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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Nov 17. 2020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혹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

 나는 1990년 7월. 경상북도 구미시에 위치한 순천향 대학 병원에서 건강한 여자아이로 태어나 건강하게 자랐다.  엄마도 아빠도 직장생활을 하시며 모자란 것 없이 키워 주셨고, 그대로 자라 아주 평범한 대한민국의 30대가 되었다. 사실 여기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조금은 어두울 수 있는 성별이 여자인 사회인이 되었다. 


 초등학교 때 나는 50분씩 걸어서 학교를 다니곤 했다. 촌구석에 위치한 국민학교에 입학해 이듬해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고 한 번의 전학 이후 무난히 졸업했고, 인근 중학교로 배정되어 학교생활을 이어 나갔다. 여기서 잠시. 나는 페미니즘을 옳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 문제는 민감한 문제인 만큼 읽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밝게 자라지 못했다. 어렸을 때에는 가부장 적이고 보수적인 아빠의 보호 아래 자랐다고 하겠다. 뭐, 솔직히 여기까진 누구나 겪었을 법한 이야기겠다. 

나는 앞서 초등학교를 50분 거리를 걸어서 등하교를 했다고 말했다. 처음 다니던 학교는 논과 밭 사이에 산 밑에 위치한 옥계 국민학교 (현, 옥계 초등학교)를 다녔다. 거기에 다닐 때는 삼계탕이라고 아이들 사이에 불리는 웬 변태가 하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명백한 아동 성범죄에 해당하지만, 어른들은 잘 몰랐고 아이들은 어렸다. 어려서 동생이 다니는 태권도 체육관을 따라다니면서 나는 종종 체육관 차를 이용하기도 했고, 다니던 피아노 학원차를 이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이동을 하면서 내가 직접 본건 아니지만 친구들 피셜에 의하면, 노란 스쿨버스 안에서 여자아이의 옷을 벗기고 성기를 만지는 등의 추행을 했다고 한다. (구미는 사실 큰 공단이 위치해 있어서, 이미 대부분의 가정이 맞벌이였고, 어른들은 대부분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에 무심했으며, 아이들의 모든 일들을 알 수 있는 시간도 많지 않았다.) 


 어쨌든 그 사람을 필두로 하여 전학을 한 학교를 다닐 때는 새로 개발되는 동네의 특성에 의해 근처에 공사장이 많았는데, 공사장을 지나면 항상 봉고차를 타고 문을 열어놓고 아이들이 지나가면 ‘애기야, 아저씨 좀 도와줘’ 하고 부른 다음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하는 일이 간간히 있었고, 혹은 아이들에게 성기를 보이며 자위를 하는 아저씨들이 많았다. 나는 당시 검도를 배우고 있었고, 어린 동생과 함께 등하교를 했어야 해서 무섭다 보다 동생을 지켜줘야겠다 라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물론, 동생은 자기가 남자니까 누나를 지켜줘겠다고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아저씨들을 만나면 돌을 던지고 소리를 지르며 아파트 단지 안으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만큼 열심히 도망쳤다. 그렇게 무사히 중학교로 진학을 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또래보다 뒤늦게 2차 성징이 시작되면서 여자아이에서 진짜 여자가 되었고, 나는 유전적인 요인으로 생리통증이 심하고 양이 많아 학교 수업을 다 들을 수 없다는 선생님의 판단 아래 조퇴를 하곤 했는데, 대낮에 공사판을 지나 홀로 조퇴를 하는 키 작은 여자아이는 성범죄에 노출되기 쉬웠다. 당시 또래보다 키가 작았던 나는 혼자 조퇴를 하고 걸어가면 항상 모르는 아저씨들이 ‘야, 쟤 가슴 봐라. ’, ’ 어디 가냐, 아저씨랑 놀자. 재밌게 해 줄게.’ 하고 말을 걸거나, 대뜸 내 앞에서 바지 속에 손을 쑥 넣고 열심히 자위를 했다. 

당시 성범죄의 문제가 두드러지면서 보건 선생님의 성교육이 시작되던 시점이었고, 선생님의 말씀 중에 기억나는 단 한 가지가 있었다. 

 길에서 혹시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절대로 자극을 주면 안 된다. 소리를 지르거나 그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절대 움직여주면 안 된다.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어떤 표정의 변화도 주지 말고 기다렸다가 모르는 척 스윽 지나가야 한다. ’는 말. 

나는 선생님의 말씀대로 때때로 그런 상황에 놓이면, 상대방을 무표정한 얼굴로 한번 쳐다보고, 이어폰을 귀에서 빼고,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나왔다. 

중학생 때 일이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를 졸업한 선배와 교제를 하게 되었다. 당시 다니던 입시학원이 끝나면 밤 12시에서 새벽 2시가 되곤 했다. 남자 친구라는 명목으로 30분 거리를 걸어서 하원 하는 내가 걱정이 되니, 집에 바래다주겠다고 학원으로 찾아왔다.

 첫날에는 너무 고마웠다. 솔직히 나는 겁이 유난히 많았는데, 어두운 길을 누군가 함께 간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선배는 아파트 현관까지 바래다주고, 마치 동화 속 공주가 된 것처럼 이마에 뽀뽀를 살짝 해주고, 내가 집에 들어가는 걸 보고 나서야 다시 한 시간이 걸려 집으로 돌아갔다. 

여기까진 매우 예쁜 그림이라고 하겠다. 다음날도 선배는 나를 바래다주겠다고 학원 앞으로 데리러 왔고, 함께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갔다. (당시 살았던 아파트는 곳곳에 시시티브이가 있고 그 시시티브이를 집에서 불 수 있었고, 밤에도 경비아저씨가 있었다.)  

그런데. 전날 바래다주러 왔을 때 확인을 했던 걸까, 시시티브이가 없고 가로등이 꺼져 어두운 길로 자꾸만 나를 유도하더니 아무도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뒤에서 껴안고, 가슴을 만졌다. 내가 불편해하자 다행히 멈췄고, 나를 달래 보려고 했지만 충격이 가시지 않은 나는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 이렇게 보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아직 성이 차지 않았던 건지 어쨌든 혼자 가겠다는 내 손을 잡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당시 아파트 단지 중 가장 맨 뒤에 위치한, 언덕 제일 위의 동에 살았음) 중간쯤 올라갔을까, 어두운 부분이 또 나왔고 이번에는 강제로 양 볼을 잡고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결혼식장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첫 키스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던 나는, 그 자리에서 밀쳤고 그 사람은 언덕 아래로 굴러 넘어졌다. 나는 그대로 울면서 놀이터에 가서 두 시간을 울었던 것 같다. 더럽다고. 내가 너무 더러워서. 사실은 내 잘못이 아닌데 말이다. 

 서른 하나가 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랑 한번 하자’, ’ 아가씨 나 좀 도와줘.’, ’야 일로 좀 와봐, 가까이 와서 앉아봐. 뭐 어때.’, ’ 너도 좋으면서 그러는 거 아냐?’, ‘팁 줄 테니까 여기 앉아봐.’, ’ 여자가 돼서!@#$%^%$#@’, 등등의 언어를 사용하며 관계를 요구하거나, 그런 비슷한 행동을 요구한 사람도 생각보다 훨씬 많이 있었고, 강제로 추행을 시도하는 사람도 간혹 있었다.

그것 말고도 ‘넌 여자니까, 혹은 ‘넌 여자잖아.’라는 말을 차별적인 말을 하거나, ‘뭐 결혼을 정말로 하고 싶으면 그 여자를 임신시키면 되지. ‘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사람들도 생각보다 훨씬 많이 있었다. 자기가 뱉은 말이 성추행이 된다 거나 성 차별적인 발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함부로 떠들어 대는 남자가 정말 많았다. 모든 남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오해 없길 바란다.

 그 이후로도 나는 성범죄에 자주 노출되었고, 그렇게 성별이 남자면 불편하고 무섭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아주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성별이 여자인 사회인으로 성장했다.

 나는 다시는 어린 여자 아이들이 이런 일들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성인이 된 성별이 여자인 사람도 당연히 이런 일들에 노출되지 않았으면 한다. 부디, 제발. 이런 일을 겪는 여자들이 자신의 엄마 혹은 이모, 아니면 딸, 아니면 언니 그 누나. 것도 아니면 조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당신의 생각보다 이런 일들이 아주 쉽게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조금 더 세심한 보호와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피해를 당하진 않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니 잘못이 아니야.’ 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여자가 아니라 성별이 여자인. 남자와 다를 것 없는,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지금부터 글쓴이의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과 생각을 이 글을 읽는 이에게 공유하고자 합니다.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과 생각이므로, 취향이나 다른 어떤 것의 견해로 조금은 어색하거나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냥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혹은 ‘이런 눈으로도 볼 수 있구나.’ 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가볍게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에세이를 읽을 때에,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보면 더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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