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빴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도 몰아봐야 했고, 선물 받은 커피 원두의 최적의 추출 조건을 찾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영화 듄에 감동을 받아 소설도 읽다가 압도적인 두께에 좌절하기도 했고, 고기는 부챗살 수비드 조리법이 최고라면서 프라이팬을 홀랑 태우기도 했고, 여하튼 지난번 동글동글 타이타닉에 조명을 달아준 이후로 바쁘게 보냈습니다.
https://brunch.co.kr/@matthewmin/251
그래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중국의 모형 회사가 출시한 타이타닉 모형에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라야겠다고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타이타닉은 굴뚝이 4개나 되는데 앞뒤를 콱 눌렀다고 해도 숫자를 줄이지 않은 것을 보면 타이타닉의 굴뚝은 중요한 상징인 거죠. 그런 굴뚝이라면 연기가 퐁퐁 피어올라야 합니다.
사실 처음부터 이렇게 증기가 올라오도록 초음파 발진기에 LED를 달았던 거였어요. 소소한 문제라면 이때까지도 이 초음파 발진기를 어떻게 넣을지는 하나도 고민하지 않았던 거죠.
일단 갑판 위로 구멍부터 뚫기로 했습니다.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요?
노란 굴뚝을 끼우고 보니 굴뚝도 막혀 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에게는 대단히 위험한 구조입니다.
굴뚝도 뚫어 줍니다. 4개나요.
이 구멍으로 증기가 퐁퐁 올라오겠지요. 어떻게 물을 넣을지 초음파 발진기는 어디쯤 있어야 할지 이때도 별로 생각이 없었어요. 안되면 이 배는 원자력으로 움직인다고 우길 겁니다.
초음파 발진기는 물을 빠르게 두드려 작은 물방울이 튀어 오르게 하는 장치입니다. 저렴한 가습기가 많이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물을 담을 그릇이 필요하니까 최대한 공간을 마련해 보기로 했습니다. 가장 위 갑판을 뚫고
두 번째 갑판도 뚫어줍니다.
이제 더 이상 고민을 피할 길이 없어졌습니다. 없던 상상력을 동원해서 스팀 엔진을 설계했습니다.
공간이 좁아 이게 들어갈까 고민되긴 해요. 이번에는 전문 설계 프로그램인 카티아로 설계를 했습니다. 안쪽이 텅 빈 디자인은 전문적인 설계툴이 훨씬 편리합니다. 하도 설계 프로그램을 이것저것 번갈아 사용하다 보니 매번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네요.
종이에 그리는 설계도는 대략 크기가 짐작이 되지만 컴퓨터로 그리면 확대 축소가 쉬워 크기가 좀처럼 짐작이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직접 출력해 보기 전까지는요.
스팀 엔진을 그리면서 타이타닉은 4개의 굴뚝 중에 1개는 동작하지 않았다는 자료를 찾았습니다. 타이타닉 설계 당시 3개로 충분했지만 멋져 보이려고 하나를 더 추가했다고 합니다. 이 동글동글 타이타닉도 마지막 굴뚝은 막혀있습니다. 대체 언제 써먹어보나 싶은 타이타닉 상식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진작 알았더라면 구멍을 하나는 안 뚫어도 될 뻔했어요.
3D 프린터로 출력한 용기는 물이 샙니다. 한층 한층 쌓아올린 틈으로 물이 스미기도 하거든요. 전자기판 방수액을 발라주었습니다.
초음파 발진기는 물에 닿아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물이 점점 날아가 버리면 증기 없이 발진기 혼자 동작하지요. 스펀지 막대를 넣어 물을 계속 공급하게 만들어 주어야겠습니다.
초음파 발진기를 끼웁니다.
이미 실리콘으로 꽉 끼워지지만 구멍을 한 번 더 막았습니다. 여기서 물이 세면 LED와 기판이 망가질 수 있거든요.
증기가 폴폴 피어오릅니다.
1.5ml 물은 첫 번째 굴뚝으로 넣어줍니다. 금방 날아가 버릴 테지만 이건 타이타닉이지 가습기가 아니니까 괜찮아요.
증기가 피어오릅니다. 어쩐지 가운데만 나오는 거 같지만 물방울이 맺히면 금방 막혀서 다른 굴뚝에서도 증기가 나옵니다. 그러다 다시 나오는데 역시 인생은 계획한 데로 되는 건 아니구나 삶을 배웠습니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중국 모형사의 타이타닉은 조명에 스팀 엔진까지 달았습니다. 앞쪽에 작은 스위치를 달아서 무언가 부딪히면 반으로 분리되는 장치를 넣어볼까 했지만 그럼 생긴 것과 달리 너무 비극적이 될 거 같기도 하고 이미 초초초 마이너 한 취미가 더 괴팍해질까 그만두었습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세요 : 3D 프린터 (미래의 과학자와 공학자가 꼭 알아야 할)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3314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