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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스락 Feb 02. 2024

나와 교감하는 글쓰기

금요일의 문장 (2024.02.02)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지 5년이 지났다. 무소음 탁상시계의 초침처럼 느릿하게 기어가던 글쓰기가 익숙한 일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시간의 흐름을 눌러 꾸역꾸역 써 왔기 때문이리라. 시간은 한없이 느리지만 한편으론 빠르다. 글쓰기에 왕도는 없다.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은 쓰기를 멈추지 않는 것. 느릿느릿 천천히 가는 여정일 뿐이다.

[마흔에 글을 쓴다는 것] 권수호 지음

 

나의 문장


어느 날 갑자기 소화가 안 되고 속이 거북하면서 먹기만 하면 체했다.

달갑지 않은 두통이구나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소화제와 두통약은 나의 상비약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소화제에 손이 가지 않았다. 미묘하게 기분 나쁜 두통을 견뎌보기로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심한 구토와 어지럼증으로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 뜻밖의 기쁜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임신 8주입니다' 세상에 임신 8주 나를 찾아온 아이는 이미 '쿵쾅' '쿵쾅' 심장 소리를 내고 있었다.


 무심한 엄마에게 서운할 법도 한데 아이는 씩씩한 심장 소리로 반갑게 인사하고 있었다.




늦게 알게 된 임신으로 더 잘 먹고 태교도 더 잘할 줄 알았는데, 둘째라 그런지 많이 신경 쓰지 못했다.

오히려 일을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회사에서 잠깐 화장실을 가는데 여직원 비명이 들렸다. 그러고는 나에게 뛰어와 겉옷으로 나를 감쌌다. 영문도 모른 채 여직원의 행동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나는 하혈을 하고 있었다. 이미 많은 양의 하혈로 옷은 피범벅이 된 상태였다. 그것도 모르고 앉아서 일만 했던 한심하기 그지없는 사람

조용히 남편에게 연락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이미 너무 많은 양의 하혈로.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담담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의사 선생님

"선생님, 안 돼요, 아직 포기할 수 없어요"

"괜찮다고 아직 괜찮다고 말씀해 주셔야죠" "어떻게 선생님이 포기하라고 말씀하세요."


난감해하는 의사 선생님에게 매달리며 아이 살려달라고 아직 몸속에 아이가 있다고 애원했다.

의사 선생님은 일단 입원해서 1%의 희망이라도 가져보자며 내 손을 꼭 잡고 나를 진정시켰다.


그렇게 입원했고, 침대에 누워 두 다리를 벽에 올려놓고 흐르는 눈물을 삼키며, 괜찮다 아무 일 없다. 울면 안된다고 스스로를 달래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한참 후 병원에 온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런 남편에게 나를 믿어 달라는 말만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멈추지 않은 하혈로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생활했다.

병원을 찾았던 그날 의사 선생님이 포기하라고 했던 그날로부터 한 달이 지나면서 하혈은 조금씩 줄어들었고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긴 시간 하혈을 하면서도 아이를 지킬 수 있었던 건 하혈의 방향이 아이를 피해 흘렀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신기한 일이라고 의사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그렇게 10개월 후 아이는 아빠 생일날 아침 선물처럼 우리를 찾아왔다. (아빠와 아들 생일이 같다 ^^)


나와 생과 사를 함께 했던 아들은 우량아로 태어났고, 넘치는 에너지로 광범위한 활동량을 자랑하고 있다.

요즘은 포동포동 귀여운 뱃살을 고민하고 있다. ^^


       남이섬 여행                                                                              강릉에서 사색하는 아들





오늘 금요일의 문장은 글쓰기 여정인데 이 무슨 개연성 없는 주저리인가?


그날 모든 사람은 나의 유산을 확신했었고, 세상은 내 편이 아니었다. 희망은 보이지 않았고 내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거동조차 힘들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신이 있었다. 이 아이는 나를 꼭 만날 거라는 확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이와의 교감. 느낄 수 있었다. 엄마가 버텨주면 절대 떠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아이와 나는 꼭 만나자는 약속을 매일 하며 하루하루를 버텼고 결국에 건강한 모습으로 만났다.


아이를 키우면서 힘든 시간이 오면 그날을 기억한다. 나에게 희망을 줬던 아이 지금은 웃음을 주는 아이.

어쩌면 글쓰기도 나에게는 희망이고 웃음이다. 느리지만 천천히 포기하지 않은 시간 안에서 글쓰기를 통한 나와의 교감을 만들어 가는 여정, 밋밋하지만 나의 시선이 머무는 곳 그 어디쯤에서 항상 함께하련다.


보석 같은 글쓰기 시간의 여유를 느끼며 즐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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