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동 커피 머신 고장을 핑계로 저의 커피 제조 구역은 조금씩 조금씩 늘어 가고 있습니다.
알려진 저렴한 가성비 도구들이라 자랑할 정도는 아니지만 구석에 독특한 커피 만드는 도구도 있어요.
더치커피 머신입니다. 찬물을 분쇄 커피에 천천히 떨어뜨려 커피 성분을 긴 시간 동안 뽑아내는 커피입니다. 콜드 브루는 분쇄한 커피를 찬물에 담가 냉장고에서 하루를 기다려 마시는 커피로 더치커피와는 추출 방법이 다르죠. 그런데 두 커피는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기도 하는데 맛이 대단히 비슷하기 때문인 거 같아요. 하지만 더치커피 머신은 원하는 커피 원두를 직접 갈아서 사용할 수 있어 여름이면 콜드브루 보다 더치커피를 더 자주 만듭니다.
올여름의 더치커피는 이케아에서 파는 원두로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이케아 커피 원두는 포장 후에 긴 물류 때문인지 에스프레소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원두 안에 가스가 거의 다 빠져 아무리 조건을 다르게 추출해도 풍성한 크레마를 가진 에스프레소를 만들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다른 커피에서 맛보지 못한 독특한 견과류 향기가 납니다. 드립 커피로 즐길 수 있지만 더치커피로 적당하지 않을까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제 더치커피 도구는 물을 많이 넣을 수 없어 원두는 20g만 넣었습니다. 싱거우면 다음에는 조금 더 넣을 생각입니다.
더치커피는 너무 가늘게 분쇄하면 물이 커피가루에 고루 퍼지지 않고 맛없는 에스프레소처럼 물길을 만듭니다. 조금만 물을 부어도 커피 사이로 물이 스며들 정도로만 분쇄합니다.
커피 가루가 빠지지 않게 필터를 깔고
분쇄된 커피를 넣어줍니다.
물이 떨어지는 위치에 필터를 한 장 더 올려주는데 이것도 물이 고르게 퍼지도록 해요. 그러려면 다 덮는 필터를 쓰는 게 맞는 거 아니냐는 고민이 생기는데 이렇게 조금 작은 필터를 사용하는 이유는
이것밖에 없어서 그런 거지요.
커피 위로 찬물을 부어줍니다. 찬물을 유지하기 위해 얼음을 넣어주기도 하는데 저는 그냥 찬물을 사용합니다. 물이랑 얼음 물이랑 도통 맛의 차이를 모르겠더라고요.
https://brunch.co.kr/@matthewmin/194
열전소자로 계속 찬물을 떨어지는 도구를 만들다 실패한 이후로 물의 온도는 맛에 큰 차이가 없다고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상온에서 긴 시간 추출하기 때문에 세균이 발생할 우려도 있습니다. 더치커피를 다루는 가게가 많이 사라진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해요. 집에서 하루 만에 만드는 커피지만 가능한 손이 닿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대부분의 공기보다 손에서 전달되거든요. 물론 커피를 만들면서 떠들면 침도.....
이제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시간을 즐기면 됩니다.
1방울이 몇 초 만에 떨어져야 한다는 조언도 있지만 이것도 잘 모르겠어요. 그 몇 초가 맛에 영향이 없지는 않겠지만 물에 담가놓고 기다리는 콜드브루와 맛이 비슷한 걸 보면 저는 아직 몇 초를 구분하는 혀를 가지지 못한듯해요.
다 내려온 커피를 이렇게 병에 넣고 냉장고에 하루 정도 넣어 둡니다.
그리고 얼음과 찬물을 넣고
그 위에 냉장고에서 기다린 커피를 더합니다.
유난히 뜨거웠던 이번 여름은 이 커피와 함께 지냈습니다.
물론 여전히 에스프레소를 가장 많이 마셔요.
이름처럼 빠르게 만들 수 있고 간편하니까요.
그래서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한 더치커피는 에스프레소와 반대에 있는 커피라는 생각을 해요.
커피는 커피는 뜨겁고 진하고 향기로워야 하기 때문에 에스프레소를 고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커피에 물을 넣은 아메리카노나 거기에 얼음을 넣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커피가 아니라고도 생각한다네요. 오래된 커피 추출 법인 이브릭은 무척 진한 커피를 만든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드립 커피는 에스프레소만큼 진한 커피는 아니잖아요. 농도를 정하는 건 커피를 즐기는 다양한 방법에 대한 편견이라는 생각도 해요.
하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마치 물을 잔뜩 부어 놓고 거기에 얼음을 넣은 라면 같은 거라는 비유를 들었을 때는 에스프레소를 고집하는 이유가 어느 정도 납득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무실에 직원들이 이런 이상한 비주얼의 라면을 만들어 먹는 걸 보기 전까지는요. 마... 맛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