 완벽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짐작하겠지만, 이들은 대부분 통제할 수 없고 잊을 수 없는 기억력 때문에 괴로워한다고 한다.


나의 젊은 시절은 기억력에 대한 집착과 노력과 자부심으로 점철되어 있다. 성공은 기억력이 좌우한다는 말도 어디선가 들었다. 모택동이었나 장개석이었나, 하여간 둘 중 한 사람이 단 한 번이라도 만났던 사람은 절대 잊지 않는 놀라운 기억력의 소유자였고 그래서 리더가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나도 리더가 되기 위해 열심히 기억력을 단련했다. 기억력이 좋다, 똑똑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커리어를 쌓고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것에 내 모든 에너지가 집중되어 있던 때였다.


아이가 태어난 뒤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이 때문에 울고 아이 때문에 웃었다. 두 시간에 한 번씩 울어대는 신생아 때문에 잠도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어 피폐해진 정신과 지친 몸으로 겨우겨우 버티면서도 하루 24시간 중 단 2분만이라도 아기가 내 눈을 바라보며 옹알이를 해주면 나머지 23시간 58분의 피로가 사라졌다.
제발 빨리 좀 크라고 주문처럼 기도처럼 중얼대며 버텨낸 그 시간들은 지금 돌아보면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오히려 너무 빨리 지나가버려 아쉽다. 므두셀라 증후군이 바로 이런 것인가 보다. 부모라면 다들 겪어보았을 것이다.

나는 이제 경력이나 인맥, 성공을 위한 기억력 증진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여러 번 본 사람의 얼굴도 기억 못 하고 심지어 내가 맡은 팀의 팀원들 이름도 헷갈려서 곤혹스러울 지경이다. 리더가 되려면 한번 만난 사람의 얼굴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모택동이었는지 장개석이었는지 조차도 기억 못 하는 꼴을 보라. 어쩌면 둘 다 아니었을 수도 있다.

출산 후 급격한 기억력 감퇴를 호소하는 엄마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나는 그것이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관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만큼 기억되고 기억하려 하고 기억나기 때문이다.







오늘은 퇴근한 남편의 손에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회사 직원이 아이 돌떡을 돌리고 남은 것 중 꿀떡만 챙겨 왔단다. 아들들이 가장 좋아하는 떡이 꿀떡이기 때문이다.

남편은 웬만한 직장인들은 안 하는 행동을 종종 한다. 회사에서 점심 먹으러 가는 단골 식당 중 달고나 사탕을 카운터에 놓는 곳이 있나 보다. 내가 달고나 사탕을 좋아하자 갈 때마다 한 움큼씩 집어다가 나에게 안긴다. 수년 전 허니버터 칩이라는 과자가 최고의 인기를 누렸을 때 그 구하기 힘들다는 과자를 회사 직원 중 하나가 슈퍼마켓 하는 친인척을 통해 겨우 한 봉지 구해 왔단다. 여러 직원들이 맛만 겨우 볼 수 있게 조금씩 나눠먹었다는데 남편은 자기 몫의 과자 중 굳이 두 조각을 종이컵에 담아 소중히 집에 들고 오더니 맛보라며 내게 내민 적도 있었다.

기억력이 두뇌가 아닌 관심과 사랑의 문제라는 나의 생각은 이런 경험들 때문에 더욱 견고해져 간다. 기억력이란 단순히 필요한 정보를 머릿속에 저장하는 능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보았을 때 그와 연관된 것을 바로 끄집어내는 능력이기도 한 것이다. 꿀떡을 본 순간 아들들의 입맛을 기억하는 것처럼, 달고나 사탕을 보면 아내가 떠오르는 것처럼.

그래서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었던 사람이 나의 기대와는 달리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을 때 받는 실망감은 어마어마다. 내가 했던 말들, 나와했던 약속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내 사랑의 크기를 망각하고 흔히 "배신"이라고 불리는 행동을 했을 때 받는 상처는 날카로운 칼에 찔린 것처럼 아프고 비참하다.


가르시아 효과라는 것이 있다. 어떤 음식을 먹고 심하게 체하거나 아프고 나면 그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음식을 생각하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리거나 아픈 것처럼 느껴지는 현상인데 우리의 기억에도 그런 부분이 있다. 상처가 되었던 사람, 장소, 물건 등을 보면 아픔이 떠오르는 증상, 배신당한 사랑의 상처가 너무 커서 다시는 누구에도 마음을 열지 못하게 되는 증상 같은 것들.

가르시아 효과는 아프고 불편하고 두렵지만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우리의 생존에 꼭 필요한 반응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위험한 것을 경험한 뒤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해 두었다가 똑같은 위험을 당하지 않으려고 하는 반응은 아픈 기억의 쓰임새 중 가장 유용하다. 감당할 수 있는 크기의 아픔이라면 말이다.


옛사람들이 중용의 미를 강조했던 이유를 조금씩 알아간다.
행복이란 결국 중용, 즉 균형의 문제가 아닐까.
이를테면, 므두셀라 증후군과 가르시아 효과의 적절한 밸런스, 아름다웠던 추억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과 잊으려 해도 몸이 먼저 아픔으로 반응하는 쓰라린 상처 사이의 밀당 같은 것.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사랑의 크기는 기억의 정도와 비례한다.
나는 블랙커피만 마시지만 그 사람이 좋아하는 믹스 커피를 기억하고 준비하는 것.
스쳐 지나가듯 말한 향수 이름을 기억하고 깜짝 선물로 준비하는 것.
아름다운 기억을 만들었던 그 장소에서 끔찍한 배신을 당했을 때 그 장소에만 가면 추억과 상처가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와 혼란스러워하는 것.
많이 사랑한 만큼 많이 아픈 것.

다행스럽게도 나에게는 60억 인구 중 60명만 가지고 있다는 HSAM이 없다. 그래서 비록 뛰어난 기억력은 없을지언정 기억을 통제하는 능력은 어느 정도 있으며 그러한 기억의 통제는 온전히 나의 선택이다.
어떤 기억을 선택하여 어떤 비율로 적절히 섞어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의 중용을 이루어 낼 것인가.
지나간 그 시간, 그때 그 장소, 그 사람을 어떤 기억의 칸에 집어넣을 것인가.

말처럼 간단한 일도 아니고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어려운 숙제이지만 이것만은 기억하자.
바꿀 수 없는 어제의 기억 때문에 오늘과 내일까지 망칠 필요는 없다.
내 인생의 행복을 책임질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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