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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근긍 Jan 28. 2016

#6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

그날 고조를 함께 걷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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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판타지아’는 고조라는 일본의 작은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 속에서 고조라는 공간의 의미는 특별하다. 그것은 단순히 이 영화의 시작에서부터 부여된 제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일본 나라국제영화제 제작지원 프로젝트를 통해 완성되었으며, 고조시에서 촬영을 진행하는 것을 그 지원 조건으로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나서 이틀 간 낯선 곳에서 벌어진 로맨스로 이야기한다. 영화포스터에서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녀의 짧은 사랑을 다룬 '비포 선라이즈'를 동원하여 설명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이 영화를 로맨스 자체로 봐도 한껏 설렘은 주지만, 왠지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아 보인다. 영화를 보면 우리는 그 무대가 된 고조라는 공간을 지우고 생각할 수 없다. 그 지울 수 없었던 특별함을 확인하고 싶어 보고 또 봤다. 영화 속에서 고조는 어떤 곳일까? 무엇으로 하여금 고조라는 공간을 두 번의 서로 다르지만 헐겁게 연결된 이야기로 만들었을까?


'고조'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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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1부는 '첫사랑, 요시코'라는 타이틀과 함께 고조 지방의 작은 카페에서 시작한다.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는 상태로 카페의 한 구석에 가만히 고정되어 있다. 넓지 않은 카페를 차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며, 그들은 그저 자그만 한 움직임으로 그 공간에 머물러 있다. 대부분 노인들로 이루어진, 큰 움직임 없이 고요한, 어쩌면 정지해버린. 아마도 이것이 고조의 풍경 그 자체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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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 영화감독 '태훈'과 조감독 '미정'은 고조시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다. 대부분 고조시에서 태어나 오랜 세월을 이곳에서 지낸 사람들의 얘기는 개별적이면서도 공통점을 가진다. 카페에서 만난 노부부는 이런저런 장사를 하다가 이제는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가게는 매일매일 똑같은 손님들이 찾아와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말한다. 매일 아침 마담 '마돈나'를 만나기 위해 모닝세트를 주문한다는 아저씨는 40년째 그렇게 마돈나와 마주앉아 있다. '시노하라'의 할아버지는 임업으로 번창했던 50년대의 시절을 추억하며, 젊은이들은 모두 떠나가 버렸다고, 그리고 임업이 번성하던 시기의 나무들은 모두 부서져 버렸다고 얘기한다. '시노하라'의 할머니는 주변 풍경은 아무것도 달라지진 않지만, 젊은이들은 이미 떠났고, 빈집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겐지’씨가 졸업한 초등학교는 폐교가 된지 25년이 지났지만, 옛 물건들은 먼지가 쌓인 채 그대로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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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얘기하는 고조시의 풍경은 변하지 않는 다만 젊은 사람들은 모두 떠나 나이든 노인들만 남아있고, 조용하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런 곳이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하는 고조시의 사람들도 모두 나이를 먹은 중년의 혹은 노년을 살아가고 있다. 그건 마치 고조라는 공간과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동일한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여기서 고조라는 공간은 단순히 한여름의 나무들로 우거진 자연풍경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도 없는 신마치의 골목, 항상 같은 사람들이 모여 앉는 카페, 강가에서 들리는 청량한 물소리, 바람에 흔들려 울려 퍼지는 종소리. 이 모든 것들이 고조라는 공간이며 풍경 그 자체이다. 고조의 풍경과 고조의 인물들을 번갈아가며 보여주는 매 순간에 그 둘 사이에 어떠한 이물감 없이 함께 공존한다. 태훈이 유스케의 안내로 고조시의 골목골목을 구경할 때 이와 관련된 재밌는 장면이 나온다. 태훈이 홀로 떨어져 골목 사이를 걸을 때 귀신처럼 앉아있는 할머니를 보며 깜짝 놀란다. 그리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 할머니의 사진을 찍고 돌아선다. 좁은 골목 안 벽돌담 속에 할머니는 그저 그곳에서 함께 하는 풍경처럼 자연스럽게 감춰져 있으며, 고조의 풍경을 담던 태훈의 카메라에 할머니의 모습도 담긴다. 이 순간 적어도 태훈에게 보이는 고조시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풍경 속에 함께 녹아들 아가 있는 공간이다.


'고조'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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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는 두 번의 몽환적인 장면이 나온다. 첫째 날 저녁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태훈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소녀를 마주치는 장면과 폐교가 된 옛 학교에서 피아노 치는 '요시코'로 보이는 소녀를 마주치는 장면이다. 언뜻 상상처럼 혹은 꿈처럼 보이는 이 장면의 특별한 분위기는 시종일관 다큐멘터리처럼 조용히 관찰하던 1부의 전체적 분위기와는 상반된다. 두 번의 장면 뒤에 각각 이어지는 ‘태훈’의 표정은 모호하긴 하지만, 그가 무언가를 보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건 고조를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태훈이 온 몸으로 느낀 공간에 대한 감각처럼 보인다. 첫 번째 ‘자전거 타는 소녀‘는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기 이전의 과거에 대한 환상이며, 두 번째 ‘피아노 치는 소녀’는 겐지를 찾고 있는 어린 소녀가 시간을 초월하여 다시 태어난 환생이다. 태훈은 고조라는 하나의 공간에서 쌓여왔던 과거의 시간들을 현재의 여기에서 보고 있다. 혹은 오랜 시간 동안 쌓여온 고조의 역사를 하나의 시간으로 모아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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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우물'이라는 타이틀로 시작하는 2부는 1부의 경험을 통해 태훈이 만든 영화로 보인다. 여기에는 태훈은 1부에서 들었던 혹은 벌어졌던 이야기들을 얼기설기 엮여있다.

앞서 두 번의 몽환적인 장면을 통해 태훈은 고조의 긴 시간을 하나의 순간으로 엮어서 보고 있다. 그리고 그런 감각의 결과가 2부의 영화이다. 고조라는 공간에서 오랜 시간 동안 벌어졌던 사건들을 이틀간의 짧은 순간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로 한데 모아, 한국에서 혼자 여행 온 '혜정'과 아버지의 고향이 고조에 정착한 '유스케'의 1박 2일 간의 불꽃같은 설렘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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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를 비추는 방식에 있어서 1부 '첫사랑, 요시코'와 2부 '벚꽃 우물'은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다소 거칠게 나눠서 1부가 공간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면, 2부는 공간을 스쳐지나가는 두 사람을 보여주는 듯 하다.

처음으로 유스케가 등장하는 장면. 1부는 고조 시청 로비에서 롱쇼트의 고정된 카메라가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면 문을 열고 유스케가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한다. 이에 비해 2부에서는 미디엄쇼트의 혜정이 안내소에서 직원과 대화를 하고 있으면 프레임 밖에서 유스케의 목소리가 들리고 한참 동안 화면에 보이지 않은 채로 대화가 진행되다가 겨우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둘째 날, 혜정이 카페에서 유스케를 기다리고 있으면 프레임 밖에서 유스케가 목소리만으로 등장했다가 한참이 지난 뒤 카메라가 패닝하며 유스케를 보여준다.

'시노하라'로 가는 장면. 1부는 음악과 함께 시노하라로 향하는 자동차 내부에서 찍힌 창밖의 풍경으로 이루어진 7개의 쇼트로 구성되었다. 이에 비해 2부는 조금 더 복잡하게 연출되었다. '혜정'과 '유스케'가 차를 타고 '시노하라'로 향하고 있다. 그러다 잠시 휴게소에 차를 세워 담배를 피우고 간다. 혜정에게 담배를 건네며 그 둘이 아무런 말없이 서있고, 둘 사이가 어색하다고 느껴질 때쯤 1부에서와 같은 음악이 들리며 시노하라에 도착한 자동차 속 풍경으로 넘어간다. 이동하는 그 순간 둘은 낚시 얘기를 하며 공감했고, 잠시 어색했지만, 다시 서로에게 장난을 치며 가까워졌다.

대화 장면을 찍을 때도 1부에서는 다소 건조하게 서로의 얘기를 듣는 데에 비해 2부에서는 대화에서 그들의 떨림이 느낄 수 있다. 대화가 진행되던 중 잠시 생겨나는 침묵, 설명하기 위해 혹은 전화번호를 적어주기 위해 한 걸음 다가설 때, 그리고 다시 한 걸음 물러설 때. 이 순간 영화를 보는 우리도 처음 만난 남녀에게서 생겨나는 미세한 공명과도 같은 떨림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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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든 것들이 1부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앞서 1부에서는 고조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은 인터뷰에서 말한다. 고조는 이제 모두가 떠나가 남아있는 사람들만이 지키는 도시이며 더 이상 변화가 없는 도시라고. 그건 생명력을 잃어버린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도시이다. 하지만 고조에 스며들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태훈이 느낀 것은 그 정도로 멈춰 있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전거 타는 소녀’와 ‘피아노 치는 소녀’를 봤고, 영화 '벚꽃우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곳은 첫사랑 히로키를 바라보던 겐지의 애정 어린 시선이 남아있고, ‘흥법대사’의 지팡이로 만들어진 음흉한 벚꽃우물이 있으며, 그곳을 잠깐 스친 혜정과 유스케가 만들어낸 이틀 동안의 추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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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가 흑백으로, 2부가 컬러로 찍혀있는 것도 이러한 감각과 무관해보이지 않는다. 1부에는 멈춰있는 고조가, 2부에는 살아 숨 쉬는 고조가 있다. 1부의 마지막은 이젠 더 이상 흑백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이 하늘에 새겨지는 화려한 불꽃놀이의 불빛으로 끝맺는다. 그리고 2부의 첫 장면 역시 하늘을 비추는 눈부시게 강렬한 햇빛으로 시작한다. 태훈이 그 변화의 순간을 환상의 소녀들을 통해 시각적으로 인지했다면, 우리는 불꽃놀이와 햇빛을 통해 경험한다.


'고조'를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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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엔딩. 이젠 서로 안녕이라는 듯 각자를 뒤로한 채 혜정은 숙소에 들어오고, 유스케는 불꽃놀이 축제에 간다. 축제의 거리를 걷는 유스케. 아무 말 없이 저녁을 먹는 혜정. 길거리에서 꼬치를 먹는 유스케. 욕조에 누워 생각에 잠긴 혜정. 강둑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유스케. 그리고 담뱃불을 붙이는 바로 그 순간 저 하늘에서 불꽃이 터진다. 그리고 그 불꽃을 유카타를 입은 혜정도 보고 있다. 비록 그 둘이 떨어져 있지만, 이 순간 불꽃놀이를 통해 그들은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불꽃을 1부의 '태훈'도 보고 있다. 고조라는 고요한 공간의 긴 세월을 하나로 묶는 하늘의 불꽃은 그 울림이 길고 깊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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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요네자와 코하루를 기억하며'라는 메시지로 시작한다. 장건재 감독에 따르면 '요네자와 코하루'는 1부의 시노하라에서 인터뷰를 하며 김태훈 감독이 손을 잡은 그 할머니라고 한다. 그는 편집하던 중 할머니께서 노환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영화의 시작에 이 메시지를 넣었다. 이 영화 속에서 고조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은 고조의 풍경 그 자체이며 고조라는 지역과 동의어로서 존재한다. ‘요네자와 코하루를 기억하며’라는 그 메시지는 그렇기에 고조를 기억하며라고 읽힌다. 8월 한 여름의 환상적인 풍경을 새겨진 이 영화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어떤 순간을 영원토록 기억하게 하는 아름다운 마법을 가지고 있다. 이건 좋은 영화를 봤다기 보단 좋은 사람을 만난 느낌이다. 좋은 사람이 좋은 영화를 찍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장건재 감독님의 다음 영화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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