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t's Toy Workshop
테무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초여름. 저는 신규 가입자는 사은품을 준다는 광고에도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테무는 참 테무스러운 물건을 테무스러운 가격에 팔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인터넷 유머 게시판을 돌아다니며 좋아하다가 이 제품을 발견했습니다. 뭔가 복작복작한 DIY인데 이걸 그냥 준다는 거예요!!!
뭐 그냥 주는 건 아니고 신규 가입을 해야 하고 총 구매 가격이 12000원 이상이어야 한다는 복잡한 조건이 있지만 그래도 그냥 준다는데 궁금하잖아요. 내게 뭐가 필요한가 한참을 고민해서 가격을 딱 맞춰 주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제품이 도착했어요. 이 제품의 가격은 대략 3만 원대입니다. 물론 원가는 이보다 훨씬 적은 1만 원대 일 테고 아크릴 케이스가 포함되지 않은 조금 인기 없는 제품인데다 이런 걸 선뜻 만들 사람은 흔하지 않겠죠. 그보다 해리 포터의 마법 지팡이 가게라니 해리포터 시리즈가 끝난지 한참 되었으니까 분명 악성 재고였을 거예요.
그래도 신규 회원 가입에 마케팅 비용이 만 원입니다. 공격적이죠.
다행히 설명서는 영어로 되어 있습니다. 사진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정말 끝이 날까 싶어요.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유리구슬과 나뭇조각들에 놀라서 그냥 잘 넣어 책장 위에 던져 두었습니다.
https://brunch.co.kr/@matthewmin/276
지난번에 만든 '벚꽃 핀 골목 만들기' 후유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거든요.
그렇게 까맣게 잊고는 에어컨 아래서 커피도 마시고 드라마도 보고 게임도 하다가 가족과 도쿄에 놀러 갔습니다. 갑자기 방문한 일정이라 어딜 가볼까 고민하다가 새로 생긴 해리포터 스튜디오로 결정했습니다. 해리 포터를 정주행 했던 힘든 기억도 있고요.
하지만 이야기도 가물가물하고 아이들도 해리 포터를 좋아하기엔 이미 다른 재미난 것들이 많아 조금 시큰둥하게 지하철을 탔습니다.
스튜디오는 지하철 가까이 있어 금방 갈 수 있습니다. 역에서부터 해리 포터를 생각나는 거꾸로 돌아가는 시계 같은 소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편백나무로 유명한 곳인지 스튜디오까지 가는 길에서 히노키 향기가 납니다. 스튜디오도 나무 가득한 공원 가운데 있습니다. 평일이라 한산한 공원을 지나면 조금 아담하게 보이는 건물을 만납니다.
입장 전에 안내 직원의 소개와 영상들을 보고 나면 다음 방을 구경하는 형태의 테마파크입니다. 영화 세트를 그대로 재현해 두었기 때문에 해리포터 세계에 들어온 느낌입니다.
각각의 방을 지나다 보면 해리 포터의 세계관이 얼마나 치밀하게 디자인되어 있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그냥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 체험할 수 있는 곳들이 있습니다. 영화 한 장면에 출연해 보기도 하고 마술 지팡이를 휘둘러 볼 수도 있습니다.
해리 포터가 살던 작은 방도, 영화에서 만났던 장면도 그대로 재현되어 있어요. 그런데 이 스튜디오 봐도 봐도 가도 가도 끝이 없어요.
정문에서 느꼈던 아담함은 마법학교로 가는 기차를 만났을 땐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곳이 얼마나 넓은지 짐작해 보다 완전히 지칠 때쯤 식당을 만납니다. 메뉴조차 해리 포터나 먹을법한 음식들입니다. 조금 비싼 편이지만 맛있습니다.
영화 속 마을부터 특수 효과 기술들, 그리고 세계관 설명까지 보다 보면 해리 포터가 얼마나 대단한 콘텐츠였는지 감탄하다 질리기 시작하는데
마지막 거대한 마법학교 모형을 만나면 그 꼼꼼한 묘사와 규모에 감탄합니다. 세밀한 묘사가 허술한 곳 하나 없이 모여 거대한 디오라마를 완성하는데 그 크기에 비해 사실적이어서 반대로 현실 같지 않은 느낌마저 들 정도였어요.
그리고 모든 테마파크의 꽃인 기념품 가게로 이어집니다. 해리포터 한 가지로 이렇게 많은 상품이 있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한쪽에 마술 지팡이를 파는 곳이 있습니다. 손에 맞는 지팡이를 찾다가 갑자기 책장 위에 던져 둔 테무의 '마술 지팡이 가게 만들기'가 떠올랐습니다. 그걸 만들면 꼭 이런 느낌일 거 같았죠.
이것이 '마법 지팡이 가게 만들기' 봉인이 해체된 내막입니다. 이 기분이 식기 전에 빨리 만들지 않으면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이 모델은 친절한 편입니다. 종이 부품은 미리 칼질이 되어 있어요. 어릴 때 딱지 같아요. 떼어 내고 나서 다시 세밀하게 잘라야 하는 부품도 많지만 이것만으로 작업이 많이 줄어요.
접착은 목공 풀로 합니다. 하얀색이지만 마르면 투명해져서 어지간한 실수도 눈에 보이지 않죠. 보통은 목공 풀도 함께 넣어주는데 이 제품은 없네요. 유통과정에서 흐를까 봐 뺀 건지도 모르겠어요.
나무 부품들은 모두 레이저 커팅이 되어 있습니다. 고정된 부분만 자르면 쉽게 떨어집니다. 함께 들어 있는 사포로 조금만 다듬어 주면 됩니다. 목공 풀은 안 넣어주고 선 사포는 있습니다. 조악한 품질의 핀셋도 하나 들어 있습니다. 바로 버렸습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스티커에요. 자르고 풀칠하고 붙이는 과정이 때서 붙이는 걸로 끝나죠.
이렇게 눈에 보이지도 않을 작은 소품들을 끝없이 만들게 됩니다.
너무 작아서 접어야 하는 부분은 미리 접는 선을 넣어주어야 합니다.
이런 모형의 또 다른 재미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구슬도 설명서를 따라 붙이면 전혀 다른 모양을 만날 수 있어요. 구슬에 단추를 붙여 물병이 되는 거죠.
재료도 다양한데 얇은 가죽도 있습니다.
레이저로 제단 된 나무는 자른 면에 검게 탄 흔적이 남아요. 하지만 겹쳐 붙이면 자연스럽게 상자로 보입니다. 스티커 라벨까지 붙이면 정말 안에 마술 봉이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마술 봉 상자를 끝없이 만듭니다.
마술 봉도 몇 개나 반복해서 만들어야 해요. 긴 철사와 반짝반짝 구슬로 만듭니다. 그 위에 얇은 은박을 입히기도 합니다.
소품을 끝없이 만들다 보관할 가구를 만들 차례입니다. 마술 지팡이 가게는 벚꽃길보다 스케일이 커서 가구를 만드는 게 참 재미있었어요.
그렇게 만든 가구에 소품을 채우고 있으면 인형놀이를 하는 기분이 듭니다.
구슬과 철사만으로 만들어진 서랍 손잡이는 확대경으로 봐도 그럴듯합니다.
선반에 해리 포터의 빨간 기차모형이 들어가는데 모형안에 모형이라니 재미있어요.
미리 만들어 놓은 선반에 놓이지 않은 소품들은 아직 많이 남았는데 용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구슬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또 마술 지팡이를 만들고 받침을 만듭니다.
LED를 선반 위에 고정합니다. 거기엔 투명한 구슬로 만든 램프가 올라갑니다.
이렇게 소품이 가득한 가구가 쌓여갑니다.
이쯤 되니 뭐가 이렇게 많기만 한 걸까 이것들이 다 들어갈 공간이 있기는 한 걸까 의심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마지막 가구를 만들고 거기에 소품을 가득 채워 넣었는데도 입으로 불면 훅 날아가 버릴 작은 것들이 잔뜩 남았거든요.
작고 작은 것들에 지칠 때면 커다란 나무판만 남게 돼요.
스케일이 바뀌면서 만드는 난이도도 달라집니다. 이 가게의 규모가 슬슬 보이기 시작해요.
이 창들은 초록색으로 칠하면 예쁘다고 설명서에 추천했어요. 이곳을 위해 붓도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물감이 없어요. 풀도 없고 물감도 없는걸 보면 액체를 무사히 배송할 자신이 없었나 봐요.
가게가 만들어지면 남은 소품을 진열합니다.
좁은 공간에 끝도 없이 물건이 쌓입니다. 이 가게는 장사가 잘 안되나 봅니다.
진열장을 위한 전기 공사와 건물을 열어볼 경첩을 달아줍니다.
가구를 가게 안에 하나씩 넣어줍니다. 건프라를 만들 때 만들어진 팔다리를 모두 합칠 때 즐거움 같죠.
뒤로 배터리를 연결해 줍니다. 스위치가 있는데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켜고 꺼지면 좋을 거 같아요. 다음에 간단한 회로를 넣어봐야겠어요.
액자까지 벽에 붙이고 나면 거의 완성입니다.
길가 돌 사이에 풀까지 붙여줍니다.
눈으로 보이지도 않을 작은 물건들을 가게라는 프레임 안에 모두 들어갑니다.
디자인의 밀도가 조화로워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가게를 반으로 열어 볼 수도 있지만 창문을 통해 가만히 바라보면 어릴 적 장난감 가게 진열장을 한없이 구경하던 생각이 떠오릅니다.
부피가 제법 큰 만큼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지난 일본 여행을 생각나요. 정작 해리포터 스튜디오 기념품 가게에서는 아무것도 사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이게 더 기념이 되었어요.
고등학생이 되고서는 더 말이 없어진 아들이 스마트폰 카메라로 조용히 사진을 찍고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