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ddy's Toy Workshop
모아둔 와인 코르크 마개는 아직도 많이 남았습니다. 많이 마셔서가 아니라 지난번 코르크 프로젝트로 만든 냄비 받침이 너무 작았기 때문입니다.
https://brunch.co.kr/@matthewmin/228
여하튼 와인을 마시면서 이 마개를 어쩌면 좋을까 만지작거리다가 작은 집이 몇 채 만들어졌습니다. 꼼지락거리다 보니 뭔가 만들어지는 그런 경우지요. 귤을 까먹다가 껍질이 기린이 되거나 화장지가 작은 꽃이 되거나 비슷한 현상입니다.
나름 재미있어서 몇 가지 더 만들어 봤는데 코르크로 집을 만들었을 때 예뻐 보이는 몇 가지 요령이 있더라고요. 복잡할수록 안 예쁩니다. 지붕과 몸체 비율에 따라 서로 같은 듯 달라 보입니다.
몇 가지 비율로 집을 그려보고는 코르크 마개를 대량으로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마른 코르크는 제법 단단해서 반복해서 자르는 일은 퍽 노동이 들어갑니다. 커터 칼도 아주 날카롭지는 않아서 위험하기도 하고요. 자르다 보면 코르크에 스며들었던 와인 향기가 올라오기도 하죠.
그러니 노동의 고됨과 향에 자극이 되어 다시 와인을 마시고 또 코르크 마개가 늘어났습니다. 노동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느껴질 때마다 더 마셨습니다.
지붕은 시큼한 냄새가 나는 목공 본드로 붙이고
문과 창문은 핀셋으로 파낼 때쯤 와인은 사라지고
집만 잔뜩 남았습니다. 이제 이 집들로 뭘 해야 할지 고민을 할 시간입니다.
드라마도 한 편 보고 밀린 만화책도 보고 게임 중간 보스에게 욕을 하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했어요. 이 집들 아무리 봐도 쓸모를 찾을 수 없었거든요.
바닥에 이쑤시개를 끼웁니다.
잔디에 꼽는 골프티같이 말이죠.
그러고는 지난번 인테리어 책에 영향을 받아 거실로 옮긴 화분에 끼워 줍니다. 일부러 찾아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지만 존재를 아는 사람만 볼 수 있는 즐거움이 되도록 말이지요.
그래서인지 이렇게 끼워 둔 후 가족 중 아무도 이 집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요정들이 지낼 집을 찾았나 봐!’라고 알려주고 싶었지만
한참 전부터 10대를 앓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면
‘요정이 아니라 요괴겠지’
라는 답이 돌아올게 뻔해서 나만 알고 지내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