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배웅하는 일요일 저녁 여전히 낯설어요. 당신이 오면 최대한 당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노력이라고 하기는 그렇고 당신을 위해 시간을 놓아 줬습니다.
모처럼 딸을 데리고 쇼핑을 가는 당신에게 매달려 종달새처럼 재잘거립니다. 묵언수행 하는 것도 아닌데, 주중에 누군가와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없네요. 일주일 동안 대화는 별님이랑 가장 많이 한 것 같아요. 중학생이 된 별님이는 요즘 사춘기 경계선에서 오르락내리락 많이 지쳐 있네요. 그래도 새 학기 시작하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줄줄 이야기해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당신 팔짱 끼고 재잘거리며 웃고 있는 나를 보니 나조차도 내가 어색하네요. 당신 만나기 전 커다란 갑옷을 걸치고 스스로 만든 규칙 안에 살고 있었어요. 가족 낯설고 어색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울타리 안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었죠.
어느 날 당신이 다가와 손을 잡아주고, 달콤한 고백을 했을 때도 나는 도망가기 바빴잖아요. 살면서 누군가에게 의지해 본 적 없는 나를 당신은 복싱선수 같다고 했어요. 방어적 경계 태세 금방이라도 펀치를 날릴 것 같은 민첩함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아 애가 탔다는 당신.
가까워지기 무섭게 도망치기를 반복했던 나를 조용히 기다려 준 당신이 고마웠어요.
그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보이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 준 당신이 고마웠어요.
그 여자는 현재의 삶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다. 답답하고 힘든 삶, 대부분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별로 나아질 것 같은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이 유일하게 잘 사는 방법이라 여겼다.
그 남자는 열심히 살면서 행복해 보였다. 삶이 답답하거나 슬퍼 보이지 않았다. 특별히 잘난 것도 없는 그 남자의 하루는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남자가 다가온다. "왜 그렇게 인상을 쓰고 다녀요?" 인상을 쓰든 말든 무슨 상관. 남자가 여자 주위를 맴돈다는 착각을 한다. 아침 출근길에 유연히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어찌나 경쾌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던지 여자가 환하게 웃어준다. "어 웃기도 하네요" 남자는 자꾸 신경 쓰이게 깐족거린다.
아침부터 신이 난 남자는 어제처럼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한다. 출근길에 한 번 마주친 이후 매일 같은 시간 회사 앞에서 남자는 여자를 반겨 준다. 마치 여자에게 아침 웃음을 배달하는 사람 같다. 굳어 있던 여자 얼굴에 미소가 퍼지기 시작한다.
여자의 출근길 움직임이 가볍다. 회사가 가까워질수록 생각이 많아진다. 그 남자가 오늘도 있을까? 왜 자꾸 말을 거는 걸까? 오늘은 내가 먼저 웃어줄까? 어색하지 않게 행동해야 하는데, 그러나 회사가 가까워질수록 몸은 굳어지고 시선은 자꾸 땅을 향한다. 뚜벅뚜벅 긴장과 설렘 어디쯤에서 헤매고 있을 때.
"안녕하세요" "오늘은 출근이 늦었네요" "땅에 뭐 떨어졌어요, 계속 땅만 보고 걸어와서 얼굴을 못 봤네요"
"며칠 못 볼 것 같아서 인사하려고 기다렸어요" "오늘 출장 가거든요 갔다 와서 봐요"
남자는 자기 할 말만 하고 여자 시야에서 사라졌다.
생각을 고민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여자의 생각에 남자가 발을 담갔다.
출장에서 돌아온 남자가 호두과자를 사 왔다며 사무실 직원들에게 나눠준다.
터벅터벅 함박웃음을 장착한 남자가 여자 앞에서 방긋 웃더니 호두과자 한 봉지를 살짝 내려놓고 돌아선다.
여자는 그동안 찾지 못한 삶의 비상구를 웃고 있는 그 남자의 뒷모습에서 찾았다.
PS : 남편은 몇 번의 절망에서도 굴하지 않고 구애를 했기 때문에 나를 만났다고 한다. 사실은 오래전부터 남편을 좋아했었고, 내가 먼저 더 많이 좋아했다는 사실을 남편은 모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