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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스락 Mar 19. 2024

미용실에서 누린 호사

라라크루 금요문장 (2024.03.15)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바운더리가 건강한 사람은 합리적으로 의심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있다. 바운더리가 희미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은 상대방의 생각. 감정. 주장을 그대로 흡수하고 말지만, 바운더리가 발달한 어른은 필터 기능이 있다. 무조건 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걸러서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인 다음 필요 없는 것을 다시 내보내는 '정신적 소화능력'이 있다.

출처. 관계를 읽는 시간. 문요한 지음



나의 문장


'정신적 소화능력' 쉽지 않은 소화능력 이다. 자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스스로 걸러내든 소화를 시키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제 딸아이를 데리고 미용실을 찾았다. 기분 전환도 할 겸 주말이면 방에서 나오지 않은 딸아이를 밖으로 끌어내려 무리수를 뒀다.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동네 미용실로 향했다.


여자 파마는 십만 원이 훌쩍 넘어가고 거기에 영양과 캐어를 포함하면 앞자리가 2, 3으로 바뀌는 건 우습다. 돈 주고 시간까지 알뜰히 투자해야 하는 곳이기에 큰맘 먹고 가는 곳이다. 


딸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파마을 선택했고 가격에 심호흡을 한번 하긴 했지만 애써 담담한 척 너무 튀지 않게 자연스러운 펌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할인 행사로 진행하고 있는 히피 펌을 하기로 했다. 원하던 헤어스타일이지만 작은 용기가 필요한 심한 뽀글 펌이다. 


미용실 원장님과 매니저가 내 머리에 작은 롤을 촘촘하게 말기 시작했고 그들 가운데 아직 앳된 학생이 보조역할 하고 있었다. 두 손이 어찌나 분주하게 움직이던지 한 손에 고무줄을 원장님이 잘 잡을 수 있도록 손가락 사이에 끼워 삼각형을 만들고 있었고 다른 한 손은 사이즈별 롤과 중화제를 번갈아 가며 건네고 있었다. 

 

문득 그 친구의 얼굴을 보니 웃고 있었다. 살짝 미소가 아닌 활짝 웃고 있었다. 침묵 속에서 손만 바삐 움직이고 있는데 저 친구는 왜 웃고 있을까? 신기했다. 여신 저렇게 웃는 이유가 뭘까? 한참 파마를 하다가 매너저와 그 친구 동선이 꼬이면서 날카롭게 한마디 한다. "그냥 거기 있어요" 그 후에도 매니저는 짧지만 날카롭게 그 친구에게 몇 마디 주의를 줬다. 


하지만, 그 친구는 시종일관 웃는 얼굴이었고, 나는 생각했다. 저렇게 웃고만 있으니, 사람들이 만만하게 보는 게 아닐까? 이제 그만 웃었으면 좋겠다. 한참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친구가 내 머리를 감겨 주었다.


그 친구는 보기보다 능숙하게 머리를 감겼고, 시원하면서도 아프지 않게 적절한 힘으로 마사지하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작은 호기심에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됐는지, 힘들진 않은지, 기분은 괜찮은지 등등

그 친구는 미용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개월 전부터 미용실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자기가 좋아서 했던 일이고 배우는 입장이라 재미있다고 했다. 앞으로 몇 년은 이렇게 기초부터 배워야 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지치면 안 된다고 했다. 작은 체구에 당당한 포부가 믿음직스러웠다.


그 친구의 앳된 모습에 마지못해 웃고 있을 거라고 마음대로 생각하고 단정 지었던 마음이 미안했다.


"시원한 마사지에 머리 감겨주는 손길이 편안해서 긴장이 다 풀렸어요, 덕분에 큰 호사를 누리고 있네요."


그 친구의 함박웃음에 나도 활짝 웃어보았다. 비록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마음도 몸도 홀가분해졌다. 딸아이는 머리가 너무 맘에 든다며 활짝 웃는다.


내가 원했던 히피펌 ~~ 그러나 현실은 너무 다르다.  사림이 다름을 인정해야지



한 줄 요약 : 앳된 친구는 자신만의 바운더리에서 타인의 감정까지도 잘 소화해 내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미용실에서 작은 호사를 누리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미용실#앳된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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