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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thew Min 민연기 Mar 20. 2023

벚꽃 핀 골목 만들기

MAtt's Toy Workshop

네이버에서 엄청 비싼 물건을 지르고 받은 제법 큰 포인트로 무얼 사면 좋을까 행복한 고민을 계속했어요. 그러다 페이스북 어딘가의 광고에서 작고 예쁜데 참 쓸모없는 물건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작고 예쁘고 쓸모없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Cherry Blossom Alley라는 제품입니다. 벚꽃 만개한 일본의 골목을 작고 예쁘게 만들 수 있는 제품이죠. 상자도 딱 중국에서 생산된 것 같은 하지만 중국의 인건비로 부품은 모을 수 있어도 도저히 만들 수 없는 그런 장난감입니다. 다 완성하고 나면 책 모양으로 책장에 책들 사이에 끼워둘 수 있답니다.

https://blog.naver.com/smoke2000/221526350986


예전에도 분명히 이런 비슷한 장난감을 샀다가 어두워가는 노안을 혹사했던 아픔이 기억났지만 무시했습니다. 마침 세일 중이었고 네이버 포인트가 세일가와 꼭 맞았거든요. 그건 테트리스의 긴 막대같이 절대 못 참죠.



어디 서랍 구석에 굴러다니는 쪼가리를 잔뜩 넣은 봉투들이 쏟아지는 걸 보고서야 내가 대체 뭘 산 건가 정신을 차렸습니다.



몇 장이나 겹쳐진 인쇄물과 그 용도를 설명하려고 깨알같이 적힌 설명서가 아찔해서 그냥 서랍에 넣으려고 했지만 상자도 제법 큽니다.



단추 건전지가 3개 들어가는 LED도 있잖아요. 그냥 매일매일 조금씩 만들어 보기로 했어요. 지난번 토끼가 들어 있던 상자를 만들 때 더 이상 눈이 나빠지면 이런 거 못 만들지 모른다고 안타까워했던 것도 기억났거든요.



작은 구슬에 더 작은 구슬을 목공 풀로 붙이고 돌돌 말린 무늬의 롤을 김밥 자르듯 적당히 잘라 줍니다.



한참을 만지작거리다 보면 이런 손톱 크기의 선반이 나타납니다.



이런 작은 스티로폼 조각도 붙이다 보면 작은 선반이나 진열장이 만들어지는데



처음에는 대체 이건 뭘까 싶은 것들이



자기 자리를 찾으면서 숨었던 모양과 역할이 드러나는 것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지칠 즘 하나가 완성되고 거기에 기분이 좋아져 계속해서 만드는 거죠.



그렇게 만들어진 작은 조각이 전체 어딘가 작은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합니다.



작은 나뭇조각도 무늬가 있는 종이로 창호지가 되고



더 작은 나뭇조각은 의자와 책상이 됩니다.



골판지는 도안이 그려진 종이와 겹쳐 자르면 지붕이 됩니다.



이렇게 작은 무언가가 오밀 조밀 생겨나는 걸 구경하다 보면



두 면으로 되어 있는 이 일본 골목의 한쪽이 만들어집니다.



그냥 파란 나무가 두 그루 들어 있어요. 이 장난감의 주인공인 벚나무인데 목공 풀을 바르고 분홍색 먼지를 붙여줍니다.



벚나무는 꽃이 모두 지고 난 다음에 푸른 잎이 나니까 모두 덮어줄까 싶다가 그만두었어요.

https://youtu.be/_waR_qAd2sM



여기까지 만드는데 얼마나 긴 시간이 걸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아직 절반이나 남았거든요.



다시 정체를 알 수 없는 조각들이 서로 붙고 그 조각들이 모이면 이국 풍경에서 본 듯한 물건이 됩니다.



LED도 많아서 전기 공사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LED와 배터리를 솔더링하고 수축 튜브로 덮어줍니다.



그리고 다시 작고 작은 무언가를 계속 만들다 보면



나머지 길의 1층이



그리고 2층이 만들어집니다.



타국의 풍경이지만 얼마 전 갔었던 일본의 느낌과 무척 비슷해요. 조용히 다시 여행의 기억을 떠올려보기도 좋았습니다.



바닥에 돌과 바람에 날려 떨어진 벚꽃, 그리고 덩굴처럼 올라간 잎을 군데군데 붙입니다. 이미 절반을 만든 경험도 있고 찾아야 할 작은 부품 수도 절반으로 줄어서 훨씬 빨리 절반이 완성되었습니다.



색이 조금 원색적이라 무광 코팅을 하고 파스텔로 명암을 강조해 주었습니다.



이제 책의 표지를 만듭니다. 도톰한 부직포에 천을 붙여 줍니다. 그런데 이 천이 상자에 꼬깃꼬깃 접혀있어 결국 다리미로 펴주었습니다. 그 위에 지금까지 만든 길의 좌우를 붙여줍니다.



양쪽 건물을 연결하는 전기 공사로 두 길을 하나로 연결합니다.



책처럼 접어서 책장에 끼울 수 있지만



이렇게 좌우가 쫙 펼쳐지기도 합니다.



LED가 제법 밝아 환한 곳에도 아기자기합니다.



접으면 앞과 위가 투명한 아크릴로 덮이기 때문에 딱히 먼지가 쌓이지도 않습니다. 쌓여도 구별할 수도 없겠지만요.

https://youtu.be/dCxqP6wfRi4



작고 아기자기한 걸 좋아하지만 이런 물건이 주변에서 시선을 어지럽피는건 싫어 보통은 실컷 만들어 놓고 어디 서랍에 숨겨두지만



이번은 책장에 그대로 기워두고 가끔씩 불을 켜보기로 했습니다.



책 높이와 책표지 색이 어울리지 않은 검은색 표지 책장에 옮겨두었습니다. 왠지 옆엔 일본 관련 서적을 두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네요.


시간도 오래 걸렸고 목공 풀로 아슬아슬하게 붙여야 하는 곳이 많아 만들면서 한숨을 몇 번이나 쉬었어요. 하지만 한참 지난 다음 또 이런 제품이 세일을 하고 마침 엄청 비싼 것을 사서 포인트가 많이 쌓여있으면 또 사겠지요. 왜 샀을까 후회하며 다시 한숨을 쉬며 만들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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