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크루 금요문장 (2024.11.15)
구멍이 점점 뚜렷이 보인다면 환영할 일이야, 이제야 자기 모습을 제대로 본다는 거니까. 이젠 받아들여. 네가 너의 구멍을, 네가 너를. 지금 너의 문제는 구멍이 났다는 게 아니라 구멍이 나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걸 믿지 못하는 거야. 그런데 말이야. 신은 그렇게 대책 없는 구조로 인간을 설계하지 않았거든. 인간의 영혼은 벽돌담이 아니라 그물 같은 거야. 빈틈없이 쌓아올려서 구멍이 생기면 와르르 무너지는 게 아니라 그들처럼 구멍이 나서 '무엇이' 새로 들어올 수 있게 하는거야. 바로 그 '무엇'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가. 그렇게 조금씩 영혼이 자라는 거지. 사람의 영혼은 자랄수록 단단해져. 구멍이 난 채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어. 오히려 그 덕에 더 잘 살 수 있어. 정말이야. 믿어도 좋아.
유경선 [구멍 난 채로도 잘 살 수 있다] 사랑의 도구들, 콘택트 101쪽
나의 문장
초저녁이 되면 엄마는 머리맡에 앉아 바느질하셨다.
유독 양말 엄지발가락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내 양말을 예쁘게 꿰매어 주셨다.
바로 위 오빠는 나와 반대로 양팔 뒤꿈치가 동전 크기만 하게 뚫려 있었다.
아버지 엄지발가락이 양말 밖으로 불쑥 얼굴을 내밀 때면 엄마는 아버지 양말도 곱게 꿰매어 주셨다.
성인이 된 지금도 멀쩡한 양말이 유독 엄지발가락만 구멍이 난다.
신혼 초 남편은 구멍 뚫린 내 양말을 보고 발톱이 너무 길어 그런 거 아니냐며 합리적 의심을 했다. 그러나, 손톱, 발톱을 길게 내버려두지 않은 나를 보고서는 온 힘이 발가락으로 쏠리는 거 아니냐며 히죽거렸다.
엄마가 했던 것처럼 양말에 면봉만 한 구멍이 생기면 더 커지기 전에 꿰매볼까도 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바느질 솜씨가 형편없어 꿰매고 나면 양말은 남편처럼 히죽히죽 삐죽거려서 볼품 없어졌다.
나를 닮아 아들 양말도 엄지발가락만 구멍이 난다. “또야” 멀쩡한 양말이 없다.
구멍 난 아들 양말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 아버지 생각이 났다.
내 엄지발가락이 아버지를 닮았고 아들 엄지발가락이 나를 닮았다.
구멍 난 양말이 그리움으로 가득 채워졌다.
한 줄 요약 : 구멍 난 양말처럼 인생도 꿰매어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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