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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스락 Feb 09. 2024

감정 이름표가 있으면, 좋을 텐데

금요문장 (2024.02.08)

인간의 고통은 기체의 이동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일정한 양의 기체를 빈방에 들여보내면 그 방이 아무리 큰 방이라도 기체가 아주 고르게 방 전체를 완전히 채울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고통도 그 고통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인간의 영혼과 의식을 완전하게 채운다. 따라서 고통의 '크기'는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출처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나의 문장


유난히 목소리가 크고 행동이 눈에 띄는 그녀

또각거리는 발소리 자신의 존재감을 표출하는 그녀는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만큼이나 당당해 보였다.


아침 출근 버스는 몽롱한 상태로 다들 잠에 취해 있다. 자꾸 고개가 앞으로 꼬그라지는 사람 버스 유리창에 머리를 콕콕 찧는 사람 약속한 적 없지만 다들 조용한 분위기를 존중하고 잡음 없는 공간에 잠시 머물러 간다.


그녀는 달랐다. 이른 아침이지만 곱게 화장했고, 쌀쌀한 날씨에 어울리지 않은 얇은 외투에 치마를 입고 뾰족한 검은 구두의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내 옆자리에 앉았다. 나는 창가 쪽으로 몸을 밀착시키며 고개를 창가에 기대었다. 소곤소곤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가 했더니 킥킥 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짜증이 났지만, 눈은 뜨지 않았다. 그녀의 통화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쉴 새 없이 무언가를 설명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이내 조용했던 버스 안에 울려 퍼졌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로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조용히 해달라는 말이 목구멍을 간질거렸지만 차마 하지 못한 채 원치 않은 그녀의 통화 내용을 엿듣게 되었다.


그녀는 지금 기차를 타기 위해 영등포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주에 한번 기차를 타고 아버지 병문안을 간다고 했다. 걱정 반 설렘 반으로 가는데 아버지가 유난히 그녀를 예뻐해서 새벽부터 화장하고 옷을 신경 써서 골라 입었다고 한다. 소곤거리다 킥킥거렸던 그녀는 엄마에게 나 괜찮아 을 큰 목소리로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긴 통화를 끝내고 긴 통화만큼이나 긴 한숨을 내쉰다. 미소가 가득했던 얼굴이 어느새 근심 가득한 한 얼굴로 바뀌었다. 또각거리던 당당한 구둣발 소리는 어디 가고 어깨는 이미 축 처져 있었고 입술은 파르르 떨리는 듯했다. 혹시 울고 있는 건가? 그녀가 민망할까 봐 최대한 모른척했지만 나에게 전해지는 공기로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영등포역에서 내렸지만, 나의 출근길은 그녀의 당당한 또각 소리에 잠시 멈칫했고 그녀의 큰 목소리에 짜증이 났고 그녀의 흐느낌에 마음이 아파졌고 걱정이 되었다. 그녀의 또각거린 구둣발 소리와 그녀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묻혀 버린 그녀의 감정이 고스란히 나에게 다가와 안겨 버렸다. 사람은 저마다 알 수 없는 멍울 하나씩 감추고 사는가 보다. 그녀의 멍울이 깊지 않기를 그녀의 손을 잡아 주고 싶었던 나의 마음은 오늘 온전히 그녀의 것이 되어 버렸다.

출처 pngtree 우정



한 줄 요약 : 감정 이름표가 있었다면 오늘 그녀에게 다가가 위로를 전했을 텐데, 사람은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관심을 둔다, 감춰진 내면은 이름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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