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스락 Nov 28. 2023

금요일에 문장

삶과 죽음 (23.11.24)

어쩌다 이 세상에 온 것은 때가 되었기 때문이요, 그가 이 세상을 떠난 것은 운명에 따른 까닭이다. 그때를 편안히 여겨 그 운명에 맡기면 슬픔과 즐거움이 마음을 뒤흔들지 못한다.
(安時而處順 哀樂不能入).  - 장자 내편, <양생주>
올 때가 돼서 오는 게 삶이고, 갈 때가 돼서 가는 게 죽음이다. 때가 돼서 하는 일에 좋고 싫고가 있을 이유가 없다.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면 되는 일이다. 에픽테토스Epictetos는 “배가 정박 중일 때 잠깐 뭍으로 놀러 나온 게 인생”이라고 했다. 배 떠날 시간 됐으면 얼른 가서 탈 일이다. 미련 떨고 고집부려 봤자 달라질 것 없다. 아까우면 배 시간 다 되기 전에 신나게 놀든가.
삶이 등이라면 죽음은 엉덩이다.  - 장자 내편, <대종사> 


아침이 오지 않기를 아침이 오더라도 나는 아침을 맞이하지 않기를, 매일 잠들기 전에 기도 했다. 나에게 다가오는 아침이 싫었다. 죽고 싶다는 마음이 아니라 스스로 죽어 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삶이 무책 색으로 변해가면서 나의 주인은 눈물이 되었다.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은 점점 나의 시간과 공간을 자신의 것처럼 나에게 빈틈을 내어주지 않았다. 의무적으로 하루를 살아내어 가고 있는 나에게 찾아온 무기력증은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하나씩 문제를 일으켰다. 어쩌면 죽어가고 있는 마음의 검은 안개가 몸속 여기저기에 숨어들었는지 모르겠다. 



첫 번째 찾아온 건강 적신호, 건강검진 이상소견으로 대학병원 정밀검사를 받고 급하게 수술을 진행했다.

내가 입원한 병실은 나보다 스무 곱절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 계셨다. 삶에 대한 희망으로 병마와 싸우고 

있었다. 모두 머리의 두건이나 모자를 쓰고 있는 걸 보면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모두 웃는 얼굴이었다. 삶의 끝자락에 있다고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 밝은 목소리와 웃음을 지니고 있었다. "젊은 얘 엄마가 어쩌다 쯧쯧" 정작 나보다 아픈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서 젊은 얘 엄마를 걱정해 주고 있었다. 아픈 환자들은 낮보다 밤이 무섭다. 밤이 되면 찾아오는 고통의 신음과 그 옆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보호자들의 짧은 탄식... 모든 감정이 다 빠져나간 것 같은 텁텁한 한숨. 그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고 아침이 오면 새하얗게 웃으며 또 하루를 버텼다고 미소를 짓는다. 나는 다행히 늦지 않게 종양을 발견해 난소 제거 수술을 받았다. 날카로운 칼은 내 몸에 종양들을 깨끗이 도려냈다. 그 후 몇 년 동안 병원 정기 검사를 받고 약을 먹어야 했다. 


내 삶은 달라졌을까? 


버티며 살아낸 내 삶이 무척이나 아팠다. 아프다고 '악' 소리 한번 못하고 살아왔는데, 억울했다. 아니 정신을 못 차렸다. 같은 병실에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을 보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지 못한 내가 한심했다.




벌이라도 받은 듯 찾아온 폐질환, 서서히 가슴을 조이면서 누군가 송곳으로 가슴을 콕콕 찌르듯 불현듯 무차별적으로 느껴지는 통증이 찾아오면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겨울이 되면 친구처럼 찾아오는 기침감기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시작은 잦은 통증이었지만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거세지는 기침과 위태로운 숨소리, 조용한 사무실은 토할 듯한 기침 소리와 성난 파도 같은 거친 숨소리로 가득했다.


조금만 여유롭게 살았다면, 그 순간들이 그렇게 원망스럽지 않았을 텐데 모질게도 열심히 살아온 내 삶이 안쓰러웠다. 그렇게 시작된 두 번째 병원 생활 한 달 병가를 내고 치료와 휴식을 택했다. 그렇게 위태로웠던 삶은 이번만큼은 내 편이었다. 폐암으로 몰고 갔던 나의 증상은 몇 차례 정밀검사를 통해 기관지확장증 확진을 받았다. 과거에 심한 호흡기 염증으로 기관지가 손상됐을 거라고 했는데 나는 기억이 없다. 아니 모르고 그냥 살아온 듯하다. 



삶이 무엇이고 죽음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저 자신을 돌보는 시간이 필요하고, 자신을 아끼는 마음이 필요하고, 한 번 정도는 나에게 끝없는 칭찬을 보내며 너그럽게 웃어주는 여유가 필요한 것 같다. 남이 인정해 주고 알아주는 내가 아니라 스스로 나를 이해하고 잘 살아왔고 잘살고 있고 여기까지 참 잘 왔다고 보듬어 주는 시간이 꼭 필요한 것 같다. 미련스럽게 고집부리며 살지 말고 하고 싶은 거 조끔씩 해가면서 살다 보면 누군가에게 잠시 빌린 나의 삶이 소중한 지금이 되지 않을까.



기관지확장증 때문에 시작한 수영은 나를 수미년으로 만들었다 ^^ (친구들이 나를 그렇게 부른다)



#라라크루#오늘의 문장#글 쓰는 친구들#

매거진의 이전글 금요일의 문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