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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tOh May 20. 2016

사람이 먼저인 슬픈 커머스

이커머스가 어려운 시장인 이유

제목만 보고는 갑자기 웬 궤변이냐고 하시는 분들이 많겠네요.

제목처럼 무슨 사람 냄새가 난다던가 훈훈한 얘기는 더더욱 아닙니다.

이번에는, 적자 풍년인 이커머스 종사자들에게는 먹먹하고 미칠 것 같은 냉정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난 글에서, 저는 플랫폼에 대한 화두를 꺼낸 적이 있습니다.

왜 요즘 그 뜨거운 감자인 소셜 중심의 이커머스 시장이 의외로 심심한 곳인지 바라보자는 얘길 했었죠.


제 주변인 중에는 온라인 커머스에 몸담고 계시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정확히는 커머스가 아니라 쇼핑이겠네요. 커머스의 범주가 워낙 방대하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겠습니다. 하지만 이커머스의 정의 자체가 상거래를 중심으로 표현되어 왔으니 어찌되든 커머스라고 표현할까 합니다.) 그 분들은 늘 미래의 먹거리를 찾아 다니시는 분들입니다. 경쟁에 민감하고, 시장을 냉철하게 바라보시죠. 승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십니다.


이러한 이커머스의 최근의 화두는, 고객 로열티와 데이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로열티와 데이터는 굉장히 고리타분하고 오래된 얘기인데, 이제 와서 이 얘기를 꺼내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 또한 언젠가 사업을 하게 된다면, 제 기준에서 제 사업의 성패를 판단하는 기준은 아래 질문에 대한 답이 있는 경우일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아래 문장은 약 3년 전 제 스승님의 고민으로부터 이어져 온 제 비즈니스 관점이기도 합니다.


내가 만든 회사를 내가 없애야 하거나, 시장 논리로 없어져야 할 때, 내 손에 무엇이 남을까. 모든 게 "0"의 가치로 소멸되어 버린다 해도 결코 없어지지 않는 무엇이 있을까?


예를 들면, 브랜드, 지적재산(특허/저작 등...), 영업권 등이 떠오르겠죠. 그런데, 권리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었을 때나 가능할텐데 평범한 비즈니스에서는 어려울테고, 브랜드 가치가 있었다면...쉽게 사업을 없애려고 했을까 싶기도 합니다. 영업권이야 직관과 운빨(?)에 달려있으므로 제 역량에 의한 결과물은 아닐 겁니다.(물론 열심히 장사하면 가치가 오를 수도 있겠지만, 영업권의 대부분은 주변 환경에 의해 좌우되겠죠.)


물리적으로, 객관적으로, 내가 사업을 하는 동안 명백하고 자연스럽게 남는 것은 아래 두 가지일 겁니다.


나와 거래를 한 사람(=고객)

나와 거래를 했던 기록들(=데이터)


따라서, 고객과 데이터는 유형의 매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온라인 커머스에서 자유롭게 활용 가능한 자산이자, 무기이고, 때로는 사업 확대(신사업 확장이 아닌, 기존 사업의 규모 확대)의 주효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나만의 매장에, 나만의 고객과 데이터로 쌓인 자산들을 활용하고자 빅데이터, DW, 봇, 머신러닝 등의 기술들이 쌓여온 거죠. 아마존은 "가장 고객 중심적인 회사"로 성장해오길 추구했으며, 국내에서는 소셜커머스를 중심으로 모바일 푸시 마케팅이 성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요, 저는 사실 이러한 흐름에 굉장히 반대노선을 타는 얘길 하고자 합니다.


고관여를 하고 싶으면 관여를 하지 말아야 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싶으면 시장을 바라보면 안되고,

고객을 끌어들이고 싶으면 고객을 끌어들이려 하면 안된다는 겁니다.


온라인에서는 흔히 큐레이션을 한다고 합니다. 잘 팔릴 만한 상품을 소싱해서 매장에 내다 파는 거죠. 가격과 물량에 대해 MD가 관여를 하게 되어 있으며, 이를 우리는 "고관여 상품"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관여 상품이 과연 잘 팔릴까요? 업체별 사정이 다르겠지만, 대표적인 추세를 보기 위해 온라인 광고시장을 한 번 보겠습니다. 규모보다는 트렌드를 보세요.



모바일 검색 광고가 꾸준히 올라가고 있습니다. 아이폰이 국내에 2011년 9월 출시했으니 지금까지는 성장세인게 무리는 아닙니다만, 어찌되었든 검색 시장이 성장을 한다는 건, 모바일의 기본은 검색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거꾸로 얘기하자면, 큐레이션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기본을 넘어설 수 있는 제안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많은 MD들이 검색결과보다 더 나은 제안을 통해 고객에게 매력을 느끼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제가 바라봐 온 큐레이션 영업은 그리 녹록치가 않았습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한국 온라인시장에 큐레이션 개념을 가져온 소셜커머스는 지금은 만물을 가져다 파는 오픈마켓이 되어있으며, 2010년대 초반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소셜커머스들은 소멸, 해외 사정 또한 만만치 않아서 팬시닷컴이나 핀터레스트와 같은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제구실을 하는 곳이 거의 전무합니다. 심지어 팬시닷컴과 핀터레스트는 판매수익보다 광고수익 중심으로 마케팅 플랫폼에 가까우니 역시 쉽지가 않네요. 이런 점들을 고려해보면,


온라인에서 고관여를 한다는건, 고객의 안목에 대한 대한 도전과도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관여를 해야 하는 곳은 프론트가 아니라 백단, 즉 검색결과를 풍성하게 하면서도 지저분하지 않게 할 수 있어야 하며(이건 정말 어렵습니다. 특히 오픈마켓에게는. 근자에는 입점업체 시스템에 컨텐츠 가이드를 아예 정해버리기도 하지만 잘 준수가 안되는 듯 합니다.), 분류페이지는 중복과 누락이 없고 대-중-소분류 레벨이 일관적이어야 하고, 공자님 말씀이 넘쳐날 정도로 착해빠져야만 합니다. 절대적으로 고객의 눈치를 봐야 하고, 결코 내 판단으로 매장과 상품을 세팅해놓고 만족해버리는 자위를 행해서는 안되는 겁니다.


끊임 없는 준비와 수정의 반복을 통해 가깝게 다가가는 수밖에는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매일, 밤낮으로, 수시로.


따라서 지속적으로 막혀있는 인터페이스를 뚫어주고, 사용자의 동선에 따라 지속적으로 최적화를 시켜줘야만 하는 겁니다. 여기에 데이터와 실적을 참고할 순 있겠지만, 데이터와 실적은 결과물일 뿐, 미래는 역시 그것만으로 결정하기가 어렵죠.


이커머스가 피곤하고 어려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매일매일을 피곤한 루틴 속에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고, 틀린게 있으면 즉시 수정해야만 더이상의 클레임을 방지할 수 있는데 문제는 틀린게 있을 때 짧은 시간 돌아오는 클레임이 어마무시 하다는 점,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과거지만 대응은 미래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내가 잠을 자도 누군가는 쇼핑을 한다는 점까지.


결국 이커머스는, 내 사업을 잘 하고 싶으면, 내가 생각하는 대로 하면 안되는 사업인 것으로 귀결됩니다.


고객이 생각하는 대로 해야 하며, 그 고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계산이든, 어림짐작이든 끊임 없는 눈치보기를 통해 접근해야 하고,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벤치마킹을 하기보다는 고객을 더 들여다 봐야 하는(누군다는 이걸 굉장히 멋지게 표현했더군요. 남들이 경쟁할 때 나는 고객을 바라본다고. 현실은 그러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겠지만요.),

하지만 그럼에도 고객에게 함부로 큐레이션을 함으로써 거만한 인상을 심어줘서는 안되는.

그 가운데, 여전히 상품과 컨텐츠는 지속적으로 rich하게 만들어줘야만 하는.


여러분이 자영업을 하신다면, 이렇게 할 자신이 있을까요? 저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커머스가 누군가에 의해 지속 존재한다면, 사업자는 힘들지만 고객들에게는 꼭 필요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검색"과 "즉시성", 그리고 "가격경쟁력"일 것입니다. 써놓고 보니 결국 가격비교 검색사이트같은 냄새가 나지만, 그런 단순한 것을 얘기한 건 아니구요, 그럼에도 플랫폼이 결국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낮으며 수익을 가져갈 수 있는 비즈니스"인 이유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으실 거라는 의미입니다.


일본의 그 유명한 서점 TSUTAYA(츠타야)를 만든 CCC의 사장인 마쓰다 무네아키가 이런 글을 남겼었죠.

 -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 고객을 얻고 싶다면, 기업은 고객이 생각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것을 창조하고 제공해야 한다.

 - 인터넷의 발달은 고객에게 스스로 정보를 편집하고 발신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 매장은 우리가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고객이 물건을 사는 곳이다.


소비자는 똑똑해졌고, 이커머스는 끊임 없이 고객을 예측하고 탐구해야 하며, 그에 부합하는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상품과 매장을 바꿔가야만 합니다. 정말 어려운 이야기 이지만, 그럼에도 커머스는 사람이 먼저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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