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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thew Min 민연기 Aug 06. 2024

소주 + 오크칩

MAtt's Toy Workshop

세상의 술은 막걸리나 와인 같은 발효주, 거기서 알코올만 뽑아낸 증류주, 거기다 뭘 섞은 혼합주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증류주는 보드카나 소주가 있죠. 소주는 거기에 맛난 감미료를 섞지만 기본적으로 알코올입니다. 이런 술을 스피릿이라고 해요. 그리고 옛날 옛날 그 스피릿을 나중에 팔려고 통에 보관하다 만든 술이 위스키죠. 


우리나라는 오크통에 들어갔다가 나온 술은 각별히 높은 세금이 더해지기 때문에 국산 위스키는 좀처럼 만나기 힘들어요. 그래도 요즘은 저렴한 수입 위스키가 있어서 혼자 홀짝홀짝 마시다 저렴한 위스키의 맛을 올려준다는 오크칩이 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럼 도수는 낮지만 주정과 물이 주성분인 소주에 그 오크칩을 넣으면 위스키 비슷한 뭔가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술김에요. 



마트에 달려가 그래도 도수가 조금이라도 높은 소주를 사 왔습니다. 집에서 자주 마시는 저렴한 와인도 한 병 준비하고요. 물론 술김이죠. 



소주 가격보다 오크칩 가격이 훨씬 비쌌지만 술김에 시작한 일에 뭐 이성적인 판단을 기대하겠어요? 그래도 병마다 정확하게 10.0g의 오크칩을 넣을 겁니다. 



소주보다 비싼 오크칩을 흘릴까 조심스럽게 술에 넣어 줍니다. 



이때쯤 조금씩 이성이 돌아왔기 때문에 원래 있던 마개 대신 와인 코르크로 막아 주었습니다. 원래 위스키는 오크통에 스며 증발하는 천사의 몫이 있거든요. 유리병에서는 재현할 수 없으니 조금이라도 외부와 통하라고 코르크를 생각했어요. 코르크도 나무니까요. 매우 이성적인 판단이었다고 생각해요. 



오크통과 스피릿이 만나는 곳은 통의 내부 면적입니다. 하지만 반응도 통 내부 표면에서만 일어날 테니 저는 한 번씩 흔들어 만나는 면적을 늘리기로 했습니다. 



직사광선은 위스키도 망가트립니다. 낮 시간에는 아내의 그늘진 아일랜드 식탁 아래 선반에 보관하고 



저녁이 되면 이렇게 뒤집어 흔들다가



밤에는 김치냉장고에 보관합니다. 위스키의 숙성은 계절에 따라 오크통에 스몄다가 다시 나오기를 반복하며 이루어집니다. 여름과 겨울을 이렇게 하루로 압축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면 표시를 합니다. 



매일매일 반복했습니다. 아내는 매일매일 한심한 표정으로 반복해서 바라보았습니다. 바를 '정'자를 쓰면서 이 술을 '바른 위스키'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이렇게 15일 지나고 저는 15년의 맛을 담았다고 자랑하며 개봉을 했죠. 18년산이나 25년산을 만들 수도 있었지만 그날 마침 저녁식사에 맞는 술이 하나도 없어서 어쩔 수 없었어요.  



색깔은 마트에 저렴한 위스키보다 투명합니다. 그래도 뭔가 소주보다는 고급스러운 빛깔이에요. 향기는 오크 향을 중심으로 그 너머에 소주 냄새가 숨어있습니다. 맛은 소주의 쓴맛을 오크 향이 살짝 누른 맛입니다. 


이도 저도 아닌 맛입니다. 



저렴한 위스키에 시험해 볼 수 있다는 필살 기술! 미원을 넣어보기로 했습니다. 고급 위스키의 감칠맛을 흉내 내는 거죠. 향기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맛은... 소주의 쓴맛을 오크 향이 살짝 눌렀는데 거기에 미원 맛이 납니다. 



기대했던 맛에 조금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남은 최후의 필살기술 강제 에어링을 진행했습니다. 


향기는 변하지 않습니다. 


맛은 소주의 쓴맛을 오크 향이 살짝 눌렀는데 미원 맛이 나는 하지만 어쩐지 알코올의 자극적인 향이 조금 부드럽게 느껴지는 


이도 저도 아닌 맛이 되었습니다. 


https://youtu.be/YS6W6VpxLwg?si=rOYLNWIsNvt0byt6


아내는 15번째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다가 아껴둔 조니워커를 한잔 따라 주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 방법이 아주 이상한 방법은 아니라고 해요. 요즘 인기 있는 하이볼은 가격 때문에 진짜 위스키를 사용할 수 없다고 합니다. 위스키를 만들어 넣을 수도 있지만 오크통에 들어간 술은 세금을 감당할 수가 없죠. 그래서 주정에 오크칩을 넣어 숙성 비슷한 것을 흉내 낸 유사 위스키로 저렴한 하이볼을 만든다고 합니다. 저기다 콜라라도 섞었어야 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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