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ddy Toy Workshop
고기는 고기서 고기라지만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진심이 담겨야 합니다. 특히 자라나는 말 안 듣는 성장기 틴에이저가 둘이나 있는 우리 집은 무엇보다 고기에 진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고기 굽기의 진심은 조리 온도에 집중합니다. 구운 고기의 핵심인 마이야르 반응 때문이죠. 당연히 높은 온도에서 더 깊은 반응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내에서는 좀처럼 쉽지 않은 조리법입니다.
자주 고기를 굽는 우리는 환기의 간편함 때문에 자이글을 이용하지만 광파 조리법은 고기에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파장이 깊어 겉바를 위해 조리시간을 늘리면 속촉을 포기할 수밖에 없지요.
긴 고민과 시행착오 끝에 결국 우리의 고기는 자이글 초벌에 토치로 시어링을 하는 방법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살짝 도는 불 맛에 화려한 불쑈 덕분에 고기는 더욱 사랑받는 메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쑈는 화염을 동반하는 조리법! 토치 불꽃과 함께 다시 튀어 오른 유증기와 연기는 이러려면 뭐 하러 자이글에 고기를 구웠던가 회의에 빠지게 되었지요.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Serious BBQ Vent Machine Mk-1 프로젝트입니다.
일단 프로젝트는 철저한 계획이 따라야 합니다. 맛있는 고기를 꿈꾸며 꼼꼼히 설계도를 그립니다.
이번에도 이케아에서 잔뜩 산 종이 박스를 사용할 예정입니다. 가볍지만 적당히 튼튼해서 쓸모가 많습니다.
https://brunch.co.kr/@matthewmin/184
이케아는 이렇게 쓰라고 만들지는 않았겠지만 말이죠.
전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유증기로부터 모터를 보호하기 위해 필터가 필요합니다. 주방 후드에 사용하는 그리스 필터까지 적용된 것을 보면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시리어스 한지 알 수 있지요.
필터가 들어갈 자리를 설계하고
부품의 최적 위치와 구조를 강화합니다.
필터는 언제든 꺼내 세척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고기 한 번 굽고 끝내지 않겠다는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시리어스 BBQ 밴트 머신 마크-원의 핵심인 송풍 시스템을 위해 탁상 선풍기 1대가 희생됩니다.
이제 선풍기가 필요 없는 계절이 돌아왔기 때문에 숭고한 희생입니다. 내년에 돌아올 더위 따위는 모릅니다.
뭔가 복잡해 보이지만 그냥 스위치를 밖에서 조작할 수 있도록 붙이고
그러라고 팔았을 리 없는 종기 상자에 긴 홈을 팠습니다.
이 홈에 뚜껑을 끼울 수 있습니다. 그럼 필터가 미쳐 당기지 못한 유증기가 뚜껑에 막히게 되지요.
토치 시어링의 강렬한 유증기를 배출할 ‘시리어스 BBQ 밴트 머신 마크-원’ 완성입니다. 이제 베란다에 창문을 열고 밖으로 고기 향기를 배출하면 됩니다. 우리 고기 먹는다 소리 없이 자랑하는 기능을 포함합니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이렇게 뚜껑을 다시 덮어 보관할 수 있지요.
가족들은 고기를 이렇게까지 구워야 했냐고 투덜대지만 고기를 위한 노력은 진심을 담기 마련입니다. 마이야르 반응으로 완성된 고기 앞에서 모두 경건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아무리 토치로 불쑈를 해도 집안에 고기 냄새가 베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시리어스 BBQ 밴트 머신 마크-원’을 줄여
‘씨바’
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모두 행복해졌습니다.
이렇게 진심이 담긴 고기를 구워 먹다가 치명적인 단점을 마주하게 됩니다. 겨울엔 추워서 창문을 열 수가 없어요. 아내는 고기를 안 먹으면 된다고 하지만 진심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씨바 마크-투’는 창문 환기 덕트를 장착한 궁극의 ‘씨바’가 될 예정입니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입니다. 늘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