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듯 사는 삶
도서관에서 대여해 온 책이 사라졌다. 납기일은 이미 지났는데 도대체 찾을 수 없다. 출근길에 챙겨갔던 기억으로 온 책상을 뒤져도 나오지 않는다. 기억 저편에 분명 회사에서 책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책은 보이지 않는다. 퇴근 후 온 집안을 뒤졌다. 책이 있을 만한 곳은 샅샅이 뒤졌지만 역시나 보이지 않는다. 다음 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같은 책을 구매해서 가져오면 된다고 한다.
한편으로 다행이다 싶긴 했지만, 문제는 절판된 책이었고 중고 거래 가격이 정가보다 한참 웃돈을 줘야 구매할 수 있었다. 절판된 책이 고가에 거래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의 무지는 어디서 어디까지 줄다리기하는 걸까, 책을 구매하기 전 한 번 더 찾아보기로 했다. 안방, 거실, 서랍, 아들 방, 소파, 아무 데도 없다.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글을 쓰는 사람이 글을 쓰는 사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여러 번 여러 각도와 사건으로 체감하는 중이다. 글을 쓰기 위해 읽기를 시작했고, 생각 정리를 하고 눈에 보이는 사물에 깊이를 더해간다. 물론 갑자기 사색에 사로잡혀 문학적인 사람이 되진 않지만 공허함에 나의 색감을 넣어보러 노력 중이다. 무채색에서 흐릿한 하늘색이 되기까지 손가락이 저릿하면 짜릿함이 훅 밀러 오듯 글을 쓰고 느꼈던 짜릿함에 도망치고 숨지 않으려 노트북 앞에 앉는다.
변화가 두려웠던 나는 그저 나의 허점을 숨기려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았는지 모른다. 잃어버린 책을 찾는 내내 스스로를 책망했다. 멋들어진 누군가를 흉내만 내는 모습이 거울 속에 보이자 다시 숨을 공간을 찾는다. 뻔뻔함으로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조금 뻔뻔해지면 어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 타인의 시선과 타인의 평가에 발을 빼며 도망칠 곳을 찾는다.
"쓰는 게 뭐 대단한 것 같지?
그건 웬만큼 뻔뻔한 인간이면 다 할 수 있어. 뻔뻔한 것들이 세상에 잔뜩 내놓은 허섭스레기들 사이에서 길을 찾고 진짜 읽을 만한 걸 찾아내는 게 더 어려운거야"
-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p.166
뻔뻔하지 못해서 자꾸 뒤를 보고 타인의 글과 내 글을 비교하는 철없는 행동들은 결국 자존감도 자신감도 발밑으로 처박아 버린다. 배우려는 입장이 되면 조금 성장할 수 있을지 초조함은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신경을 자극한다.
허우적거리던 며칠을 뒤로하고 책을 찾았다. 딸내미 에코백 안에서 초연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책을 보는 순간 구겨진 나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높은 유리 천장 안에서 바스락 발버둥 치며 하루를 산다.
한 줄 요약 : 그러더라도 나는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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