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기대하는 일은 나를 어쩌면 나를 갉아먹는 일.
사람은 고쳐쓰는게 아니다.
사람은 고쳐쓰는게 아니라는 말에 슬프게도 동감한다. 사람을 고치려 드는 순간부터 관계의 기둥이 흔들린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터인가부터 그말을 완전히 동감하게 되면서 부터 부러 정을 주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사람이 나고 태어나 자라는 동안의 시간이 그 사람을 만든다. 사람이 죽을때까지 완전체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 사람의 모양은 만들 수 있다. 삶은 그 사람의 모양이 만들어지는 시간인거다. 물론 어쩌면이라는 가정이 들어가겠지만, 이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사람이 만들어지는 시간중에 그 어디쯤에 그 사람과 나의 관계도 만들어진다. 물론 그 사람의 다름을 진정하지 못하고 그 사람을 나에게 맞춰 바꾸려고 하는 순간부터 다시 우리의 관계는 흔들리게 될 것이다. 안그런 관계도 있지 않느냐고? 아니. 내가 겪은 바로는 없다. 다만그 흔들림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관계의 변화가 달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함께 걸어가기 시작한 관계위에 서로 맞지 않는 부분들에 튕겨져 나간 나사들이, 그 실수들이 고치려고 하면 할수록 어긋나거나 닳아버린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어느 한쪽이 말하는 쪽이라면, 어느 한쪽은 듣는 쪽이 되어야 하겠지. 둘다 말하려고만 하면 그 관계는 유지 되지 않을 것이다. 또, 어느 한쪽이 주로 말한다고 해서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역시 그 균형도 깨어질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람의 관계는 줄타기를 하는 것 같겠다. 그렇게 어렵사리 유지하는 관계가 균형을 맞춰 유지되기란 쉽지않다. 한쪽의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말하는 쪽이 있다면, 들어줄줄 알아야 하니까. 그렇게 힘들게 유지를 하는 관계라고 할지라고, 어긋나는 부분을 고치기는 쉽지 않다.
사람을 고쳐쓴다. 내 나이로 보자면, 올해 서른 둘이다. 32년의 시간동안 만들어진 모양의 내가 비슷한 또래를 만난다고 하면 역시 근 30년이란 시간을 가지고 있겠지. 그렇다는건 각자의 시간을 30년을 보내면서 만들어진 이 인격체를 서로에게 맞추려고 하는건데. 삐걱 거리다 못해 낡은 것들은 갈려 떨어져 나가겠지. 처음부터 맞지 않는 관계라면, 아마도 끝까지 맞아지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다투는 일도 잦아지겠지.
서로의 한 면을 채우려고 하다보니 말도 안되는 일들이 일어날 것이고, 그에 따라 실수도 하게 될것이다. 하지만 같은 실수는 반복 할 수 밖에 없고, 그 실수를 인정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이 생각보다도 많다.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역시 변화도 하기 어렵겠지. 그리고 실수가 반복된다는건 고칠 수 없다는 말도 된다. 곧 습관이 될게 뻔하니까. 아닌 경우도 많지 않냐고 한다면, 그래 그런 경우도 있지. 사람이 살면서 어떤 부분에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고, 그로인해 다른 사람이 되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건 흔하지 않다. 그러므로 애써 기대하지 않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 역시도 쉽지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