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엄마에게 미안했다.
나이가 들면 서운함이 많아진다는 엄마의 말. 왠지 그말이 더 서운하게 들렸다.
오랜만에 엄마가 내게 구미를 가자고 했다. 할머니 생신도 지났고, 명절도 다가오고, 할머니를 뵌지 좀 오래 된듯 하니 가자고. 나는 얼른 좋다고 했다.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것도 좋고, 엄마랑 함께 가는 것도 좋다. 엄마는 내가 차에서 자는 걸 싫어해서 엄마랑 가는 여행도 싫어하는 줄 알고 있지만, 나는 그저 씻을 수 없는 것만 좋지 않을뿐, 엄마랑 하는 여행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게다가 요즘같이 집에만 박혀있는 때에 나가자는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수요일이나 목요일쯤 출발하자는 말에 알겠다고 했다.
화요일 아침 일찍. 아빠가 출근을 하자마자 엄마가 갑자기 나를 깨운다. 아침부터 엄마가 나를 깨울리가 없는데 하고, 눈도 못 뜬채로 엄마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수요일에 눈온대. 오늘 가자."
"으응?"
"왜. 안되나. 싫나."
"으으응?"
"수요일에 갈라 그랬는데,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눈온다고 그러니까 오늘 가자. 준비해 8시 다 됐어. 피곤하면 차에서 니는 자면 되잖아. 얼렁 일어나아"
"어엉? 지금? 어엉 -"
그렇게 갑자기 구미를 가기 위해 준비를 했고, 대충 아침을 챙겨먹고선 10시쯔음 출발했다. 오랜만의 드라이브에 잔뜩 신이난채로. 라디오 컬투쇼 클립을 틀어놓고, 바깥 구경도 하고.
사실 12월쯤인지 11월쯤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코로나가 더 심해지기 전에 나는 구미를 다녀왔다. 외갓집이 다 구미에 있기도 하고, 유독 또래인 외사촌과 친해서 혼자 자주 내려가곤 했다. 내려가도 할머니는 뵙지 않고 오는 날이 많았다. 어쩌다 할머니를 뵈면 어색할까봐 그런 것도 있고, 사실 그보다 노느라 바빴던 것도 있었던 것 같다. 정말 말그대로 여행을 간 것 처럼 놀러 갔다오는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그러다 마지막에 구미에 내려갔던 날, 상처가 생긴 얼굴로 아픈몸으로 보고싶었다고 말씀하시는 할머니를 뵌 후로 내내 마음에 걸렸고, 돌아와 할머니께 가자고 엄마를 졸랐다. 마지막에 본 그날, 할머니는 내앞에서 눈물을 보이셨다. 어린시절의 엄마에게 미안했던 마음을 이야기 하면서.
여기서 말하는 할머니는 내 하나뿐인 외할머니다. 자라는 내내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외할아버지에 관한 기억은 없고, 작은할아버지 (아빠의 작은아버지) 가 내 할아버지셨고, 외할머니가 내 하나뿐인 할머니셨다. 엄마가 아주 어렸을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너무너무 가난했던 어린시절, 할아버지 없이 5남매를 키우기 위해 할머니는 어떤일이던 하시던 가장이셨고, 여장부셨다. 엄하시기도 했고, 늘 바빴다. 먹여살려야 한다는 그 마음의 짐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지금의 나로서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다. 종종 할머니의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 보따리에 마음이 무거워졌으니. 그런 시기에 비가 오면 우산없는 딸래미 비맞고 집에와도, 우산한번 가져다 줄 수 없었다며 눈물을 보이시는 것을 보고 올라오자마자 엄마한테 할머니를 같이 뵈러가자고 졸랐다. 하지만 코로나도 있고, 여러가지 사정으로 내내 미루기만 하다가 드디어 뵈러가는 길이었다. 그래서 더 신이났던 것 같다.
구미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미리 간다고 말씀을 드렸어야 하지만, 너무 오래 기다리시게 하는 것 같아 구미에 도착해서야 전화를 드렸다.
- 어!
- 할무니 !!!!!!!!!!!!!!!!!! 서연이 !!!!!!!!!!!!
- 어!???!!! 그래 !!!! 서여이가!!!!???!!!
- 네에 할무니 !!!!!!!!!!!
- 그래!!!!!!!!! 어데고!!?!!?!! 할무니 보러 함 안오나!??
- 할무니!!!!!
- 어!!!!!!! 그래!!!!!!!
- 할무니 내 쫌이따 가께요 !
- 진짜??!!??!!! 진짜가???? 진짜 내 보러오나 !!!!!!! 어덴데?!!!! 진짜로 오나???!!! 진짜! 진짜가?!?!?
- 할무니 내 지금 인동!!! 인자 구미 도착했다!! 할무니 내 곰방 가께요! 할무니 오덴데?
- 지금 온다꼬???!!?? 지금!!????!!! 내 집이지!!!!!
- 할무니 집으로 가께요!!!
- 혼자왔나!!!!! 니혼자!!!???!!!!?
- 아니 ! 엄마랑 왔지! 요 옆에 엄마 운전하지!
- 아라따!!! 얼렁 온나!!!!!
- 응, 할무니 곰방 가께요!!
할무니는 내가 할무니 뵈러 왔다는걸 믿을 수 없으셨나 보다. 깜짝 놀라서 진짜로 오냐고 몇번이나 되물으셨다.그리곤 구미 지금 막 도착해서 가고 있다는 말에 누가 들어도 찐으로 행복한 목소리로 얼른 오라고 하셨다. 괜히 신나면서도 괜히 죄송했다. 구미에 살땐 시도때도 없이 괜히 할머니 혼자 계신집에 사촌들이랑 할머니가 해주신 국수가 먹고싶다는 핑계로 가서 자고오곤 했다. 운동을 핑계로도 괜히 할머니 계신 동네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굳이 할머니께 배고프다고 밥 얻어먹고 오곤했다. 할머니가 원래는 큰외삼촌이랑 같이 사시다가 혼자 사시게 되셨는데, 그때부터 이상하게도 할머니 집에 그이전에도 자주 갔지만, 더 자주 가곤 했다. 할머니가 해주는 손칼국수는 어떤 칼국수랑도 비교할 수 없지만 지금은 차마 할머니 힘드실까 해달라고도 못하는 국수. 그때는 할머니 힘드시다는 건 생각도 않고 능글맞게 할머니 집에 가서 국수를 해달라고 졸랐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그럴줄 알았다는 듯 식사를 이미 하시고도 괜히 국수를 말아주셨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부러 두그릇씩 먹었다. 할머니의 행복한 얼굴을 보려고. 할머니는 그때마다 행복한 얼굴로 또 먹고 싶으면 또해준다고 늘 약속하셨다. 그 국수가 해주고 싶으신지 요즘 너무 슬픈 목소리로 국수도 할미가 못 말아준다고 하신다. 그게 싫어서 할머니 나 다이어트해. 살쪄. 하곤 한다.
할머니 댁에 내리기도 전에 이미 저만치 멀리서 할머니가 보인다. 할머니께 전화를 드리고도 한시간이나 더 걸렸을텐데, 얼마나 추운데서 오래 기다리셨는지 새빨간코를 한 할머니는 세상 행복한 얼굴로 내이름을 부르셨다. 나는 언제나처럼 할머니를 꼭 안았다. '할무니이이' 하고. 키도 덩치도 큰 손녀한테 쪼꼬만한 할머니는 폭 안기신다. (사실 우리 할머니지만 너무 귀여움.) 할머니 댁에 들어가니 벌써부터 먹을거 가지고 있는건 죄다 꺼내신다. 내려가는 내내 군것질 하느라 배부른 엄마랑 나는 떡 한두개 집어먹고는 먹는것을 멈췄는데, 할머니는 마음에 안드셨는지 밥을 해주신다고 분주하게 움직이셨고, 밥을 먹으면 저녁을 못 먹을것 같은 우리는 할머니를 말리느라 바빴다.
"내가 밥 해주께!!!!! 너거 점심도 안먹었잖아!! 배고프제 !!! 밥을 무야지 밥을!!"
" 할무니 서여니 살쪄. 안먹어~"
"아니 밥은 무야지, 내 금방 밥 해주께 반찬 마네여!!!!"
" 아니 엄마, 우리 배 안고파~ 이따 저녁 먹어야지~"
" 그래 할무니, 우리 지금 더먹으면 저녁 못먹어~"
" 아니 그래도 그건 저녁이고, 야야 밥을 무야지"
" 할무니 내가 얼마나 힘들게 뺐는데."
" 아니~ 잘했서~ 알는데~ 내가 그래도 여 왔는데 우째 밥을 안믹이노"
" 할무니~ 이따 저녁 먹으면 되여~ "
" 그래 엄마, 금방 저녁 무러 가야되는데, 앉아요, 우리 안머여~"
" 그라마 이거 귤이라도 무라 여 이것도 있다."
밥을 안먹고 내려온 우리가 내내 걱정되시고, 오랜만에 본 딸과 손녀 밥한끼 해주고 싶으셔서 괜히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감사하기도, 죄송하기도 했다. 자주 왔으면, 이렇게까지 밥 못먹인걸로 미안해하지 않으셨을텐데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슬펐다. 밥을 해주겠다는 할머니를 말리고 우리는 오는길에 들러 사온 염통꼬지와 할머니가 주신 떡을 조금 먹었다. 할머니는 이야기 보따리를 내내 늘어놓으셨고, 나는 내내 맞장구 치고 할머니 이야기를 신나게 들어드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할머니가 조금 슬픈 얼굴이 되었고, 그 다음에 하신 이야기에 나는 울음을 겨우 삼켰다.
할머니는 원래 큰외삼춘이랑 같이 사시다가, 둘째 삼춘이랑 같이 사시게 되었다. 그러다가 몇년이 지나 둘째 삼춘이 늦은 장가를 가시고, 애기 둘이 세상에 나오고 어느정도 자랄때쯤 혼자 나와 사시게 되셨다. 할머니가 유독 예뻐하는 손주들 중에 내 위로 언니 하나가 있고(사정이 있어 할머니가 키우심) 무뚝뚝한 가족들중 유일하게 할머니께 능글맞은 애교를 부리는 내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둘째 삼춘의 첫째 아들이 있다. 물론 모든 손주들을 예뻐하신다. 모두에게 사랑으로 대하신다. 하지만, 애들이 무뚝뚝해.............................. 지금 언급한 세명만 능글맞게 할머니께 엉긴다. 그래서 내 생각엔 이 세명을 가장 예뻐하지 않나..하는 생각이다.
어쨌든, 서론이 너무 긴데 그 손주가 올해 스물 한살로 곧 군대를 간다. 갓난애기때부터 할머니랑 살앗고, 유독 애가 예의바르고, 우리중 그 누구보다 애교도 많았다. 대학을 가고 내내 공부하느라 바쁘고, 그이전엔 대학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그런 애가 이제 군대에 간다고 바쁘다. 할머니 댁에서 걸어서 20분쯤 거리에 있으면서도 코로나를 핑계로 보지 못했는지 할머니는 손주가 보고싶어 손주가 좋아하는 것과 반찬 조금을 챙겨 작은 삼춘댁을 가셨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집에 있을 외숙모와 손자, 손녀가 답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할머니는 외숙모한테 전화를 했는데, 끝내 코로나를 핑계로 집에 있으면서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고 했다. 눈물이 핑돌았다. 이 추운 겨울에 걸어서 큰외삼춘댁에서 부터 작은 외삼춘댁 까지 한시간은 족히 걸리는데 그 거리를 손자 먹이겠다고 찬거리를 잔뜩 들고 갔는데, 거길 가서 문전 박대를 당하셨다는게 ..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 할머니가 시어머니질을 하진 않았을까 라고 이야기를 한다면, 어. 절대.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다. 며느리들 눈치 보기 싫으셔서, 며느리들 살림에 뭐라하기 싫으셔서 본인의 집을 주시고 굳이 혼자 작은 원룸 구해서 나가신거다. 그리고 같이 살땐 할머니는 그 나이에도 일을 하셨다. 일을 안하는게 답답하셔서 늘 일하러 가셨다. 일이 있는 날에만 나가는 일을 하시면서 살림도 하셨다. 내 할머니여서가 아니라, 진짜 꼰대와는 다른 분이셨다. 게다가 둘째 외숙모가 필리핀 분이신데, 먼 나라에서 와서 외롭고 힘드실까 내내 살뜰히 챙기셨다. 필리핀에 계신 외숙모의 부모님까지 신경쓰시고 챙기시면서 나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셨다. 그런 할머니를 추운 겨울날 문전박대..
할머니는 집에 있으면서 전화로 그냥 가시라는 말만 듣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고 이야기 하시며 눈물을 보이셨다. 빨간 눈동자에 가득찬 눈물이 너무 선명해서 잊혀지지가 않았다. 떨리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괜히 나를 심술나게 했다. 멀리있어 자주 뵙지 못해 서운하실 마음도 달래드리지 못했는데, 할머니의 눈물이 이성을 잃게 하기에 충분했다. 화가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후로 괜히 실없는 소릴해서 이야기의 주제를 바꾸고, 할머니가 웃을 수 있게 나는 더 능글맞게 굴었다. 할머니가 웃을 수 있었으면 해서, 괜히 더 그랬던 것 같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할머니랑 엄마랑 셋이 금오산에 가서 저녁으로 오리 백숙을 먹고, 댁에 모셔다 드렸다. 다음날 꼭 밥 먹으러 오라는 말에 제대로 답하지 않고, 얼버무렸다. 그리고 엄마랑 나는 차박을 하기 위해 다시 금오산으로 갔다. (집의 차가 개조 캠핑카여서, 늘 차박을 한다.) 엄마랑 차안에서 영화를 한 편 보고, 대충 씻고 누웠는데, 자꾸 할머니의 그 빨간 눈에 가득찬 눈물이 떠올라서 잠은 안오고 화만 났다. 이걸 그냥 넘기면 안될 것 같았다. 나는 곧바로 사촌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사실 할머니의 눈물을 본 그때, 할머니랑 얘기하면서도 할머니랑 사촌동생을 영상통화로라도 만나게 해주고 싶어서 전화를 계속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마. 니 아직도 자나."
"어 !! 누나!! 영통했던데?"
"어. 그래!! 마!!! 고마자고 인나라. 언제까지 잘긴데."
" 인제 일났다. 내 내일 생일이어서 생일날 내내 깨 있을라고 일부러 계속 잤다."
" 도른?ㅋㅋㅋㅋㅋㅋㅋ "
" 맞나? 춘환아 생일축하한다!!!!!!"
" 어!!!! 고모!! 안녕하세요!"
" 어!!!! 생일축하해, 춘환!!!"
" 감사합니다!!!!!!"
" 아니, 생일축하해. 야 니 근데 군대 날짜 나왔디가"
" 아니 안나왔다. 5월달. 그쯤 가여."
" 맞나, 니 낼 뭐하는데."
" 내일? 그냥 집에 있지."
" 맞나, 니 내일 오후에 할머니한테 좀 갔다 온나."
" 에??? 갑자기??? 내일???"
" 그램마!!!! 할무니 니 보고싶어서 우시더라. 할머니 좀 보고 온나. 가서. 아니, 니는 가까운데. 니는. 하...... 할머니가 니 얼마나 보고싶으면 오랜만에 간 내앞에서 우는데. 장난치나. 갔다온나."
" 할머니가?????????? 우시더라고???"
" 그래. 미친. 갔다온나."
"허얼........... 알았어. 내일 갔다오지 뭐."
" 야....... 니 기왕이면 가서 밥좀 읃어먹고와. 그냥 할무닌테 가서 할무니 배고파요, 할무니 밥 먹고 싶어서 왔어요, 카고 밥좀 읃어먹고 와줘. 부탁이야."
" ................ 아. 내 ...아.. 밥.......음.......내일."
" 어. 니 잘됐네, 할무니한테 내 오늘 생일인데, 할무니 밥 먹고 싶어서 왔어요, 카고 밥 좀 읃어 먹고와. 내 진짜 부탁이야.."
" 알았어.. 가기전에 전화한번 드리고, 시간 맞춰서 가서 밥 먹고 오지뭐."
"하.... 고맙디. 그래. 진짜 부탁한다."
"알았어~"
" 야 12시다!!!!!!!! 생일축하해!!!!!!!!!!!!!!!!!!!!!! 낼 갔다와."
" 춘환이 다시 한번 생일축하한다!!!!!! 새해복도 많이 받고!!!!"
" 네 !!! 고모 !! 감사합니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누나, 고마웡! 알았다. ㅋㅋㅋㅋ"
" 오야, 자제이. 안녕~"
동생 생일 축하도 해주고, 목표도 이뤘다. 사촌동생이 착하기도 하고, 사실 내가 좀 무서운 캐릭터라. 누나가 까라면 까야된다. 사촌동생은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할머니랑 아침을 먹기로 약속을 했다. 전화를 끊고 생일 선물겸, 군대가기전 선물겸, 할머니께 꼭 다녀오라는 압박겸 겸사겸사 치킨 기프티콘을 보내고, 이악물고 이런 누나 없다고 웃으며 꼭 다녀오라고 하고 잠이 들었다.
할머니는 엄마랑 내가 아침밥을 먹으러 오길 너무너무 바라셨지만, 엄마랑 나는..... 차박을 하고 늦잠을 잔뒤 산책을 하고 커피를 마실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동생놈을 보내놓고 매우 뿌듯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 했다. 산책을 하려고 했는데, 산속의 저수지라 너무 추워서 조금 뒤로 미루고, 근처 별다방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사고 돌아와 자리에 앉자마자 동생에게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뭐야. 할머니 한테 갔디가."
" 누나 ~ 할머니랑 아빠랑 왔어. 아침도 먹었어~"
" 할무니이이!!!!!!!!! 어어!!!!!!! 삼춘!!!!!! 안녕하쎄오오!!!!!!!!!!!!!!!!!"
" 그래~ 서여니 아침 무러 온나!!!!!!"
" 할무니 서여니 살쪄. "
" 오빠!!!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 삼춘!!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오!!"
" 어어 !! 그래 새해복 많이 받아라!!"
" 서여니 배 안고프나!!! 얼렁 온나 여 밥만 하면 된다!!!"
" 할무니!!!!!!!! 서여니 커피. 서여니는 미국식으로 커피마셔!!!"
" 미국식 뭔데 미쳤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가리해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마 시끄럽다. 닌 뭔데. 밥은 읃어 먹었나, 뭐뭇는데."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카레."
우리는 한참을 비대면 아침식사를 했다. 사촌동생도 보내놨고, 삼춘도 야간근무를 끝내자마자 할머니 댁으로 가서 할머니는 찐 행복한 얼굴이셨다. 하, 성공적이었다. 엄마랑 둘이 내가 한짓은 신의 한수였다고 좋아하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자주 오지도 않으면서 라는 말과 함께 굴국밥을 사주신다고 계속 꼬시셔서............ 엄마랑 나는 할머니댁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할머니껜 점심때 간다고 했고, 한시간 반정도의 시간이 남아서 우리는 산책겸 운동을 하기로 했고, 3분의 2지점 왔을때쯤 할머니의 소환 전화가 와서 급히 할머니 댁으로 가 점심을 먹고, 할머니 필요하신 것들 사다드리고 병원 모시고 다녀온 다음에야 집으로 출발했다. 돌아오는 길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일찍 출발하려고 했는데, 할머니의 슬픈 눈이 맘에 걸려 최대한 늦게 출발했고, 장장 5시간이 걸려 저녁 7시 반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출발하기전에 할머니를 꼭 안아드렸는데, 할머니는 또 목소리가 떨리셨고,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셨다. 물론, 나도 할머니가 안보일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또.. 언제보노.... 너무 멀어가지고.. 또 언제오노.."
" 할무니 조만간 오께. 엄마 꼬셔서 내 조만간 또 오께."
" 조만간... 안올거자나... 못 오자나.. 언제 여 또 오겠노.."
" 아니야, 할무니 조만간 와. 조만간 내 오께. 진짜로"
"진짜로..? 진짜로........?"
" 엄마, 또오께. 들어가세요, 춥다."
" 할무니, 추워! 서여니 가께! 할무니 또 곰방 오께!! 앙용!!! 할무니 빠이빠이!!!!"
" 엄마 들어가세요!!!!!! 추워!!!!!!! 가요!"
" 조심히 가래이!!!!!!!! 운전 조심하고!!!! 빠빠!!!"
" 응!!!!! 할머니 빠빠이!!!!!!!!!!"
할머니랑 아쉬운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원래, 나이들면 다 서운해. 그냥 못보는것 만으로도 이미 이만큼 서운해. 다 속상해. " 라고 했다. 그 말이 어떤 말인지 이해가 되서 너무 죄송했다. 사실 저 이야기 외에도, 할머니는 중간중간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셨다. 요즘 자꾸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게 너무 속상했다. 그래서 할머니 말씀하시는 중간중간 화를했다. 그럴때마다 엄마는 내게 "너도 나한테 그렇게 말해." 라고했다. 총을 맞은 것 같았다. 할머니가 내게 죽음에 관해 이야기를 하시는게 이렇게도 속상하고 먹먹한데...이만큼 아픈데. 자식인 내가 엄마한테 죽음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했던게, 엄마는 얼마나 더 아팠을까. 엄마의 그 한마디에 정말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할머니를 만나러 오랜만에 다녀오는 동안, 유독 오늘은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근데 대부분이 속상하고, 미안하고, 서운하고, 아팠던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때문에 아팠을 엄마한테 너무 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