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부스스한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에는 관심 없다. 꿈의 잔상에서 깨어나기 위해 스트레칭 몇 번으로 일상은 시작된다. 늘 그렇듯 졸린 눈보다 몇 배는 더 졸린 정신이 잠에서 깨기란 쉽지 않다. 맑은 정신과 늘어진 정신 사이를 오가는 동안, 습관처럼 몸은 책상 앞으로 향하고 눈은 책으로 향한다. 무의식의 의식 단계다.
6:40분 알람이 울린다. 부랴부랴 비디오 줌을 끄고 엄마로서의 하루가 시작된다. 즉흥적으로 아침 메뉴를 생각하지만, 짧은 순간 깊고 강하게 파고드는 아이들 입맛과 성장기 필요한 영양소 그러나 현실은 냉장고에 있는 재료 몇 가지로 음식이 만들어진다. 맛은 장담할 수 없지만 아이들 먹거리가 준비 됐다는 이유 만으로 뿌듯함이 느껴진다.
아침밥은 그렇게 엄마로서의 하루 시작을 알린다. 나를 위한 식사가 아닌 가족을 위한 식사, 나보다 소중한 존재가 되어버린 가족의 행복을 아침밥으로 시작한다. 지금의 즐거움을 알기까지 피곤하고, 힘들고, 불만스러웠던 일상이 꽤 길었다. 엄마가 되면서 바뀐 삶에 강한 책임감이 생겼고 다른 감정들은 형체를 감추고 있었다.
아들 그런 경험 있잖아, 운동장에서 실컷 뛰다가 물 한 모금 마셨을 때 온몸으로 퍼져 가는 시원함, 짜릿함 표현할 수 없는 만족감, 엄마도 그런 감정을 느껴보고 싶었나 봐, 불안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은 차고 넘치는데, 엄마를 충만하게 하는 짜릿함은 모르겠더라.
물을 마셔도 물을 마시고 싶은 마음, 허전함이 채워지지 않은 갈증, 그렇게 물을 마셔도 해소되지 않았던 갈증과 삶의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은 때가 있었어. 엄마가 웃고 있더라. 아침밥을 하면서 어깨를 들썩이고 콧노래를 부르며, 둠칫거리고 있는 거야,
어떤 느낌인지도 모르는 충만함을 찾기 위해 비어있는 마음은 보려 하지 않고, 채울 수 없었던 어린 시절, 분투했던 학창 시절, 정글 같았던 직장생활, 지쳐버린 엄마를 안아준 아빠에 대한 사랑보다 감당해야 하는 부모로서의 역할에만 에너지를 쏟고 있었단다. 매 순간 지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고, 그 상황에서 버티고 있는 모습을 애잔하게 생각하니 삶은 매번 제자리걸음이었단다.
어젯밤에 엄마가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 없다고 볼륨을 낮춰 달라고 할 때, 네가 그랬지
"엄마는 노래를 싫어해?"
그러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너에게, 엄마가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말을 하고서야 알았단다. 소리에 예민했고, 민감했고,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랐던 불편한 심기, 왜? 노래가 싫은 건가, 왜 작은 소리에도 예민한 걸까, 원인을 찾아 이유를 파고 들어갔단다.
집에 TV소리만 요란할 뿐 아무도 없다. 사람의 형체는 있지만, 침묵보다 깊은 공허다. 엄마와 아버지와 함께 잤던 그 시절, 불빛이 싫어서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올리고 두 눈을 질끈 감았지만, TV소리에 잠을 잘 수 없었어 발버둥 쳤다. 어둠보다 빛이 주는 두려움, 소리가 주는 두려움에 잔뜩 겁을 먹었다. 작은 움직임에 촉을 세우고 이불속에 움츠리며 빨리 잠을 들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불면의 시간은 길어만 같다.
온 집안에 불이 꺼지고 나서야 굼벵이처럼 말려있는 어깨를 펴고 허리를 펴고 다리를 피며 숨을 몰아 쉬었다. 진짜 잠을 잘 수 있는 시간, 모든 빛과 소음이 사라진 시간. 더 이상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되는 안온한 시간이었다. 그 밤에 느꼈던 모든 소리는, 현재를 살고 있는 내 정서적 질서를 방해하는 소음으로 굳어져 버렸다. 인식이란, 무섭게 똬리를 틀고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아들,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은, 엄마도 몰랐던 사이 음악은 소음이 되었고, 숙면을 방해했고, 빛은 어둠보다 엄마를 더 두려움에 몰고 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며 예민한 습관을 지닌 엄마 자신을 탓했단다. 이유조차 찾으려 하지 않았어. 소리가 거슬리면 볼륨을 내리기 바빴단다. 원인을 찾기보다 해결에만 급급했었어.
아들 의식이란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 너의 내면에 너의 존재에, 너의 성장에 땅속 깊이 씨앗을 품고 있듯 쌓여간단다. 그러니, 너는 엄마처럼, 반대의 인식이 아닌 너의 존재만으로 빛이 나는 인식의 세계에서 거닐었으면 하는 바람이란다.
오늘 너에게 소음을 이야기하면서 깊은 곳에 꼭꼭 숨겨둔 솜뭉치에를 하나씩 뜯어낸 기분이었단다. 울컥 쏟아낸 울림이 이제 됐다고, 이유를 알았으니 이제 방법을 찾으면 되겠다고, 그거 아니 엄마는 엄마가 제일 몰랐던 엄마 모습을 하나씩 찾아가고 느끼고 발견하면서 알 수 없는 충만함을 느낀단다.
알아가면서 느끼는 충만함이 이런 거였어, 몰랐던 것을 아는 기분, 배우면서 느끼는 기쁨, 안 했던 짓을 하니 알게 되는 새로운 반응, 마음이 가득 찬 기분, 엄마가 느끼는 이 기분을 너에게 알려주고 싶은데, 쉽지가 않네 아들, 엄마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충만함은 포기했으면 몰랐을 거야, 시도하지 않았으면 느끼지 못했을 거야,
"엄마는 노래를 싫어해?" 너의 질문으로 시작한 탐구가 이렇게 엄마를 충만하게 할지 알았을까,
주 1> 나는 당신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끝없이 계속되는 노래에 담습니다.
그 비밀이 내 가슴으로부터 흘러나옵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 묻습니다.
'당신이 부르는 이 모든 노래의 의미를 말해 달라.'
나는 그들의 물음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출처 : 기탄잘리,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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