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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튜 Feb 15. 2019

유라임, 근황이야기

다시 구로동의 사무실로.

유라임 개발을 시작한지 어엿 3년이 다되어 갔다. 오랜 개발기간과, 심지어 베타가 나와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라임 소식은, 이 브런치만 봐도 알겠지만 벌써 수개월 째 멈춰있다. 어딘가 잘못된 부분도 있었고, 어딘가 나의 좌절과 새로운 시작도 있었다. 오늘은 그래도 감사하게도 유라임에 관심을 가지고 이 브런치를 방문해 주시는 분들을 위해 근황이야기를 해본다.


처음에는 나와같이 자기관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을 위해 내가 해결하고 싶은 자동화, 소셜 등의 거리를 가지고 시작했었다. 회사를 다닐 때에는 맨날 이렇게 야근하고 시간날 때마다 친구들 만나고 놀다보니 당연히 목표한 것을 이루려면 시간을 헛되게 보내면 안되었고, 다시 학교에 복학하며 학생과 프리랜서 생활을 하면서 9to6가 아닌 정말로 unexpected한 삶에서 시간관리의 필요성을 느꼈고, 그런 의미에서 마침 대학원을 소위 실리콘벨리로 불리는 산호세로 진학하면서 꿈꿔왔던 스타트업을 나도 해볼까 느껴서 시작했었다.


3년간 장애물은 턱없이 많았다. 대학원 이전 나는 어학연수 한번 안가본 토박이 한국인이었다. 아무리 수 많은 어학원들을 한국에서 다녔지만, 영어의 장벽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자 나는 나만의 comfort zone으로, 즉 집에서 밖에 나가지 않았다. 대신 유라임을 개발했다. 


솔직히 이러면 유라임 개발이 금방 될 줄 알았다. 난 나름대로 풀스택 기술을 갖고있다고 확신했다. 지금 생각하면 자만이었다. 나는 자바 스프링 개발과 jQuery개발을 주로 해왔다. 현업에서는 워낙 잡다하게 한지라 프론트 백엔드에 대한 구분조차 없었다. 어쨌든 난 다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거기서 잘 알지도 못하는 스칼라 라는 언어를 무턱대고 선택했다. 이유는 별거 없었다. 대세 혹은 fancy하니깐. 개발자의 흔한 허세랄까.


그런데 스칼라는 러닝커브가 적지 않았다.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건 뭐 JVM에서 올라갈 뿐이지, 언어 자체를 진짜 새로 배우는 기분인데 아직도 함수형 프로그래밍은 익숙치가 않았다. 그와중에 난 AngularJS를 알았고, 프론트엔드에서 좀더 짜임새 있는 개발(?)을 할 수 있는 앵귤러를 보고 이거다 싶어서 또다른 러닝커브를 겪었다. 그렇게 2015년 말쯤 나오려고 했던 유라임은 일년이 딜레이됬다.


그럼 일년 후 유라임이 나왔는가? 것도 아니다. 내가 간과하고 있던 것은 내가 Comfort Zone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미국생활은 언제나 극복해야 할 것이 수없이 많았다. 누구나 그러겠지만 커피샵에서 아이스(드) 아메리카노 하나 시키는것도 일년이 지나도 힘들었다. 학교에는 절반 이상이 인도애들이어서 인도발음에 익숙해질 쯤 내가 잊고있던 것은 미국식 발음이었다. 12월 말, 나는 처음으로 피칭을 했는데 거기에 있던 심사관(?)들은 모두 백인이었고, 그들을 이해할 수도 없었고 내 뉘앙스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학교 생활 또한 문제가 있었다. 솔직히 한국에서는 뭐 복학도 늦깎이에 하고 프리랜서 생활하고 그런다면 왠만한 교수(정확히는 강사) 들은 봐주는게 적잖이 있었다. 후배들과는 나는 프로젝트를 해주고 시험에 나오는 쪽찝게 강의를 받았다. 그래서 그냥저냥 평균 B+정도로 학부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미국은 달랐다. 하물며 내가 아무리 연구중심이 아닌 주립대를 다닌다 하더라도 (게다가 학비도 저렴하다.) 학교를 "대충"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부끄럽게도 무려 삼수강이나 하는 경우가 생겨버렸다. 어디에도 꼼수는 없었다. 모르면 물어볼 수 밖에 없었고, 족찝게 강의나, 팀플에서 내가 아무리 프로젝트를 많이 해준다 해서 챙겨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2017년도 그렇게 보냈다. 학교에 치우치다 보니 유라임 개발을 할 시간은 도통 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내가 게을렀다. 학교에서도 과제로 프로그래밍을 이리저리 하다보면 컴퓨터를 쳐다보기도 싫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휴식 시간은 대부분 여행을 다니며 보냈다. 게다가 2016년 말부터 시작된 리엑트와의 갈등, 운영서버 전체에 Kubernetes+docker를 도입하려는 경향, 개발자/운영이 나 혼자이므로 CI를 제대로 구축하고자 하는 욕망 등이 17년을 가득 채웠고, 방학 등을 써서 가까스로 알파버전을 완성했지만 아직도 부족한 것은 턱없이 많았다. 


2018년, 나는 졸업을 했다. 졸업을 하면 당연히 개발이 더 순조로울 줄 알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미국시장을 뚫고 싶어서 수 많은 밋업과 컨퍼런스를 돌아다녔다. 사무실도 샌프란으로 옮겼다. 어차피 평균연봉 억대에 해당하는 개발자를 뽑기는 힘들 것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구인할 돈도 없었고, 교육할 자신도 없었다. 일단 사람들을 무턱대고 만나면서 유라임을 보여줬다. 생각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있어 했었다. 보안 그런건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다만, 내가 정말 고심해서 만든 디자인과 차트, 데이터 시각화를 좋아했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정말이지 못해도 몇백 명의 native만 일부로 만나고 다녔는데도 그게 다였다. 링크드인에서도 VC들에게도 Executive Summary를 보내봤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언제나 Good / thank you 정도였다. 점점 난 자신감을 잃어갔다. 애꿎은 사무실 임대료와 서버비만 나가고, 베이지역의 비싼 생활비와 집세만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갔고, 모아둔 돈도 점차 '안정' 이란 생각이 들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점점 난 자신감을 잃어갔다.


그래도 일단 포기하지 않았다. 우선 어떻게던 베타를 완성시키고자 해서 베타는 완성했다. 일차적으로 내가 생각한 모든 기능을 넣었다. 그리고 내가 유라임을 하면서 완성하면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었던 Quantified Self에 운좋게 부스를 얻어서 참여했다. 진심으로 자기데이타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학계 관계자들이 우르르 있는 모임에서 나는 당당하게 유라임을 알렸다. 모두들 관심있어했고, 좋아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난 여기서 내 문제점을 알았는데, 내가 세일즈 피치로는 당장의 능력으론 어렵다는 것과, 유라임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진짜로 소위 자기데이터에 푹 빠져있거나 /  혹은 진짜 당료병같은 질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혈당 등을 모니터링 해야하는 자기데이터 분석을 진심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작년 말, 이 두 가지 문제점을 알고 나는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계속 미국에서 사업을 진행할 것인가 아니만 한국을 돌아갈 것인가. 실리콘벨리라는게 내겐 너무 환상처럼 느껴졌을까, 아니면 내가 너무 아무런 노력도 안하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었을까. 사실 거창하게 '사업' 혹은 '스타트업' 이라고 말한 것도 부끄러웠다. 직원도 없고, 수익도 없고, 나가는 돈이야 사실 사무실도 필요없고, 월 서버운영비는 한 10-20만원 정도 되고, 그 이외에는 내 시간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제 사업은 너무 많은게 요구되었다. 일단 '발품'을 팔려면 없지않아 내 프로필이 있어야 했고, 그게 아니라면 영어라도 수월하게 되야 했는데 나는 전부 해당되지 않았다. 자금흐름도, 수익구조도 조직도 내겐 전무했다. 어쩌면 정말 이런 것 하나 없이 여기서 스타트업을 한다고 소위 깝치고 다녔으니, 사업이던 미국시장이던 일단 뭔가 되려면 시간과 노력이 지금정도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닳았다.


지난달, 나는 한국에 다녀왔다. 한국에서 나는 오래전 내가 일하던 구로 디지털단지의 아파트형 공장 안의 한 창고를 찾았다. 2평 남짓된 공간을 계약하고 왔다. 금액은 샌프란의 일평짜리 사무실의 두달치 임대료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예전에 있던 내 사업자를 다시 살리려고 해봤다. 아직은 그렇게 되지 않았지만, 올해에 한번 더 한국에 가서 정리를 하려 한다. 미국생활, 정확히는 스타트업 생활은 정리하고 있다. 포기할 때에 과감히 포기하는게 맞다. 하지만 내 경우는 포기라기보다는, 한국으로 돌아가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감사하게도 지금의 유라임의 150명 유저분들 덕분에 지난달에는 처음으로 '광고수익' 이란 것을 내 봤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유라임은 절대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지금 단계에서는 포기했다.


이제 나는 지금 공부를 하고 있는 와이프와 함께 또 다른 이동네의 어느 구석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유라임도 마저 완성시키고, 그간 못다한 공부를 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유라임은 절대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지금 단계에서는 포기했다. 나 스스로의 나태함 혹은 3년간의 시행착오, 적응되지 않았던 모습 등에서 그간 너무 아쉬운 모습을 보였지만, 이제는 집중하려 한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나는 역시나 바쁘고 힘들게 일하던 사람들을 지켜봤다. 휴가차 떠난 서울에서 나는 되려 내가 이렇게 놀고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의 느낌을 받았다. 언젠간 유라임을 통해 꼭 바쁜 현대인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서비스를 만들 수 있도록, 그래도 앞으로도 유라임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글쓴이 메튜장 | matthew@urhy.me | http://www.matthewlab.com


P.S.

어쩌면 2013년, 구로동 창고안에서 조용히 유라임만 구상하고 있을 때 나는 어떻게던 개발을 했었어야 했었다. 6년이 지나고, 시간은 시간대로 흘러갈 뿐, 개발지연은 결국 시행착오보다는, 초심을 잃어서 생겨버린 것을 난 이제서야 이해한다. 그리운 시간이다. 어쩌면, 조용히 구상만 해도 아무런 부담이 없던 그시절이 가장 좋았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의 내 시간이 6년후 내게는 더 소중한 시간이었을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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