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는 드라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드라마보다는 영화를 좋아한다. 아무래도 영화는 드라마보다 상영 시간이 더 적고,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드라마와는 다르게, 전개가 지루하거나, 미적대지 않고, 바로바로 이어진다. 흐름에 멈춤이 없다. 하지만 드라마는 다르다. 갈등과 갈등 사이에 텀이 너무 길고, 별수가 너무 많다. 지칠 때도 있다. 멈춤이 많아, 종종 한눈을 팔게 된다. 그래서 드라마를 끝까지 본 게 잘 없는 것 같다.
유일하게 정주행을 세 번 이상 한 드라마가 있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 드라마가 참 독특하다. 주인공의 생각이 일반적이지 않지만, 배우들의 대사를 들어보면 정말 지독하게 현실적이다. 사랑을 하기 힘든 시대에 태어나, 사랑을 지키는 일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말이 마음에 닿는. 내가 생각한 내 인생 최고의 드라마.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이와 이별을 생각할 때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결혼이라는 게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서로를 너무 진심으로 사랑해서, 그게 너무 진심이어서 문제인 일들이 많다. 주변의 이해관계로 서로가 참 많이 다친다. 5년의 연애를 할 때, 내가 그랬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모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누구보다 착하고, 예쁜 며느리가 되고 싶어서. 사랑받는 여자가, 와이프가 되고 싶어서.
5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하면서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만들어낸 상처로 똘똘 뭉쳐졌고, 그 하나를 위해 몇 번을 직장을 바꾸고, 예뻐 보이고 싶어서 명절마다 생신마다 챙기고.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나 싶은 것들을 했다. 그 사람은 헤어지고 근 1년을 괴롭히다 결혼만을 위한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 사랑이 먼저가 아닌 결혼이 먼저인.
어렸을 때엔, 결혼이 너무너무 하고 싶었다. 집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고,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아무렴 상관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이기만 한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나는 스물셋에 결혼을 꿈꿨고, 당연히 할 줄 알았는데. 그런 내가 결혼이라는 틀에 맞추려 나를 구겨 넣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너덜너덜해진 연애는 끝이 났다. 참 많이 애썼다. 예쁨 받고자 내 꿈을 포기하고 직장을 세 번이나 옮겼을 만큼 소중했다. 그와의 관계가. 그런 연애를 끝내고 나니 결혼에는 아무런 미련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결혼을 다시 하려고 했던 내가 놀라웠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같은 생각을 한다. 그때 내가 포기하지 않았다면,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그랬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요즘 정말 나쁜 생각인 거 아는데도 멈춰지지 않는 생각이 있다. 내가 그때 만약 그 사람과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한 사람을 그리워할 일도, 최악의 결혼을 할뻔한 일도. 반짝이던 별을 잃어버리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의 친한 친구들이 있다. 그중에 '호랑'이라는 이름의 캐릭터가 있다. 정말 소름 끼치게도 비슷한 점이 많았다.
'호랑'은 극 중에서 오랜 연애를 한 캐릭터다. 학교도 무난히 졸업하고, 서비스와 관련한 직업을 가지고, 오랜 연애를 한, 어려서 부터 쭉 꿈이 결혼이었다. 결혼을 해서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도 가지고 그렇게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 캐릭터가 꼭 나 같았다. 공부를 그렇게 잘하지 못했고, 그냥저냥 학교를 다녔다. 졸업하고 나선 전공이 식품 쪽이라 그것과 관련된 서비스업을 했다. 잘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못나지는 않게.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고, 그 사람과 오랜 연애를 했다.
연애 시작부터 결혼을 꿈꿨고, 결혼을 한다면 이 사람이랑 하게 되겠지란 막연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결혼을 꿈꾸면서 서로의 생각의 차이로 자주 다퉜다. 그 사람도 나 없으면 안 된다고 했고, 나도 그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아직 결혼이 뭔지 모르겠다고 했고, 조금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다른 게 있다면, 그 사람이 결혼을 하자고 이야기를 할 때쯤 나의 마음은 닫혔다. 서로 속도가 맞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 나는 에너지를 다했다. 그 사람이 결혼을 이야기할 때, 나는 헤어짐을 이야기했다. 극 중 호랑은 꼭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그 드라마를 집중해서 보지 않았을까. 그 '호랑'이 한 말 중 가장 와 닿는 말이 있었다. '나는 이제 빨간 코트가 싫어, 남들처럼 까만 코트가 입고 싶어. 눈에 띄지 않게, 평범하게. 남들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는 말. 그게 얼마나 아픈 말인지.
정말 나쁘지만, 이 사람과 극 중의 '호랑'처럼 결혼이라는 걸 결국 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해봤다. 지금의 나는 그 사람과 헤어지고 만난 4살이 어렸던, 유난히 반짝였던 마음을 가진 그 사람을 기다린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최악의 결혼을 피해 파혼이라는 엔딩을 맞이하고, 별을 잃었다. 건강을 잃었다. 많이 약해졌고, 많이 아팠다. 괜찮아지는 중이라고 억지로 삼켜내는 중이다. 다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데 집중하느라 다른 건 아무것도 들여다보지 못한다. 만약 그 사람과 그렇게 결혼을 했더라면 나는 이후에 두 사람을 만날 일도 없었겠지. 어떻게 보면 최악의 결혼을 경험할 일이 없었을 거다. 그것만 보면 나는 참 다행이었겠지만, 그랬으면 지금 이렇게 여전히 생각나는 그 사람도 만나지 못했겠지. 마음이 참, 이 순간에도 이기적이다.
그냥 그 드라마가 다시 보고 싶어 졌다. 생각이 많았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질 만큼 생각이 많아졌다. 하던 것들을 모두 멈추고, 드라마를 다시 봤다. 드라마를 보고, 친구도 만났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는 내내 너무 현실적이어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캐릭터라고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것 같았다. 오늘 그 드라마의 엔딩을 다시 보고, 참 부럽단 생각을 했다. 그래도 결국 사랑을 최우선으로 하는 선택을 했으니까, 드라마 속의 캐릭터들은. 그렇다고 자신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결혼이라는 건 뭘까, 대체. 도대체 결혼이 뭐길래 이렇게나 지독한 걸까. 사랑이었다가, 사랑이 아니었다. 반짝이는 줄 알았다가도, 빛을 잃는다. 사랑을 해서 하는 결혼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랑만으로는 할 수 없는 게 결혼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얽혀 끊어지기도 한다. 끊어졌던 게, 다시 이어지기도 한다. 현실에선 한번 끊어진 관계를 다시 잇는 일이란, 어쩌면 가능하지 않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 나오는 주인공은 관계를 바로잡고, 사랑이 최우선이 되기 위해. 관계를 정리하고 이혼을 선택한다. 그리고 다시 사랑을 찾아, 그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결혼을 한다. 현실에선 불가능할 그런 엔딩을 그린다. 그래서 드라마인가 싶다가도, 내내 보여준 이야기가 너무 현실적이라 다시 되새김질하게 된다.
참 어렵다. 사람도, 사랑도.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 그걸 알기까지가, 너무 아프다.
드라마를 다시 보고 나니 생각이 많아졌다. 내내 푹푹 질렸던 마음은 설렘으로 끝이 났는데, 현실의 나는 여전히 아프기만 하다는 게, 아팠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잠을 자려다 이렇게 또 헛소리들을 늘어놓고 있다. 오늘은 왠지 밤이 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