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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Jan 12. 2021

꿈에서 만난 그때의 너, 그때의 우리

다시 만나서 반가웠던 찰나의 꿈, 반전의 반전

요 며칠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여자라면 누구나 겪는 일인데 뭐 그렇게 거창하게도 앓는지. 한참의 시간을 지나 이만큼 버텨왔음에도 버티는 게 참으로 쉽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매달 그 시간만 찾아오면 지나치게 컨디션이 안 좋아지는 것 같다. 아마도 지은 죄가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고도 검사 결과가 무서워 병원에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심해지는 통증에 억지로라도 밥을 먹으라는 엄마의 걱정에 꾸역꾸역 밥알을 삼키다 눈물이 쏟아졌다. 가만히 두니 점점 더 많은 눈물이 서럽다는 듯 쏟아졌고, 엄마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그렇게 울기까지 할 정도로 아픈 거냐고. 병원엘 가봐야잖냐고. 짧게 '아파'를 뱉고 꾸역꾸역 김과 밥을 억지로 삼켰다. 이상하게도 그날에 밥을 먹지 않으면, 부서진 집들의 부분들이 다 빠져나오지 못하고 통증만 더 심해지기에 넘어가지 않는 밥을 꾸역꾸역 다 삼켰다. 


기운이 다 빠지고 두통은 머리를 찢는 듯했다. 그래도 밥을 먹어서 그랬는지 어지럼증은 덜했다. 세상만사가 귀찮아졌다. 누군가 그런 말을 하더라. 이 통증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에게 자신의 허리사이즈보다 10인치 이상을 더 허리띠로 졸라매는 정도의 통증이라고. 그건 배만 해당하는 일인 것 같다. 몸살기와 더불어 두통과 오한 현기증에 식은땀까지 나면서 무슨 온 세상 풍파를 준비도 없이 매달 생으로 겪어내는 일. 그런 일이다. 누구는 그러더라 행군을 연달아 두 번 갔다 올 정도의 체력 싸움이라고. 물론 나는 군대를 다녀와보지 않았으므로 이 이야기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아마도 군대를 다녀온 여자들이라면 이 말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론이 길어졌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밤새 뒤척이다 잠이 겨우 들었다. 이틀 동안 정말 노로바이러스에 걸려서 저승 다녀올 뻔한 일이 있었던 그때와 맞먹는 통증이었다. 이번엔 여태 겪었던 때와 차원이 달랐고, 덕분에 잠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아파서 아무것도 못하고 눈만 감고 있었음에도 잠들지 못했다. 그렇게 겨우 잠들었는데 하루는 악몽에 시달렸다. 괴물에 쫓기는 꿈을 꾸었다. 정말 잠든 내내 괴물에 시달렸다. 괴물은 사람의 형상과 비슷했지만, 왜 쫓기는지 이유도 모른 채 그냥 쫓겨다녔다. 잠이 깨니 온몸이 차갑게 식어 있었고, 꽤 오랜 시간 자서 낮 12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전기장판을 뜨겁게 하고 잠들었음에도 온몸이 식어있어서 놀라서 깬 것 같다. 그렇게 통증에 시달리다 겨우 밥을 먹었는데, 배와 머리가 너무 아파 나도 모르는 새 눈물이 줄줄 흘렀고 방으로 돌아와 내내 누워서 쉬었다. 그렇게 또 밤이 찾아왔다. 내내 뒤척이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든 듯하다.


전날 악몽에 시달렸기에, 이번에는 악몽만 아니길 바랐다. 그런데 꿈에 그 사람이 나타났다. 그것도 그냥 나타난 것도 아니고, 그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주던, 세상 다정하던 그 따뜻한 모습 그대로. 얼마나 바랐던 순간인지 모른다. 좋지 않은 모습으로 헤어졌지만, 내내 생각나던 사람. 소식이 여전히 궁금 한 사람. 사랑받는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느끼게 해 준 사람. 언제 어느 순간에도 사랑받고 있음을 늘 알게 해 준 사람. 어쩌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사랑받았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게 한 사람. 그 사람이 나타났다. 그때의 모습 그대로. 그때의 우리로.


꿈에 나타난 그 사람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였다. 현실에선 아마도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 그 사람은 내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여전히 환한 미소로 나를 보고 있었고, 우리는 손을 잡고 늘 가던 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데이트를 했다. 그러던 중에 모르는 얼굴의 남자가 나타났고, 나는 그 사람과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갑자기 그 사람과 손을 잡고 그 시간에서 뛰쳐나왔다. 꿈에서 본 그 남자는 키는 대충 170 언저리. 나만했다. 그리고 약간 통통하고 얼굴은 뽀얗게 살결이 희고 천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밝은 갈색에 뽀글 머리를 하고 굉장한 부자였다. 엄청 비싼 외제차를 타고 있었다. 꿈이 들쑥날쑥하고 난생처음 보는 얼굴을 한 그 사람을 따라갔고, 그 사람은 내게 고백을 하고, 프러포즈를 했다. 꿈이 참 이상했다.


그 사람이 꿈에 나오길 간절히 바랐었는데, 이제 해피엔딩인가 싶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얼굴도 또렷이 기억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남자에게 간 내가 어이가 없었다. 그 장난꾸러기 같은 남자는 내내 내게 장난을 쳤지만, 고백을 하고, 프러포즈를 하는 순간만큼은 매우 진지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놓고 그 사람에게 가는 내가 너무 웃겼지만, 뭐 꿈에서는 매우 진지했다. 내가 나의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마치 드라마 같았다. 어쨌든 그 복실 머리 남자가 나를 불러냈고, 나는 한참 주차장을 헤매다가 그 남자를 찾았다. 그 남자의 손을 잡고 그 사람의 차를 타려던 순간 그 사람이 나를 붙잡았다. 나는 미안하다고 하고 다른 남자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미안하다고 하고 그 사람에게 뛰어갔다. 그 사람은 슬픈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고, 나는 웃는 얼굴로 그 사람을 안았다. 그 사람이 다시 웃었고, 꿈에서 깼다.


이렇게 설명하니 드라마가 심플해졌는데, 주차장에서 헤매고 사람들에게 치이고 마치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이 안 되는 장면의 연속이었다. 그때의 시간으로 돌아가 그 사람에게 안기던 그 품도 느껴질 정도로. 드라마는 굉장히 길었다. 반전이 계속되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중간에 도망치는 일도 있고, 모르는 남자의 사랑을 받으며 그 사람에게 가는 순간이 이상하게 훼방꾼이 많았다. 다시 그 사람에게 돌아갈 때까지는 정말 디렉트로 아무 훼방꾼 없이 바로바로 이어졌으니.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너무 격했나 보다 싶었다.


꿈이지만 너무 생생했다. 깨고 다시 잠들고를 두어 번 반복했지만 신기하게도 꿈이 이어졌고, 꿈이라는 것을 인지 하면서 꿈을 꾸었다. 그러면서도 꿈이 아니길 바랐던 것 같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그때의 모습을 한 그 사람을 보니 깨고 싶지 않았다. 완전히 꿈에서 깨어나서 해몽을 하기 위해 검색을 했다. 헤어진 사람에 대한 미련이 투영되는 것이라는 게 전반적인 해석이었고, 몰랐던 금전적인 운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해석도 있었다. 로또를 사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컨디션이 꿈을 꾸고 나서 어깨부터 어리 중간까지 담이 올 정도로 좋지 않아 나가진 못했다. 뭐, 눈이 쏟아진 것도 한몫했고.


이상한 꿈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그 사람과 그때의 우리를 다시 볼 수 있어서. 아주 잠깐이었지만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비록 꿈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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