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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스락 Nov 15. 2023

짧은 폭소

민망함과 바꾼 웃음

새벽 수영을 다녀오면 남편과 나는 군 내무반에 들어온 듯 각자 착착 정해진 행동을 개시한다. 남편은 안방 침대를 정리하고, 나는 베란다 세탁물 정리와 쓰레기 분리수거, 그리고 전날 밤 미리 준비해 둔 찌개를 데우거나, 간단한 아침 준비를 하는 동안 아이들을 깨운다.  꿀잠을 자는 아이들 방문을 열고 볼을 살짝 만지며 잘 잤는지, 춥진 않았는지 간단한 아침 인사를 건넨 뒤 방을 나오면서 불을 켠다. 환한 형광등 불빛에 눈이 부신다며 찡그리지만, 그것도 잠시 "아침 먹자"는 우렁찬 내 목소리에 남편과 잠이 덜 깬 아이들은 눈을 비비며 숟가락 가득 밥을 떠서 야무지게 입 안에 밀어 넣는다. 졸린 모습에 먹방은 언제 봐도 너무 귀엽고 행복하다.

매일 아침 반복되는 우리 집 아침 풍경이다.  (아침 메뉴만 바뀔 뿐 Ctrl+c , Ctrl+v)


달랐던 오늘 아침...

언제나처럼 수영을 마치고 도착한 집, 어제저녁 식욕을 자극했던 돼김치찌개가 담긴 냄비를 데우고, 자연스럽게 베란다를 향했다. "와 또 빨래가, 매일 해도 빨래 지옥이다." 널브러진 베란다를 치우면서 혼자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이건 재활용, 이건 쓰레기봉투, 아니 왜 이걸 여기에 에휴, 짧은 탄식으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곤히 잠들어 있는 아들을 깨우는데 " 엄마 오늘 아침은 어제저녁 김치찌개에 계란프라이 하나 추가해 주세요" "아, 김도 주세요" 아들 아침 메뉴 주문을 접수하고 나오는데 남편이 끓고 있는 찌개 불을 조절하고 있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냉장고에서 계란 4개를 꺼내 남편에게 건넸다.

"프라이하라고?"  "응"

남편에게 맛있는 계란프라이를 맡기고 딸을 깨우러 갔다.

"아, 뭐야 이거"  "허참"???  무슨 일인지 남편을 봤더니 남편은 싱크대 앞에서 계란이랑 대화라도 하는 건지 잔뜩 성이 나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왜 그래"

"계란이 안 깨져, 당신이 깨봐"

"무슨 말이야 왜 계란이 안 깨져"

 싱크대 위에 3알, 남편 손에 껍질이 반 벗겨진, 거무스름한 색깔이 보이는... 계란 1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뭐야, 계란이 상한 거야" (허탈한 남편 표정, 잊을 수 없다)

 내 반응에 일시 정지된 남편 (사고정지) 나에게 손을 내밀어 계란을 건넸다.

앗, 계란이... 그것은 구운 계란!

순간 나는 손뼉을 치며 크게 웃기 시작했고, 딸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남편이 딸한테 "자, 아빠 프라이 하나 해 줘"  하며 구운 계란을 건넸다. "엄마" ~ 딸의 짧은 탄식 거기서 나는 또 한 번 박장대소를 하며 오늘 아침은 구운 계란이다. 찌개에 싸서 먹으면 맛있겠다. 맛 있을 껄...

(나의 한심한 모습과 민망함이 들킬까 봐 주저앉아 크게 웃었더니, 남편도 아이들도 덩달아 웃어주었다.)


어제 퇴근길 마트에서 들고 왔던 30개짜리 계란이 구운 계란, 냉장고 계란 보관함에 이쁘게 정리까지 해뒀는데, 오늘 남편은 점심에 구운 계란을 먹겠다며 야무지게 소금까지 챙겨 출근했다.




'문제의 구운 계란'

'아침에 챙겨간 계란 사진 좀 찍어서 보내봐요'

'왜'

'그냥 좀 보내 줘"

'옛다'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글 쓰는 친구들#짧은 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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